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슴속에 있던 모든 아픈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기억들이 단합이나 한 듯 똘똘 뭉쳐 그로 나타납니다.
눈을 감으니 환청같이 번뜩이며 그가 자꾸 나타나
눈을 감을 수 없어 밤을 지새웁니다.
표현이 공포영화 같았는데요.
사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이예요.
그가 웃으며 내밀던 손, 그가 흥얼거리던 노래
그가 집중할 때 나오던 표정, 그리고 그가 잠 못 자게 했던 코 고는 소리까지
눈을 감으면, 이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아무래도 오늘 밤도 잠을 자긴 틀렸습니다.
'정말 왜이래?’
새벽이 되니 더욱 나약해진 기억들이 화로 바뀝니다.
저도 묻고 싶네요.
_너희들은 언제쯤 집에 갈 거니?
기억들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기억들이 내 곁을 맴돌지 않기를
'나는 너희에게 더 이상 쌓아줄 기억들이 없단 말이야'
내 옆이 아닌 그의 옆에 있어주기를
그에게도 한 번쯤 머뭇거려주기를
그렇게 나처럼,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있기를
그래서 나와의 기억을 들춰보는 날들이 있기를
저는 잘 울지 못해요.
울컥할 때는 많은데, 눈물로 잘 나오지 않아요.
예전엔 일부로 슬픈 영화를 찾아볼 정도로 눈물이 없는
저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7번 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보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영화가 슬프지 않았어요.
왠지 억지로 ‘울어!’ , ‘이제 울 타이밍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반항심이었는지 영화 끝까지 눈물 한 방울 없이 말똥말똥하게 봤어요.
끝날 때쯤
이미 휴지 한 통을 다 쓰고,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던 친구가 절 쳐다봤어요.
친구의 얼굴에 놀라, 제 손에 있던 휴지를 건넸죠.
엄청 슬프다는 말에 우린 휴지를 각각 하나씩 사서 들어갔거든요
영화가 다 끝나고 나와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나 이제 너랑 슬픈 영화 안 봐.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어? 나만 이상한 사람 같잖아”
그 뒤로 그 친구는 정말 저랑 슬픈 영화는 안 봐요.
이렇게 어렸을 적엔 진짜 눈물샘이 고장 난 거 아닌가? 할 정도로 눈물이 없었는데...
결국 여행 10일 만에 찾아온 울음
어쩌면 계속 울고 싶었던 마음을 감추느라 애썼을 눈물들이 목에서 찰랑거려요.
울고 났더니, 한결 수월해졌어요.
어른이 된다는 건, 울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좋아한다’ 와 ‘사랑한다’를 구별할 수 있으세요?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마고 역을 맞은 미셀 윌리엄스
다른 영화에서도 생각했지만, 참 사연 있게 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이 이 영화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죠.
영화에서 많은 부분이 인상 깊었지만, 특히 이 장면이 기억에 나요.
부부의 대화
“ 감자 깎는 칼로 너 살을 다 벗겨버릴 정도로 사랑해 ”
“ 멜론 기계로 너 눈알을 빼버리고 싶을 만큼 사랑해 ”
이렇게 둘이 농담인 듯 진담 같은 장난을 쳐요.
어느 날 부인이 묻죠.
"예전에는 이런 말장난에 나한테 져줬는데, 요즘은 왜 안 져줘?
남편은 대답해요.
"더 사랑하게 되니깐 더 잔인한 말들이 나와"
그냥 지나가는 장면인데, 왠지 모르게 저는 공감이 갔어요.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어느 정도의 마음이면 사랑이라고 말하면 될까요.
한 사람의 심연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온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미슐랭 맛 집처럼, 꼭 챙겨야 할 지도처럼 제 인생에도 그런 별점이 새겨진 지도가 있다면
몽 생 미쉘[mont saint michel]은 별 다섯 개짜리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봐야 할 지도의 맨 첫 번째 자리가 될 것이에요.
광활한 그곳은 사막은 아닌데, 꼭 끝이 안 보는 사막 같았다
너무 멀리 와 버린 기분
이곳이 여행의 종착지 일까?
막막함인지 먹먹함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진기를 꺼내볼까 하다 그 안에 기록될 사진들이
지금 내가 느낀 이 마음까지 그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문득 그건 사치란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넣었다.
그런데 여행은 늘 그렇듯
좋은 것을 보니 좋은 사람이 생각난다.
다시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보여줄 사진 몇 장을 핸드폰에 남긴다.
달리는 기차 안
써 내려가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눈앞에 풍경과 머릿속 단어들이 엉켜
한 줄도 쓰지 못 했다.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들
그게 바로 이 풍경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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