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소나타 그리고 연극 랑데부
랑데부
랑데부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하는 밀회, 특히 남녀 간의 만남을 뜻한다. 또 인공위성이나 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만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로켓 개발자 태섭과, 과거의 상처를 안고 다시 돌아온 지희. 서로 가장 다른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끌림 속에서 삶의 무게와 아픔을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그러나 감정은 쉽게 나아가지 않고, 매번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반복되는 ‘수요일’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심에 닿을 수 있을까. 그리고 진정한 ‘랑데부(약속된 만남)’는 가능할까—그 물음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예쁘다.
참, 아름다운 사람과 그 눈동자가 보였다. 예쁘다는 건 마주한 시선 속에 빛이겠다. 외적인 아름다움 너머,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는 것. 예쁜 것을 나열해 보자. 사람. 몰입한 눈동자. 까만 눈동자 아래에 맺힌 별이다. 내가 꿈꾸는 모습이다. 육신은 어떻게 하든 노쇠한다. 어제보다는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늙어간다. 내가 나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몇 가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비춰야 한다. 가장 순수한 영역으로 나를 지켜야 한다.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심장을 눌러오는 것을 찾아내 빛을 내야 한다. 빛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눈에서 나타난다. 안광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숲길
일전에 유독 날이 좋던 날, 경의선 숲길을 걸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스쳐 걷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멘델스존)로 심장을 꾹 눌렀다. 그러면 눌린 것이 마음을 타고 눈으로 흘러나온다. 각종 형용사가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되어 나타난다. 한걸음 한걸음, 내 생각의 속도보다는 느리게 말들이 샘솟는다. 예쁘다, 정말 기쁘다, 행복하다, 자유롭다. 그 말을 잊지 않고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그러다 보면 하루의 피곤함이 눈가에 개운함으로 얹어진다. 갑자기 즐거운 일이나 놀라운 일이 생기면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있지 않은가. 그 신체 반응이 실제로 나타난다. 노래를 듣는 것 외에도 방법은 있다. 몰입의 세계에서 반짝이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어제 연극에서 내게 유난히 빛을 준 사람은 배우 범도하다. 그날의 연극은, 경의선 숲길을 걷던 그날처럼, 나를 감정의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이야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나열해 보자. 이래서 사람들이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구나 느꼈다. 태섭과 지희의 일기장이 이렇게 유치하지 않게 전달되었구나. 뻔한 줄거리여도 어떻게 구성하느냐,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여자 주인공 지희는 짜장면집 딸이다. 극의 시작은 갈등이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살던 남녀가 짜장면이라는 음식 하나로 서로에게 이어진다. 부딪힘에도, 투덜거림에도 서로가 신경 쓰이고, 그런 상태가 된 자신을 마주하는 두 사람이 점차 티격거리면서도 서로에게 다가가려 애쓴다. 갑자기 너무 급하게 먹으면 탈이 나듯이, 잘 나가다가도 삐걱거리는 두 사람. 그럼에도 끝까지 서로를 놓지 않고, 끝내 우리는 서로 다른 궤도에서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발끝
금세 손을 마주 잡지는 않는다. 손바닥이 서로를 향해 있지만, 떨어져 있는 영역은 충분하다. 하지만 일자로 뻗어 있는 손바닥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다 서서히 맞닿는 팔. 서로의 팔과 등과 다리를 맞대어 긴 무대를 천천히 걸어 나온다. 발도 살며시 맞춘다. 그들이 내 앞에 와서 조용히 대화를 나눌 때, 마주한 발의 방향이 생각난다. 조명을 받은 검은 가죽 구두와 하얀 구두의 앞코가 서로를 향해 인사하듯 맞닿아 있었다. 앞코와 앞코가 닿은 순간, 마음의 흐름이 깊어지는 감정의 대화가 여실히 그려진다. 당황한 태섭이 지희를 따돌리며 한 걸음 내딛으면, 신이 난 지희는 그 속도에 맞춰 발을 맞춘다.
감정
그냥 일반적인 연극은 아니라는 것이 거기서 느껴졌다. 감정의 대화였다. 좋은 작품을 느낄 수 있는 몰입이었다. 배우 박건형과 범도하는 없었다. 내게는 태섭과 지희도 없었다. 감정과 또 하나의 감정만이 둥둥 떠다녔다. 태어나 버린 인간들에 장기처럼 담겨 버린 또 하나의 시달린 생명체들의 대화다. 태어났으니 겪어야 하는 고통과 수모는 모두 다르다. 그 다른 것들이 서로를 그 고통을 살아내는 방식도, 그 상처를 품은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 것들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나란히 걷는다. 그 맞댐을 통해 침묵 속에서 두 육신이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눈다. 감정이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인사이드아웃 캐릭터라고 상상해보자. ‘강박이’와 ‘가면이’는 어떤가? 두 감정이 부딪히다가도 이해하는 과정을 본 연극을 통해 목격할 수 있었다. 그 감정들의 언어는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장면 하나하나를 감정으로 다시 적어내는 것 같았다.
목소리
마냥 유치하지 않았다. 시놉시스나 전개만 보면 정말 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어떻게든 새로운 방식과 인물로 목격하고 싶어 한다. 왜? 사람이니까. 매번 까먹고 같은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이니까. 그들의 목소리는 한 편의 오디오북 같았다. 소설책을 읽어주는 두 고저의 목소리. 딕션도 좋았고, 원래 오글거리는 걸 못 보는 내가 장벽 없이 그 한 시간 반의 목소리를 담아냈으니, 좋은 연극이다라는 결론이 들었다. 추천할 수 있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추천하고 싶다. 특히, 나는 박건형–범도하 페어로 보았기에 그 조합으로 만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림자
연극이 진행되는 자유소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특이한 무대 구조에 일단 놀라게 된다. 트래버스 무대를 아는가? 무대가 관객석 사이에 길게 놓인 구조를 뜻한다. 즉, 관객이 무대를 양쪽에서 바라보는, 마치 패션쇼 런웨이 무대와 비슷한 형태다. 배우는 관객 중간에서 연기하고, 관객은 양쪽에서 그들의 연기를 바라본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 않은가? 나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 올려 그들의 연기를 올려다본다. 그들은 시선 사이에서 태섭과 지희가 되었다. 더 너머도 보이기 시작한다. 조명과 헤이즈 머신이 눈에 담긴다. 그 공간에서 주인공은 단 둘뿐이 아니다. 감정을 논하는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그것들은 주인공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구체적인 색의 흐름은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마음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복잡해질 때 생각나는 그 색이, 서로를 통해 공명하면 나타나는 그 색이, 함께 시선을 맞닿으면 모두가 아는 그 색이 등장한다. 그 색들은 인물을 비춘다. 하나의 빛 테두리가 되어 배우의 실루엣을 감싼다.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감싸는 노란 조명.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그림자와 빛의 형태. 조명 아래서 울부짖는 태섭의 그림자. 갈등이 전개되면 복잡한 마음을 따라가듯 혼란스럽게 뿜어내는 안개. 두 사람이 각자의 하늘을 바라볼 때는 말없이 푸른 구름이 되어주고, 달이 되어주는 그 그림. 그 순간, 나는 주인공을 응시하기보다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 하늘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 장면은 이야기의 클라이맥스가 아니었지만, 내게는 가장 깊은 감정의 교차점이었다.
손
굳이 우리는 서로 맞닿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 다르다. 혼자가 될 주체들이며, 개인의 내밀한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정확히’ 이해받을 수 없다. 만약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상대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말 진짜 내 속을 이해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렇다고 슬퍼할 것인가? 아니다. 각자의 궤도에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면 된다. 꼭 손바닥을 무조건 맞대어할까? 무조건 내 속을 다 이해받아야 할까? 아니다. 그냥 손바닥을 서로 바라봐 주면 된다.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내 손바닥 안에는 이런 줄기가 있다. 그것을 나누며 공존한다면, 누군가 내게 손을 한번 건네주면, 나도 당신에게 손을 건넬 줄 안다면, 그 안에서 우리는 그때라도 한 번씩 웃어보고 울어도 본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요새 감사한 일이 많다. 사소한 계기가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기에 더 감사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사람은 참 많구나. 내가 관심 없다고 시선을 두지 않았던 곳에도 꽃은 피고 있었다. 내 궤도에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이 자꾸만 튀어나온다. 작년 이맘때의 내가 올해까지 이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날 피워낼 양분은 정말 예고 없이 찾아온다. 참,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언제 슬퍼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행복했던 기억을 자꾸만 더 기억하려 애써보려는 요즘이 감사하다. 내가 손을 뻗어야만 얻어진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꾸만 뻗어봐야지, 어떻겠는가. 태초의 기질로 가지게 된 내성적임은 아닌 척, 어떻게든 접어두겠다. 일단은…. 매번 최선을 다해 부끄러워하면서도 하고 싶은 건 해야겠으니까.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