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창립 140주년 기념 음악회 : 교회음악과 _공간 리뷰
시선
공연을 보러 가면 당신은 무엇을 가장 먼저 바라보는가? 아마도 연주자를 주로 응시하게 될 것이다. (사실 공연의 주인공은 관객이지만) 그렇다면 그 연주자가 나타나기 전엔 어디에 눈을 둘까? 자연스럽게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게 되지 않을까? 뮤지컬이나 클래식 공연장은 로비보다 훨씬 어둡고, 때로는 광활하거나 아늑한 느낌을 준다. 당신이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발을 들였다면, 아직 온기가 채 퍼지지 않은 공기의 결까지 느껴볼 수 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설렌다.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기 직전, 이를테면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과 비슷한 기분이다.
공간
문 하나를 통과했을 뿐인데도, 때로는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공간 안에 발을 들이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이야기들이 생생히 들려온다. 그것도 열심히 연습한 탁월한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그러니 우리를 몰입시키는 건 단순히 음악이나 연주자뿐이 아니다. 공간도 충분히 감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공간 자체가 또 하나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교회나 성당이다. 그런 공간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퍼져나가는 방식부터 다르다. 나는 이 사실을 잘 몰랐는데, 작년 11월 코리안영아티스트 시리즈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의 리사이틀을 보기 위해 명동성당을 방문했을 때 처음 실감했다. 이곳에선 소리가 다른 장소보다 더 길게 머문다. 곡이 끝난 뒤에도 2~3초 동안 여운이 천천히 사라진다. 그래서 마지막 음이 천천히 사라지는 그 순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었다. 연주자도 그 특성을 알고 있었기에 어떤 구간은 평소보다 더 길게 끌어 여운을 즐기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었다. 소리의 파형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귀한 경험이 어디 쉽게 얻을 수 있던가? 그래서 이번 채플 방문도 더욱 기대됐다. 그날은 이자이 곡이 아니라, 이 공간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A. Vivaldi – Paris Concerto RV 114 in C Major
비발디의 RV 114는 현악기와 콘티누오만으로 구성된 작은 앙상블 곡이다. 이탈리아의 밝음과 프랑스적 세련미가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으로, 섬세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장식적인 악구와 단정한 구조 안에서 비발디 특유의 우아함이 드러난다. 조용히 전해지는 실내악 엽서처럼, 작지만 오래 남는 여운이 있다.
G. F. Handel – Dixit Dominus in g minor
헨델이 이탈리아 유학 시절 20대 초반에 쓴 라틴어 성악곡이다. 성부 간의 복잡한 대화와 리듬감 넘치는 긴장감이 곡 전체를 이끈다. 극적인 구성과 웅장한 화성 전개는 오페라적인 헨델의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젊은 작곡가의 불꽃같은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J. S. Bach – Passacaglia and Fugue in c minor, BWV 582
저음의 8마디 테마 위에 다양한 변주가 쌓이며 곡이 전개된다. 파사칼리아가 끝나면 정교한 푸가가 이어지며 압도적인 구성미를 완성한다. 수학적 아름다움과 영적인 깊이가 동시에 느껴지는 바흐의 대표 오르간곡이다. 바흐가 세운 작은 우주를 음으로 체험하는 순간이다.
L. Vierne – Messe Solennelle, Op. 16
비에른의 미사곡은 오르간과 합창이 엮어내는 장엄하고도 고요한 음악이다. 프랑스 낭만주의 특유의 명상적 분위기와 음향의 밀도가 인상적이다. 두 대의 오르간이 성스러운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울려 퍼진다. 마치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기도처럼, 따뜻한 경건함이 흐른다.
취향
한국에서 오르간 독주 만나기 어디 쉬운가? 있다고 한들 순전히 오르간을 보러 발걸음 하는 관객도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롯데콘서트홀에 오르간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경험의 날이다! 일전에 금호아트홀에서 상주음악가 아레테 콰르텟의 첫 무대를 보러 간 적 있는데, 그때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 H.3/50-56를 진행했다.
너무 어려웠다! 이때쯤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시점에 한창 클래식과 친해지는 과정 중이었는데, 그날 기억나는 건,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도 잠이 안 와서 너무 기뻤다는 사실이다. (!!!) 그냥 뭉뚱그려서 들리는 게 아니라 현의 소리나 화음 자체가 선명하게 들린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뭔가 들리기 시작하니까 내가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따로 있다는 것도 그즈음에 깨달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래서! 더 이런 탄생 배경이 종교적인 곡들은 나한테 좀 낯설었다.
정말 그 일곱 말씀에 기초해서 음이 꾸려진 것 같고, 뭔가 알 수 없는 규율감이 소리에서 느껴져 답답했다. (내 가치관과 다른 마음들이 웅웅 울려오는 느낌) 유달리 날아오르는 소리, 시원하고 날카롭게 뻗어가는 소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곡들이 친근해지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마냥 선을 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섣부른 판단은 하면 안 된다! 뭐든 처음은 어려운 거 아니겠는가? (바르톡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어보세요 친해지는데 몇 달 걸립니다)
풍경
그래서 이번 음악회에 참석한 것이다. 교회음악과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이니, 분명 택한 곡들은 다 이유가 있겠지!! 저번의 그 곡이 내 취향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 더 다양하게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곰곰이 어제의 7시 30분을 되새겨보자. (곡에 대해서는 여러분들께 후기를 맡기겠다. 난 아무래도 좀 어렵다!) 장면으로 시작하겠다. 나는 대략 7시 25분쯤에 채플 안으로 들어섰는데, 이미 일찍이 도착해서 가로로 길쭉한 나무 의자에 관람객들이 즐비했다. 중년 신사숙녀는 물론 학생들도 많았다.
뒷모습
기억에 남는 모습을 남겨 보자. 아까 말했듯 이런 공간에 들어오면, 그 들어온 순간부터 밖과는 다른 느낌이 있다. 딱 느껴진 건, "아! 내가 지금 미국시골 마을의 작은 교회행사에서 열린 클래식 공연에 놀러 온 것 같다!"였다. 이런 장소를 드라마 빨간 머리 앤이나 외국의 소규모 실내악 영상으로 봤던 것만 같다! 거기다 내가 가장 맨 끝쪽에 앉아서 가운데 밀집해 있는 사람들과 살짝 거리감이 조성되어 더욱 내가 '남의 행사에 살짝 구경온 이방인'같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뒤편에 앉으니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도 있었다. 뒤통수에도 표정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앞보다 두 칸 정도 멀리 떨어져 앉아있는 남학생 두 명. 뭐가 그리 재밌는지 키득 거리며 이야기하는 모습. 마치 관계자인 듯, 그 순간을 예쁘게 담아내던 여자분. 많이 기대했었는지 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무대 쪽으로 빼꼼 고개를 향한 채 바라보던 뒷모습. 귀까지 발갛게 빨갛더라. 뒤늦게 공연장 안으로 들어와 아이패드로 악보를 켜놓고 음악을 함께 따라가던 학생들. 가운데를 비추던 노란 조명이 관객의 뒷머릿결을 비추는 모습. 가운데 쪽에 앉아 집중한 중년 노부부. 집중하시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살짝 꾸벅- 조시는 분. 사람들의 여러 일면을 한 공간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나름 재밌는 일이다.
합창
오르간(?)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연주해 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 소리 자체가 참 신기했다. 웅웅 울리며 신비하고 기둥처럼 단단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 소리가 현악기를 리드하며 흐름을 이끌어 나갔다. 소리로만 따지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합창'이다. 교회음악과 재학생들과 강사, 교수들이 노래하면 지휘자는 관람객의 가까운 곳에 등진채 서서 그들을 리드하였다. 합창에 집중하는 모습은 귀여웠지만,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장엄하고 인상 깊었다. 얼마나 집중을 하였는지 그들의 표정 속에서 다 읽어낼 수 있었다.
여자분들은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으셨고, 남자 학생들은 정장을 딱 갖춰 입고 있었다. 조명이 보통 하얀색을 비추지 않는가? 말만 해보면 여학생들의 블라우스가 가장 반짝거릴 것 같지만, 무대 위에서 제일 반짝인 것은 학생들이 든 '악보'였다. 악보의 겉표지는 검은색이었는데, 그 조명 아래에 하얀 내지들이 얼마나 빛을 내던지... 악보 한 번, 지휘자 한 번. 그리고 뱉어내는 힘. 전체 인원은 훨씬 많았지만, 마치 네 개의 흐름이 각각의 구역에서 충실히 힘을 내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물론 실제 인원은 더 많았지만! 대충 네 개의 구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충실하게 힘을 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마지막 비에른의 미사곡에선 순간순간마다 갑자기 하나가 되는 순간도 있어서 다들 장래가 유망하네~!!@ 귀여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방향
그리고 그날, 선명하게 느꼈던 건 이런 교회 음악은 소리가 관객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뭐든 본인의 취향이 아니라고 한들, 싫어하는 음식이라도 진짜 맛있게 조리되면, 색다른 인상을 받을 수 있듯이. 좋은 곡은 나에게도 좋게 들렸다. 다만, 희한할 정도로 가슴 안쪽에 박혀오는 그 느낌이 잘 안 왔다.
왜 그럴까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다 작곡가의 의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 직접 오늘 다시 겪어보니 확실히 깨달았다. 소리 자체가 내쪽으로 오고 있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위쪽 방향으로 흐름이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 그렇다.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조금 그동안 벽이 있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딱 깨닫고 나니까 오히려 더 쉽게 들렸다. 차이를 인정하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소리도 인상 깊었지만, 사실 내가 이 음악회에 참석한 이유 중 하나는 공간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공연장을 가려가며 관람하겠는가. 소리를 얼마나 잘 품어내고, 뻗어내는지에 따라 그날의 '감상'이 달라지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어제 특히나 색채가 강하게 남은 장면이 있었다. 바로 세 번째 곡, 오르간 독주 무대였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오르간과 무대 정가운데 조명만 탁 켜지고, 이를 제외한 모든 곳엔 어둠과 침묵이 가득했다. 그래서 더 성스러웠다. 홀연히 오르가니스트가 나타나서 능숙하게 소리를 내뱉는다. 어찌나 장엄한지, 사진 하나 남길 수도 없었다. 이 곡에서 가장 내가 몰입감이 있었던 것 같다.
달빛
조명이 들이치지 않은 오후 8시의 채플 안. 시선을 살짝만 높여 보면, 앞쪽 천장은 유리창문이 있다. 아마 뒤쪽에도 창문이 있었는지, 은은한 달빛이 드리쳤다. 달빛이 있음을 어찌 알까? 푸르른 밤의 기운이 발목을 살짝 비췄기 때문이다. 다른 관람객 모두 살짝씩 그 빛에 비치고 있었다. 검은 것 사이에 그 은은한 푸른색. 참 이뻤다. 그 순간, 드뷔시의 ‘달빛’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초여름
이런 하루였다. 앙코르 없이 막이 내리고 일찍이 밖으로 나섰다. 내부가 더운 것은 아니었지만 공연장 밖을 딱 나서니까 초여름 냄새가 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빠르고 지구가 요새 흐름이 오락가락하다. 7시 전까지만 해도 가지 말까 여러 차례 고민했었는데, 벌써 이렇게 9시가 훌쩍 지나있다. 역시, 피하기보다는 마주하는 쪽이 낫다. 마음에 남는 달빛과 시선, 그리고 소리를 기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