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쩌다 이런 세상에 놓였나_마지막

[답장집]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리뷰 (5/1)

by 유진

C. Franck, Violin Sonata in A Major

 세자르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바이올린

나는 사실 그날 바이올린을 보았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라는 바이올린이다. 어째서 연주가를 바이올린이라고 칭할까? 소리를 내뿜는 건 바이올린인데 그것을 길고 능숙하게 당겨오는 테츨라프가 더 시선에 간다. 어찌나 활을 들어낸 손이 바이올린 곁을 충실히 맴도는지. 그냥 나무악기와 사람이 서로를 향해 지휘를 하고, 연주를 수행하는 것 같았다. 팔과 다리 그리고 온표정으로 소리를 당겨오고, 그것을 앞으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이 인상적이다. 바이올린이 하나의 일렉기타 같았다. 어찌나 아득하게 끊길 듯 끊기지 않고 계속된 흐름 안으로 남겨둔다.


딱 떨어지는 정지를 택하느니 이어 붙여가는 선택. 이런 광경을 보다 보면, 내가 이렇게 쉽게 봐도 되나? 싶다. 누군가가 이뤄가고 있는 '이상'의 일면과 타인의 '별'을 속 편히 훔쳐보고 있는 기분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늙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치가 있다. 그처럼, 또 현재의 나처럼, 무언가를 이만큼 ‘몰두'해서 좋아할 수 있다면, 그 좋아함의 기간이 상당 시간이라면, 꽤나 그 분야에서 '성숙'한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지 않은가? 나도 언젠간 지금보다 더 저 바이올린처럼 빛이 내려왔을 때 거부하지 않고, 또 거절하지 않고, 충분히 반사광으로 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향기

이상하게 오늘 공연장에선 향기가 났다. (내 옆좌석은 비어있었고, 내가 맨 끝에 앉았으니 실제로 향수의 존재는 없었다) 곡에 따라 향이 달라졌던 것 같다. 소리의 선을 들어내느라 정확히 어디서 그 향을 맡았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지만 분명한 건 첫 번째는 우드향이다. 비누를 파는 곳이나 향기 제품을 파는 곳에 가면 나는 그 향이 있지 않은가? 그 은은한 나무의 냄새가 난다. 테츨라프가 바이올린 같다고 했던가. 그 갈색의 바이올린에서는 시나몬색도 보였다. 짙은 갈색이다. 처음엔 소리가 나름 시원하면서도 응축된 느낌이 들어서 청록색인가? 했는데 아니다. 그냥 바이올린 그 자체의 시나몬이다. 그 너무 달달하지도 쓰지도 않은 소리가 악보를 표출하고 피워냈다.

Franck Violin Sonata in A Major

L. v. Beethoven, Violin Sonata No. 6 in A major, Op. 30 No. 1 – II. Adagio molto espressivo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A장조, 작품번호 30-1 중 제2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스프레시보’

앙코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6번 A장조, Op. 30 No. 1의 2악장이었다. 이 곡은 베토벤의 내면에 큰 변화가 일던 시기, 청력을 잃어가며도 음악적 언어를 새롭게 정제해 나가던 과도기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주가들이 앙코르로 선택해 주는 곡은 대체로 따듯함과 다정함이 묻어있어서 참 좋다. 클래식이라는 장르에서 2악장은 보통 전체 악장 중에서 조금 더 서정적이고 부드럽고 침묵이 잔잔히 맴돌아 있다. 명상의 장이 되어 주기도 하고, 화려하고 어려웠던 레퍼토리라면 마음을 살살 달래주는 담요 같은 역할을 해준다.


이번 리사이틀은 기교적으로 대놓고 화려하지 않았다. 난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테츨라프 연주가가 그렇게 보이지 않게 행했다. 그에게 기술적인 부분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으니 편하게 그가 전하는 네 명의 작곡가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유명 외국인 연주자들의 실내악 공연을 처음 관람 했다. 솔직히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면 그를 알 턱이 없다. 요 근래 매체에서 뜨는 연주가라고 홍보해주지 않고, 이미 너무나 공인된 연주가라서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잘 나가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레전드니까) 이제 나도 그가 왜 누군가에겐 '최애'이고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인지 알았다. 연주 속에서도 확신과 신념이 느껴진다. 강함이 있지만 부드럽고, 또 분명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잔향

놀랍도록 그의 연주엔 잔향이 없었다. 테츨라프는 아까 말했듯이 음을 충분히 잡아내고, 당겨내고, 앞으로 풀어내는 사람이다. 음이 끝나기 전에 이미 그의 손안에 음이 붙잡혔으니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잔향이랄 게 없다. 끝음에서 완전한 온점으로 사그라졌다. 신기하다. 무조건 잔향이 남는 게 좋은 표현법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무는 것이 없이 조용한 공기 소리와 짧게 인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귀갓길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에서 펼쳐진 것이 많으니 내 왼손에 들린 얇디얇은 프로그램북이 이상하게 무겁게만 느껴졌다. 마치 두꺼운 장편 소설집을 한 손에 들고 가는 기분이다. 책 한 권을 들고 지하철 열차 가운데 서서 검은색으로 메워진 창문을 응시한 채 생각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세상을 알아버렸을까. 약간 20대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꿀팁 대신에 80대 작가가 쓴 인생의 내면 소용돌이가 가득 담긴 책을 1시간 만에 완독 한 기분이다. 그 자체로도 기운이 쪽 빠지는데 눈으로 글자를 담은 게 아니라, 소리로 직격탄을 맞아버렸으니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그렇게 멍하게 있다보면 둥둥- 떠다니는 마음 위에, 예전에 읽었던 책 구절이 떠오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악보는 연주가가 작곡가의 지시사항을 관객에게 보다 잘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이정표'다. 테츨라프도 중요한 순간에는 악보를 눈에 담기도 했고, 눈을 감고 깊게 소리를 들이켜기도 했으며, 피아니스트와 완전히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내뱉어 낼 때도 있었다. 오늘 두번째 곡이었던 브람스의 곡 2악장을 음원으로 틀어본다. 이젠 음반을 들으면서도 그의 연주 장면이 그려진다. 그만큼 역동적이지만 과하지 않고 필요한 감정만큼의 액션을 보여주는 태도가 몰입에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아득한 마음

뜬구름 잡는 소리지만, 인생이 길지 않은 걸 아니까 매일이 아득하다. 뒤늦게 후회하고, 이제야 발견했음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가득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쓴다. 가장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나를 위해 조금 더 손을 뻗어낸다. 그런 과정에서 얻어낸 오늘의 공연이다. 택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오늘의 감정이다.


아, 이 글을 써 내려가니까 확실히 아까보다 마음이 덜 무겁다. 아직 품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펼쳐내지 염려도 했는데 쓸데없는 생각이다. 근데 뭐 내가 언제 내 얘기를 한 적이 있던가. 나는 연주가들이 풀어낸 것을 보고, 듣고, 보이는 것을 기억하고 기록할 뿐이다. 왜 기록하느냐? 그 '음'이 피어나고 사라지고 어우러지는 발생 현상을 한눈에 지켜본다는 건 참 재밌기 때문이다. 교훈이고 배울 점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런 공연을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아, 하루마다 내 생각이 재정의되고 있다. 무조건 넓게 넓게 논다고 좋은 건 아니구나! 또 새로운 걸 알았다. 이쯤되니 작은 투정을 하나 해야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세상에 놓였지?


정리하며 : 공연 시작 전 15분, 분수대 앞에서

지나온 공연을 거슬러 분수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나무 옆 벤치에 앉아 하얀색 프로그램 북을 넘겨봤던 시간을 떠올린다. 시원한 바람이 머릿결을 스쳐 지나가고, 분수쇼와 함께 흐르는 곡조에 신나 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나는 다정하게 오늘의 곡을 설명하는 활자를 검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이게 무슨 말일까' 궁금해하며 읽고, 또 지나온 곳을 되돌아간다. 그러다가도 고개를 한 번씩 들어 시선을 높여 사람들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켜 로비 안으로 발 들인다. 가벼운 발걸음이다. 누군가의 최애를 만나러 가는 길목이라서 마냥 신났는데, 그때는 내가 자아성찰적 고전 소설을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어찌 알았겠는가? 집에 오는 길에 축 처진 어깨와 시무룩한 눈썹을 치켜 올리느라 힘들었다! 끝!


아래는 내가 좋아하는 arte의 칼럼이다! 전문가는 어떤 시선으로 그의 공연을 마음에 담아냈는지 또 다른 시선으로 그의 공연을 관람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가져와 봤다. 이제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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