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쿨레드 얼그레이향 재즈카페

1088회 더 하우스 콘서트 리뷰_ 강유경 vn , 송재근 pf _리뷰

by 유진


당신은 하콘을 아는가?

첫 질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처음이 아닐 수도 있는 이 질문. 좌석 간 단차도 무대와 관객석의 완전한 경계 없이 마룻바닥에서 관람하는 클래식 공연. 어제는 오랜만에 하콘에 다녀왔다. 마지막 하콘이 (물론 유튜브로는 종종 봤지만) 작년 11월 중순쯤이었다. 뭔가 지금 생각해 보니 하콘을 한 계절에 한 번씩 찾아간 것 같다. 첫 하콘은 2024년 7월의 여름(줄라이페스티벌), 두 번째는 11월의 겨울, 그리고 2025년 4월의 봄. (나 혼자 클래식으로 리틀포레스트 찍는 중) 올 가을에도 꼭 가야겠다. (생각해 보니 내 진짜 클래식 입문은 줄라이페스티벌부터 인 것 같다)


4월 7일

강유경 바이올리니스트와 송재근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진행된 공연이었다. 저 분필로 그려진 벚꽃나무가 보이시나요? 분명 하코너(하우스콘서트 서포터즈)분들 중에 그림 실력자가 계신 게 분명하다.. 따로 말씀은 못 드렸지만 분홍빛과 하얀빛의 벚꽃 나무가 참 예뻤어요! 정성이 가득한 느낌. vn이랑 pf가 분홍색 분필로 색깔 통일된 것도 귀여웠다. 정성 가득한 느낌!

어제의 하콘 레퍼토리는 하나의 '장밋빛 봄'이었다.

어디서 장미가 피어난 것을 느꼈을까? 강유경 바이올리니스트의 붉은빛 드레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소리를 통해서도 그 색을 느낄 수 있었다. 비단 장미뿐만이 아니다. 바흐의 샤콘을 시작으로 크라이슬러의 앙코르곡까지 아래의 단어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천히 나열해 보자.


대체로 빨강

꽃잎, 몽우

쿨매트의 레드

얼그레이, 위스키

Jazzcafe, 적포도주



연주가마다 색이 있다.

곡에 몰입하는 연주자를 보면서 이 분은 무슨 색일까. 멍.. 하니 상상하는 순간은 참 재미있다. 강유경 연주자는 시원하게 펼쳐내는 붉은빛 색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진한데도 소리의 계열 자체가 시원하고, 그 시원한 소리에서 느껴지는 짱짱한 밀도감이 듣기 좋았다. 거기다 딱 리듬을 딱 가지고 휘두르는 느낌 자체가 능숙해 보여서 그 붉음이 계속해서 농후해졌다. 글로이립보다는 매트립. 코랄보단 정말 기본 정석 레드. (무슨 말인지 아시죠?) 송재근 피아니스트는 짙은 보라색. 청아하기보다는 딱 눌러주는. 능숙하게 흐르게 두는 느낌! 그런 두 사람의 합주를 정면으로 바라보니 절로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나열된다. 홍차. 얼그레이. 위스키. 적포도주. 조명. 나열되는 와중에도 흐르는 밀고 당기는 소리. 엇, 여기 재즈카페인가?




흐름은 어떤가?

소리도 좋을 것 같다. 그날의 레퍼토리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바흐의 샤콘느는 무반주 바이올린으로 완성된 깊은 독백이며, 시벨리우스의 5개의 소품은 다채로운 정서가 담긴 짧은 음악 모음이고,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사랑을 닮은 부드러운 대화. 에른스트의 마지막 장미 변주곡은 눈과 귀를 사로잡는 극적인 기교의 향연이다.








기- 로 시작하는 단어들로 이어 본다.

내게는 다 초면인 곡이었지만, 바흐의 샤콘의 도입부는 누가 들어도 "어?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할 만큼 유명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이 12분 정도의 흐름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했었다. 이 곡을 통해서 시작했기 때문에 연주가의 가장 '기본'적인 면모를 확인시켜 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의 반주도 없이 바이올린 한 대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솔직하게 드러낸 느낌. 공연이 다 끝나고 미니토크 시간이 있는데, 연주가께서 바흐의 샤콘을 배울 기회가 있었고 큰 공연장도 좋지만 이런 관객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곳에서 샤콘을 선보이면 좋을 것 같아서 택하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의 공연을 보고 나니, 본 연주가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이 곡은 연주가의 역량이나 경험 자체가 짙어질수록 소리로 더 다채롭게 표현될 것 같은 느낌을 딱 받았는데 강유경 바이올리니스트가 이후에 더 많은 연주 경험을 얻으신 뒤에는 어떤 색채를 담아내실지 궁금해졌다.

기본을 지나 기색, 기행, 기교가 드러나다.

두 번째 곡에서 내가 나열했던 단어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까 언급했던 꽃잎, 장미, 레드와인, 홍차, 재즈카페.. 말이다. 시벨리우스의 소품곡의 첫 곡을 들으면 딱 미소가 지어지는 '소리'들이 딱 있는데, 그 부분에서 적절한 톤의 소리와 연주가의 표정이 있어서 곡의 몰입도를 높아졌다. 시벨리우스가 자신의 딸과 아내를 위해 작곡했다고 들었는데, 어제는 고모가 혹은 큰언니가 어린 조카 혹은 막내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전하는 느낌이 들었다. (능숙하니까 소리가 어리게 들리지 않았다) 포레에서도 그 흐름은 이어졌고 '기본''기색'을 갖춘 연주자가 포레의 '기행'과 에른스트의 '기교'를 순차적으로 보여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들으면서 아쉬웠다. (예습을 좀 더 할걸!!!!)

요새 클래식 부트캠프 수준으로 공연이 밀려서 (내가 연주가냐?) 레퍼토리 예습을 급하게 하고 있는 와중이다. (사실 이 또한 변명이다) 내가 이미 이 곡을 조금이라도 정복한 상태로 들었다면 연주가의 해석이 어떤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지, 특징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 에이, 아니다. 아쉬워할 필요 없긴 하다. 하우스콘서트는 공연 생중계를 해주고 유튜브로 그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그날의 공연을 되새길 수 있다.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조금 더 음원으로 들어본 다음에 다시 어제를 되새겨 봐야겠다.




누나 혹시 연주해요?



클래식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소품곡이 아닌 이상 한 악장 당 5분이 넘는 곡이 많은데, 유명한 곡들은 그 5분 이상 전체가 좋은 소리들만 가득할 때도 있다 (!!!!!! 이를테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 호흡이 긴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는 영역도 길다. 오늘 들었을 땐 이 부분이 좋았는데, 내일 들어보면 이 부분도 좋고, 기분 나쁠 땐 또 다른 부분이 좋고. 어느 날엔 평범했던 소리가 위로가 되기도 하고.. 또 좋은 건 한 작곡가의 곡에 좀 익숙해지면 다른 곡을 들었을 때 그 작곡가만의 '느낌'을 깨닫게 된다. 그걸 딱 노래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면 이만큼 뿌듯한 순간이 없다! (키키) 그리고 보통 한 곡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지겨워지는 순간이 항상 있는데, 클래식은 지겹기는 좀 어렵다. 이미 좋았던 부분이 다음에 들었을 때 안 좋을 수 없다. 계속 마음에 콕콕 박히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누적된다. 모여든 소리는 차차 모여서 한 사람의 취향으로 딱 드러난다. 그게 참 하나의 묘미다. 음악을 들으면서 '나'의 또 다른 일면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가? 클래식 곡 흐름 자체가 하나의 명상의 장이다. 가사가 없기 때문에 (현재의 나로서는 가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반드시 그 곡에 자연히 말을 붙이게 된다. 무슨 곡인거지.. 무슨 분위기인 걸까.. 자꾸 추리를 하게 되고, 작곡가와 연주가의 마음을 예상해 보게 된다. 그래서 내게 클래식은 너무나 숨 가쁜 장르다.



짠.

당신이 하우스 콘서트를 방문해서 중앙에 앉으면 딱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무대와 관객 사이의 간격이 보이는가? 이 정도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건 뭐! 1열도 아니고 0열이다. 이런 공연장은 내가 아는 선에는 하콘 밖에 없다. 정면 자리에 앉으면 어떤 장면을 볼 수 있을까?

잔잔한 목소리로 도입부를 열어주는 강선애 대표님의 따듯한 인사말. 미소를 지으며 공연장에 들어오는 연주가들의 발걸음. 가깝게 들려오는 튜닝소리. 선율에 따라 미소를 띠기도 한없이 진지해지기도 하는 표정들. 실제 연주를 행하고 있는 움직임. 활이 그어지는 순간. 바삐 움직이는 손가락. 현 위로 확 펼쳐지는 손. 줄 위를 분명하게 찍어내려 가는 모습. 몰입한 순간. 딸깍 혹은 사각 거리며 악보가 넘어가는 소리 또 펼쳐지는 소리. 합을 맞추는 눈짓과 기다림. 일상이었다면 쉽게 묻혔을 작은 속삭임들이 그곳에선 또 하나의 음이 된다.


이젠 공연장에 가면 그 공간 만의 공기를 느껴보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의 집에선 어떤 공기가 느껴질까? 3번째 곡이 끝나고 마지막 무반주 곡이 시작되기 전에 침묵만이 감도는 순간을 떠올려 본다. 침묵도 무게가 있지 않은가? 어제의 침묵은 산뜻함이었다. 잠시 바닥에 시선을 던진 채 그 공기 소리를 들어본다. 공기도 악사다. 나무 악기를 통해 발현된 소리를 어떻게 흘려보내주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날은 참 따듯했다. 실제로 물리적인 따듯함을 느낀 것은 아니고, 그냥 삼삼오오 연주가를 얌전히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운 자체가 따듯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고, 이후에도 다시 마주할 가능성은 없지만 서로 같은 방향으로 앉아 같은 연주를 마주 한다. 이 사실 자체가 그날의 공기를 은은하게 덥힌다.


무반주 곡이 진행되는 순간이 떠오른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를 하고 있고 오른쪽 대각선으로 길게 늘어진 불투명색의 그림자가 보인다. 소리를 깊게 듣기 위해 가끔 연주가에게 시선을 던지지 않을 때가 있다. 정면을 응시하는 대신 아래로 시선을 떨군 채 그림자 쪽을 바라보다 문득 앞을 보면,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또 한 명의 관객이 보인다. 혹시? 하고 다른 쪽을 보면, 또 다른 관객도 나와 같이 그 소리를 정말 '듣고'있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긴 정말 들으러 온 사람들이구나! 우린 이미 남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남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말없이 잠시 친구가 된다. 뭐, 이미 클래식이랑 친구지만!




7일에 진행된 연주의 간단한 설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J.S. 바흐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BWV 1004)

J.S. Bach – Chaconne from Partita No.2 in D minor, BWV 1004

바이올린 혼자서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주하는 긴 곡이다. 하나의 짧은 선율이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 바뀌며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반주 없이 홀로 감정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연주자의 해석과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악기 한 대로 얼마나 넓은 감정과 장면을 펼칠 수 있는지를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 조용한 집중 속에서 음악을 깊게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 틀어두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2. 시벨리우스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 Op.81
Jean Sibelius – 5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81

북유럽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쓴 다섯 개의 짧은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이다. 각각의 곡마다 성격이 뚜렷해, 밝고 경쾌한 분위기부터 차분하고 부드러운 감정까지 다양하게 담겨 있다. 가볍게 듣기 좋은 곡이면서도 멜로디가 인상 깊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여러 가지 분위기의 클래식을 부담 없이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창밖이 맑은 날, 햇살이 드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듣기 좋은 음악이다.


3. 포레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A장조, Op.13
Gabriel Fauré – Violin Sonata No.1 in A major, Op.13

프랑스 낭만주의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부드러운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총 네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악장이 하나의 긴 대화처럼 이어진다. 특히 2악장은 사랑에 빠진 순간처럼 조용히 다가왔다가, 점점 깊어지고 진심을 고백하듯 펼쳐지는 흐름이 인상적이다. 따뜻한 감정선과 세련된 음악이 어우러진 이 곡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 혹은 사랑의 기억을 마음속에 담고 있는 사람에게 잘 어울린다. 누군가가 보고 싶어지는 날, 기억 속 장면을 꺼내볼 때 들으면 잘 어울린다.


4. 에른스트 – ‘고목 위에 핀 마지막 장미’ 주제에 의한 변주곡
Heinrich Wilhelm Ernst – Variations on “The Last Rose of Summer”

아일랜드 민요 선율을 바탕으로 한 이 곡은, 짧은 시간 안에 점점 더 화려하고 복잡한 소리로 변해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이올린 한 대로 여러 줄이 동시에 울리는 듯한 착각을 줄 만큼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곡이다. 눈과 귀 모두가 놀랄 만큼 화려한 연주를 보고 싶거나,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한계를 넘는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기세 좋게 뭔가를 시작하고 싶을 때, 나도 뭔가 해내고 싶을 때 들으면 기운이 난다.


앵콜. 프리츠 크라이슬러 – Tambourin Chinois, Op.3 Fritz Kreisler – Tambourin Chinois, Op.3

‘중국풍의 탬버린’이라는 제목처럼, 동양적인 느낌을 살려 만든 짧고 유쾌한 곡이다. 빠르고 통통 튀는 리듬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인상적이며, 앙코르곡으로 자주 등장한다.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는 클래식, 듣는 순간 기분이 환기되는 곡을 찾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하루가 좀 지루하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짧고 생기 있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잘 어울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없던 큐티뚱땅 다 끌어모아 모닝 클래식. 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