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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현 Sep 27. 2016

[스위스여행] 울음의 근원


2010년 9월 17일 인천발 오사카행 

내 기분은 실타래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몸을 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 몸인데도, 내 생각들에게도 의지할 수가 없었고 
믿음이 없으니, 여행의 즐거움도 꺼낼 수 없었다.
떠나기 전, 내 마음은 그랬다.

_너는 누구니..?
마음속에 맴돌던 단 한가지 질문

출국 수속 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부탁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본 친구가 말한다.

" 여자가 받았어. 그 사람 부인이래 어떻게 하려고 그래? "
친구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4시간 뒤 오사카 간사이 공항

믿음보다는 의리가 먼저였다.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의리, 같이 보낸 날들에 대한 예의

_한국과 다른 풍경 때문이었을까? 비행기에서 그가 들려주던 노래 때문이었을까?

나는 불안과 초조, 아픔과 의심 
그런 것들을 모조리 의리와 예의로 포장했고 마음에 리본까지 매어주었다.

바람이 불었다.
놓쳐버릴 것 같은 기분에,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돌아가면 놓아야 할 손을 바람을 핑계로...





2015년 11월 21일 인천발 파리행 

여자가 떠나기 일주일 전 
남자는 운동화 하나를 선물해 줍니다.
멋과 유행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아무쪼록 운동화 본연의 기능만은 
착실히 수행할 것 같은 투박한 운동화. 그리고는 말합니다.

"넌 키가 커서 넘어지면 크게 다친단 말이야"

떠나기 삼일 전 
어느덧 겨울이 성큼 다가온, 한 해를 한 달 앞둔 11월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여자에게 입혀주고는 조금은 짜증 섞인 투정도 부립니다.

“이제는 다시 혼자 가지 마, 이번뿐이야... 그런데 지금이라도 안 가면 안 돼? ”

떠나기 전날 
여자는 부산스레 준비하다 보니 자신이 혼자 여행할 때면 늘 빼놓지 않고 챙기던 삼각대가  
저번 여행에서 망가졌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가는 날은 못 데려다줄 것 같으니, 지금 조금이라도 더 봐야겠다며 밤늦게 여자에게 달려온 남자  
한참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갈 때쯤  
지금 막 생각났다는 듯
트렁크에서 쇼핑백을 하나를 수줍게 건넵니다. 

“예쁜 사진 많이 찍어와, 그리고 와서 나에게 들려줘 ”


비행기 타기 전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 보고 싶을 때마다 편지 쓰려고, 지워지는 볼펜 샀어.
편지지는 왠지 쑥스러워서.. 근데 왠지 볼펜은 썼다 지웠다가 돼야 할 것 같아서.. 
오랜만에 문방구에 가봤는데 애들 되게 많더라. 건강하게 잘 다녀와 

여자는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늘 어린애 같던 여자에게 좋은 보호자가 생긴 것 같습니다.

활주로를 빠르게 달리는 비행기 안
그 안에 혼자 있는 여자는 더 이상 외롭지가 않습니다.






저는 물로 치면 맹물? 색깔로 치면 회색? 
늘 튀지 않고, 나서지 않고, 섞이지 않으려 했던 저는 그래서인지 특색 있는 사람을 좋아해요. 
뭔가 화려한 핑크색, 시원한 파란색, 확실한 검은색 이렇게 원색적인 사람을 보면 왠지 멋있고 좋아요.

그런 의미해서 저희 엄마는 초록색 특색이 있죠.

엄마의 별명은 '꽃들의 저승사자'
엄마는 초록의 잎으로 가득했던 화분을 한 달 만에 죽이는 재주가 있죠.
분명 물도 잘 주고, 햇빛도 잘 쐬어주시는데 말이죠.  
그래도 꽃을 너무 좋아하는 엄마는 자주 꽃집 앞을 서성거리세요.

그 모습이 저에겐 왠지 마녀가 아기돼지 삼 형제를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보여요.

"엄마 손에 갈까 봐 덜덜 떨고 있는 꽃잎을 좀 봐. 그냥 가자" 며 말리죠.


그에 반해 외할머니는 얼어 죽은 꽃도 살려내는 신비로운 손을 갖고 계셔요.
이건 정말 인체의 신비만큼 위대하죠.

여행 오기 전에 할머니에게 블루베리 나무 한 그루를 사드렸어요.
씨앗으로 사 오면 되지, 뭘 이런 걸 15000원씩이나 주고 사 왔냐며 꾸지람을 들었지만
말씀은 안 드렸지만, 150만 원어치 블루베리로 만들어주실 것을 믿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할머니는 노란색 같아요.


참, 좋은 것만 닮으면 좋겠는데..
저도 꽃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는데, 
다들 내 결정력을 흉보듯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다들 내 결단력을 비웃듯 그 일들은 점점 커져갔고, 
그렇게 되니 무서워졌다.
무서우니 살아도 살아도 사는 게 버거웠고, 
어딘가 꼭꼭 숨어 겨울잠이 자고 싶어졌다. 

겨울잠은 왜 곰, 개구리, 뱀들에게만 주어진 건지
다음에 태어나면 꼭 곰으로 태어나고 싶다.
뱀은 안된다. 곰으로 꼭....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속상할 때 있으세요?

저는 오늘 새삼 느꼈어요. 
여자란 참으로 속상할 만큼 미련한 사람이구나.

주로 여자가 미련할 땐 이뻐지기 위해서가 많아요.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아파 온몸이 비비꼬면서도 경락마사지를 더 세게 해달라고 할 때
평발에 허리디스크까지 있어 힐 신으면 안 되는데, 
발가락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소개팅에선 쿨하게 발가락을 포기할 때
또 라식수술해서 렌즈 끼면 안 되는데 소개팅에서 쿨하게 눈 건강도 포기할 때

그리고 또 있어요.
무서운 영화 못 보는데, 
내숭 떠는 것처럼 보일까 봐 눈뜨고 끝까지 다 보고든
엘리베이터도 못 타고, 며칠을 불 켜고 잘 때 


하지만 여자라서 가장 미련할 때는 
아니 저라서 가장 미련할 때는 
헤어질 땐 야멸치게 ‘그만보자’ 그 한마디 하고 간 그놈의 전화를 
미련에게 KO 패 당해 결국 수화기를 들어버릴 때

참으로 무섭게도 미련하다는 걸 느껴요.







정갈한 꽃집을 보니 꽃을 좋아하는 소정이 생각이 나고
백화점을 보니 바른말로 나의 충동구매를 막아주는 민지 생각도 나고
따뜻한 테라스를 보니 다희 너와의 맥주가 간절해져
혼자 떠나오니 항상 같이 떠나주던 주영이에게 습관적으로 연락을 해
이렇게 떠나오니 내 옆에 있어주던 사소한 것들마저도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어.

그리고 이곳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돌아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네가 보고 싶은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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