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집]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바이올린 리사이틀 리뷰 (5/1)
Program
J. Suk, 4 Pieces for Violin and Piano, Op. 17
J. Brahms,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K. Szymanowski, Myths, Op. 30 – 'Dryades et Pan'
C. Franck, Violin Sonata in A Major
(Encore) L. v. Beethoven, Violin Sonata No. 6, Op. 30 No. 1 – II. Adagio molto espressivo
Brahms,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요하네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브람스
2악장을 시작한 순간, 노란빛이 들이닥쳤다. 밝기가 올라갔다. 금색의 조명이 두 연주가와 악기를 물들인다. 그 안에 위안과 애정과 내밀어진 손이 다가온다. 정경이 그려지기보단 그 손이 품어낸 감정선을 따라가게 된다. 선에 끊임이 없으니 놓을 수도, 놓칠 수도 없다. 한 번의 우연한 선택으로 일생을 몰입해 온 이를 내 가까운 곳에서 빤히 바라볼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것도 테츨라프라는 사람은 능숙의 수준을 넘어서 그보다 더 앞단계에 와있는 경지에 이른 연주가 같았다. 충분히 관객에게 '음'을 퍼다 나르는 데 그 정도가 정말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적정선 안에서 깊게 파고들어 간다. 감정에 치우치는 걸음이 아니라 악보의 길을 섬세하게 나르는 길이다.
따듯한데 멀다. 가까워지기엔 당신과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게 보인다. 닿기도 어려운 곳에서 어딘가를 비추는 모습을 하염없이 응시하며 나는 떨어지는 것을 애써 닦아 냈다. 30일에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공연과는 정말 다른 결이다. 실내악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 같다. 교향곡에선 아주 광활한 풍경과 내가 펼쳐내고 그들이 펼쳐내는 넓은 세계가 있다. 한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피아노는 그럼 무엇을 그리는가? 고요한 침묵 안에서 우리가 사람이기에 느끼는 복잡 다난한 '감정'과 '내밀함' 쪽으로 방향을 틀어잡아 관객 개개인에게 다가온다.
K. Szymanowski, 'Dryades et Pan' from , Op. 30 카롤 시마노프스키, <신화> 중 '드리아데스와 판'
낯선 소리
테츨라프는 비교적 사용하는 악기가 현대에 제작된 것이라고 들은 것 같다. 뭔가 이 정도의 역량을 지닌 연주가라면 1700년대에 제작된 바이올린 정도는 사용할 것같은데, 오히려 젊은(?) 악기를 사용하니까 역주자 자체의 내공을 잘 받아내면서도, 뭔가 더 울림통에 연륜이 있는 악기였다면 더 좋은 소리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는데, 시마노프스키의 드리아데스와 판을 듣고 나니 왜 그가 현대 악기도 충분히 좋다고 말했는지 이해했다. 이 곡은 시마노프스키가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도중에 작곡한 곡인데, 독특하고 신기한 소리들로 이뤄져 있다. 현과 활이 만나 우웅- 거리면서 마치 벌이 날아오는 듯한 낯선 소리를 내고, 아까 마주 했던 ''자 소리가 그제야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천진한 요정들이 날뛰는 춤 같기도 하고, 합을 맞추는 새싹들의 움직임 같기도 하다.
시마노프스키의 곡을 들으면서 바르톡 소나타 75 1악장이 생각이 났다. 분위기 자체는 다르다. 이 곡은 자연의 중심지에 놓여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풀숲과 강가를 빠르게 달리는듯 지나가는 카메라 화면을 본 적 있는가? 그 장면을 딱 소리로 듣는 기분이다. 인간이기에 낯설게 느껴지는 자연의 언어들을 귀로 듣는 것 같다. 바르톡 소나타는 회색 벽에 둘러 쌓인, 흑백 무성 영화 한가운데에 뚝 떨어진 기분이 든다. 갑자기 우웅- 울렁- 거리면서 나를 내버려 둔 채 어지러운 춤을 추는데, 이 곡과 유사하다. 빛을 내는 청록과 지직 거리는 회색이 내 머리 안에서 마구 뒤섞인다. 서로 다른 연주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바이올린으로 낼 수 있는 예쁜 음들이 숙취에 시달린 것처럼 자제하지 않고 뛰었다가, 소리 질렀다가, 멈췄다가, 퉁- 튀겼다가, 마구 춤을 춘다. 그걸 테츨라프가 행하니 한층 정돈되게 들려온다. 혼란스러운데 수려하니까 바라만 보게 되는 기분을 아는가. 내 곁에 멀리 떨어진 자연을 묘사하여 전달해 주는 전달자를 따라 그냥 멍하니 소리를 받아들였다.
테츨라프
그는 음을 붙잡는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붙잡는가? 하나하나, 아주 찰나에도, 짧게라도 진동한다.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숨 쉰다는 건 박동한다는 뜻이다. 그 스치는 매 순간마다 손과 손 사이에서 피워냈다. 드러내기 위해 도달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단순히 피어난 게 아니라, 한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바이올린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나는 피워내리라.' 팔은 또 하나의 활이 되어 현 위를 오갔고, 감정의 파도가 출렁거릴 땐 무너질 듯 움직이며 넓게 흘렀다. 담백하고 노련한지도 모르겠는 프로 감각을 가진 연주가가 '사랑'을 논하는데 어찌 감정이 뒤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있다
테츨라프가 연주하는 동작, 일순에도 '진동'하는 그 소리. 내가 아는, 내가 좋아하는 소리다.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그 작은 틈에서도 3,4번 정도의 아주 짧게 진동하는 것이 긴 소리 선 안에 가득 내포해 있는 소리. 내가 익히 아는 소리고, 계속 좋아하고 있고, 누군가 닿고자 했던 소리다. 테츨라프가 무척이나 유명한 건 알지만, 내게 바이올린 선생님은 따로 있다. 바이올린이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라는 것을 처음 알려준 사람이 내게는 선생님이다. 다만, 테츨라프는 만인의 바이올리니스트인 만큼 누군가에겐 꿈이다. 그 소리가 누군가의 '심장'을 뛰게 했으리라. 저런 연주를 나도 해내리라! 같은 열망을 가졌겠다. 한국의 유망한 연주가들은 대게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한 악기에 파고든다는 것을 모두 알 것이다.
악기를 다루는 것만큼 세월을 요하는 게 없겠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충실히 연습했는지는 그들 주변사람, 본인, 선생님 정도만 눈치챌 것이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노력을 테츨라프의 연주에서 확인했다. 정면을 마주한 채 깊게 바이올린을 타오르고, 흐름을 확! 주도하고, 일순에도 '진동'하여 음을 보여주는 그 모습이 나와 분명 구면이다. 이 소리에서 누군가의 '형체'가 보인다. 살짝 미래의 모습을 일찍이 본 느낌도 든다. 소리 자체가 테츨라프는 내가 아는 선생님보다는 긴 세월을 함께 하였으니 그 일심동체적인 면모라는 게 조금 더 엿보였다. 연주가 본인께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그 진동과 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너를 통해 만났다.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세에서도 눈 안에 비치는 장면이 있다. 아마 나만이 알고 있는 장면이다. (요 근래라면 내가 본인보다 연주 장면을 더 봤을 테니까) 깊게 눈을 감고 집중한 표정으로 몰입한 상태에서 한층 소리의 중간 지대에 머물러 악보를 이행하는 모습이 퍽 닮았다. 테츨라프가 연주하고 있는 모습 옆으로 그 투명한 인영이 보인다. 나만이 볼 수 있는 미래이자 기쁨이다. 무대 위에 내 추억과 정이 비친다는 건 참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