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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빛의 낙화(落花)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5번 ‘L’Aurore(새벽)’ 감상 산문

by 유진

낙화다. 일순에 아스라이 뜬 눈이다. 새벽에서 막 건너온 참이다. 묘하게 선명한 시야에 담긴 게 온통 남청색이다. 침대 머리맡으로 손을 뻗어 뒤척인다. 손에 잡히는 네모난 것을 집어 들어 엄지손가락을 왼쪽으로 화면에 스쳐낸다. 늘 붙잡고 싶은 색인데, 카메라 안으로 보면 하얀 아침이다. 오직 눈으로만 담을 수 있는 순간이다.


이내 집은 것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켠다. 어깻죽지를 늘이면서 오는 알 수 없는 개운함이 목을 타고 흐른다. 뻗어낸 팔을 다시 이불속으로 감춘다. 이젠 곧 여름이라 서늘함은 없다. 두꺼운 겨울 이불만의 무게감이 팔과 다리를 감싸 안는다. 몇 번 뒤척이다 옆으로 돌아누워 그 끝자락을 한껏 끌어온다. 볼을 가만히 맞닿은 채 멍하니 있다. 그냥 그렇게 잠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침잠이다. 안개가 조용히 흩어지듯 사라져 버린 것이 아쉽다. 한 번 흐름에서 깨어나면 이렇게 되돌아갈 수 없다.


그렇게 오래 머물지도 않고, 몸을 일으켜 창문의 커튼을 옆으로 젖히고 창문을 연다. 어느새 밝아오는 아침이다. 남청의 것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아래로 시선을 떨구면 초록빛의 벚꽃나무가 담긴다. 그새 낙화된 잎들이 잔디밭 위에 앉아 있다. 본디 꽃이 떨어지면 가지만 남기 마련인데, 그래도 봄이라고 푸른 잎들이 그 자리를 대신 메꿔냈다. 벚꽃 잎은 바닥에 사뿐히 즈려 앉아 있다. 어느 한 군데에 치우치지 않고 피어난 곳, 그 자리 아래로 내려온 것만 같다.


시선이 느껴진 것 같다. 다수의 시선이다. 누가 나를 지켜보는가? 아니다. 나를 보는 것이 아니다. 응시하는 자는 벚꽃이다. 담기는 것은 하늘이다. 정갈하게 앉아낸 것들이 지나온 봄을 이제는 땅에서 지켜본다. 제자리를 차지한 것 너머를 응시한다. 아, 이제 되었다. 라고 소리 없이 뜻을 전한다.


멍… 문을 닫고 다시 원래 있던 자리에

풀썩 누워든다.

눈을 다시 감아봐도 돌아오지 않는 잠이다.

아주 살짝 원망하며 방문을 나선다. 낙화구나.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dongmin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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