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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첼로가 어땠냐면_리뷰

아름다운 목요일 <금호 악기 시리즈> 정우찬 Cello

by 유진

공연을 보고 나서 누군가 내게 "어땠어?"라고 묻는다면, 오늘의 나는 어떻게 답할까?

뭔가 입 밖으로 내뱉으려고 하면 약간 우물쭈물하게 된다. 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데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을 듯 그 느낌 자체가 선명하게 당장 뱉어내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클래식 자체가 하나의 스며드는 장르가 아니던가?

강렬하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사람을 골똘하게 무언가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애써 그 안갯속에 있는 것을 꺼내봐야겠다. 또 꺼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다면 천천히 실타래가 풀린다. 타자가 좀 빠른 편인 나로서는 긴 글을 써낼 때면 내가 지금 피아노를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워낙 장황하지 않은가? (솔직히)


일단 글을 담아내기 위해 멍.. 하니 하얀 벽을 바라보면서 뭐가 있었더라 하고 멍.. 하니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어제의 공연 장면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금호아트홀은 좌석 단차가 없고 공연장 자체가 황토색 밝은 통나무색이 가득하다. 운 좋게 중앙 3 열이라는 가까운 자리에 관람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딱 시선이 닿는 곳에 앞자리 분의 뒤통수가 있어서 같이 간 분과 거의 착 붙어서 관람했다. 그래도 두 번째 곡 이후로는 잘 보여서 상관없었다.)



좌석이 무대와 가까우면 볼 수 있는 장면이 여러 개다. 무엇을 떠올려볼까? 일단 무대 조명 아래 빛을 반사하는 악기들. 활에서도 빛이 나는 것을 아는가? 활 끝을 보면 아마 금속..? 부분 같기도 한데 연주를 하면서 활이 빛 아래에서 이리저리 춤을 추면 그 부분이 '반짝'인다.


무대 위에서 여성 연주가 분들은 드레스나 액세서리에 크리스털 같은 장신구와 함께 등장하실 때가 있는데, 그 반짝임을 눈에 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남성 연주가들은 주로 정장 차림이셔서, 그런 '반짝임'을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아니다. 반짝이는 것은 장신구뿐만이 아니다. 보석보다 더 빛을 내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악기다.

공연 시간이 딱 시작되면 관객석에 어둠이 드리우고 무대 위에 조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탁!' 켜진다. 관객의 박수 사이에 연주가가 입장하면, 잠깐의 튜닝 시간 후 연주가 시작된다. 그 장면을 눈에 담다 보면 자연스레 하얀빛을 내는 악기에 시선이 간다. 반짝반짝 방금 윤을 막 낸 듯한 상태로 등장한 현악기의 자태를 본 적 있는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세공된 다이아몬드 같다. 생각해 보니 다이아몬드 같은 게 아니라 더 가치가 있는 물건인 것 같다. 악기 자체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탄생될 때도 있고, 그 연주가가 해당 악기를 얼마나 잘 다뤄냈는지도 보이는 것 같다. 손에서 다뤄본 만큼 익숙해진다고 하지 않은가? 사람과 악기의 친밀도 정도를 무대 위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또 하나의 관람포인트다.


그다음은 '사람'과 그 '소리'다.

사실 연주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선에서는 예민한 소리를 아주 능숙하게 또 '순수'하게 펼쳐내는 사람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좋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잃고 그리워하는 게 '순수성'아니던가?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그 대상을 찾는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나는 공연을 보는 매 순간이 가치 있다. 내가 가장 순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어두운 관객석에서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해지는 순간이 참 내게는 소중하다. 아마 무대 위에 있는 그들도 소중한 순간일 것이다. 그 무대에 오르기까지 거쳐야 했던 어두운 순간이 있었을 것이며, 인내의 과정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 조금은 묵묵한 과정을 보낸 뒤 '타인'에게 자신의 '소리'를 건네는 기쁨은 어떤 느낌일까? 내가 내 손짓으로 만들어내는 소리가 음이 되고 노래로 표현되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당분간은 해결되지 못할 궁금증일 테니 살며시 흘려보기로 한다.


소리. 난 절제된 것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꽉 막혀 있으면 안 된다.

또 충분히 자유로웠으면 좋겠고, 뻗어나갈 수 있다면 아주 높게 날아오르는 소리가 좋다. 거기다 날카롭고 예리하다면? 그냥 마음이 쿵!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공연은 새로운 문장을 많이 남겨올 수 있었다.


첼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밝았고,

예뻤고, 반짝였다.


첼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높은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바이올린 같았다.


첼로는 진중한 구역 내에서

아주 무게감 있게 휘몰아지는 진동체였다.


첼로는 아래쪽에서 심장 고동을 닮아있고,

위쪽에서 마음에 새겨지는 소리를 남긴다.


첼로는 통통 가볍게 날아오는 튕김보단

둥둥 울려오는 심연의 피치카토를 가지고 있다.



정우찬 cello

정우찬 첼리스트는 연두색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데, 너무 짙지도 옅지도 않은 녹색의 이미지가 형상화되었다. 신중한 연주였다. 신중하다는 건 그 연주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또 너무 과하게 몰입하지 않았다. 클래식 공연은 연주가 본인도 중요하지만, 그날 표현되는 그 '곡'이 진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연기를 잘해야 시청자가 빠져들지 않겠는가? 연주가는 작곡가의 특정 의도로 창작된 주인공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정우찬 연주가는 충실히 그 역할을 수행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그날 첼로의 소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안녕? 안녕?“



정우찬 첼리스트 /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 연주가와 정우찬 연주가는 같은 콰르텟팀 멤버로 활동하고 계신다. '이든콰르텟'. 딱 어제 우찬 님의 연주를 들어보니 그 '솔리스트'들의 '콰르텟'이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두 분의 색은 달랐다. 우찬님은 연두색. 그냥 소리를 들어보면 마냥 청량하지도 무겁지도 않고, 근데 또 가볍지도 않고 편안함을 주며 진동하며 펼쳐내는 그 소리 자체가 자연의 느낌이있다. 첼로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 이런 소리가 나는 악기야. 하면서 충실히 들려주는 미소가 내겐 느껴졌다.


그렇다면 임동민 연주가는? 차가운 네이비색이다. 외관과 표현 자체는 무척이나 바늘처럼 차가운데 그 안에는 분명한 '온기'가 있다. 난로에서 느껴지는 다홍색으로 시작해서 노란색도 있고 붉은빛을 띠는 그 무언가를 품은 채 짙은 푸른빛의 소리가 귓가에 박혀온다. 이 소리가 나를 현악기로 이끌었다.


두 분의 소리에서 느껴진 공통점은 신중함. 활을 한 번 긋는데 그 그음에는 필시 이유가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 그 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의 소리를 선명하게 뽑아낸다. 뽑아낸다는 건 어디서 느꼈냐면 그냥 소리를 눈을 감고 듣다가, 음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에 무대를 보면 활이 하나의 붓처럼 천천히.. 또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아 저기에서 소리가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든 콰르텟 짱짱 무대 : 그 유명한 '슈만'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이 곡을 꼭 들어봤으면.

이든 콰르텟 Eden Quartet - String Quartet No.3 in A major, Op.41, No.3 (슈만)

정주은 Jueun Jeong , 임동민 Dongmin Lim (Violin) 임지환 Jihwan Lim (Viola), 정우찬 Woochan Jeong (Cello)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denquartet_/ )



또 나는 어제 무엇을 느꼈던가? 아, 기쁨이다! 어떤 기쁨이냐 하면 '앎'과 '추억'이 깃든 기쁨이다. 클래식 장르 특성상 매 공연이 나한텐 '공부'의 일환이다. 모르는 곡은 미리 들어가야 하고, 예습을 많이 못했다 해도 오늘의 청취 정도가 훗날 내게 어떤 자양분으로 돌아올지모르니 잘 들어놔야 한다. 하지만 그 곡들과 안면을 트려면 시간이 걸린다. (길잖아요) 그래서 공연장에서 내가 아는 곡을 만나면 그 기쁨이 배가 된다.

2024년 첫눈이 내리던 날, 기차를 타고, 먼 낯선 장소에서 프랑크 소나타를 만났다. 그것도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래서 나한테 프랑크는 '첫눈이자, 미소이자, 기억'이다. 그런 곡을 바이올린이 아닌 첼로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어 새롭고 기뻤다. 첼로의 프랑크는 높은 상승과 하강의 재미보단 '울림'을 주는, 첼로가 낼 수 있는 다양한 표현법을 소개받은 것 같아서 좋았다.



그리고 또! 내가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랑 안면을 좀 텄는데! 첼로 무반주 소나타를 세 번째 곡으로 연주해 주셨다. 여기서 신났던 또 하나의 포인트를 말하자면, 내가 작곡가들의 특징적인 느낌을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것도 곡을 들으면서! 마니아들이면 딱 아는 "어 이 곡 그 사람 스타일인데??"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가 있지 않은가? 나는 솔직히 그런 것까진 구분이 되진 않았다. 그냥 노래가 좋네. 그 정도..? 어제의 공연에서는 총 네 명의 작곡가 드뷔시 풀랑크 이자이 프랑크였다! 내가 특정 스타일이 있다고 뭔가 눈치를 챘던 작곡가는 풀랑과 이자이였다! 풀랑은 듀오리사이틀 때 바이올린 소나타로, 이자이는 명동 성당 공연 때 무반주로! 알게 된 작곡가들인데, 이번 첼로 공연에서 그 두 작곡가만의 특징적인 표현? 느낌? 멜로디? 같은 게 느껴졌다.




풀랑은 특유의 위트 있고 우아하지만 미묘하게 슬픔이 서려있는 느낌? 이자이는 수직으로 또 수평으로 지잉-지잉- 흐르다가도 통통 아름답게 튕겨내는? 그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느꼈던 느낌들이 이곳에서도 펼쳐지니까, 또 그 느낌을 내가 지금 당장 듣고 알아냈다니? 정말 기뻤다~!@!@~~!! 내가 알고 있다기 보단 내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곡조가 눈앞에 샤방~~ 하고 펼쳐지는 기분!! 좋다! 어떤 곡들인지 또 소개를 안 할 수 없으니








1.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4악장

Jehye Lee, vn. 이지혜, 바이올린 Tae-Hyung Kim, pf. 김태형, 피아노

2.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6번



이것 봐라. 처음의 그 우물쭈물은 어디 가고 또 말이 장황히 길어진다. 하나를 떠올리면 둘을 떠올리고 결국 도합 열 정도 된다. 그럼에도 아마 분명 놓친 게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뭐 무슨 상관인가? 또 떠올리면 떠오르는 대로 마음을 담아내면 되지. 이 긴 흐름 자체도 클래식을 좋아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즐거운 버릇이다. 또 나만 즐겁겠지만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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