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건 늘 갑작스러운 법

[클래식 일기] 궂은날에도 브람스와 드보르작은 현재진행형

by 유진

참 궂은 날이다. 분명 새벽이나 이른 아침까지만 비가 내린다고 예고했던 것 같은데, 어째선지 점심이 지나도록 내린 비가 기억에 남는다. 기상청도 기상천외한 날씨 변화 예측에 어려움이 있겠다. 다 사람이 하는 일 아니겠나? 매번 정답이면 좋겠지만, 정답이 아니어도 뭐 어쩌겠나. 그냥 슉슉- 넘어가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겠다. 주어진 문제 상황에 매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결국 나만 손해다.


상황과 환경이 스트레스를 받겠나? 그 문제에 몰입한 나만 고통받지. 결과가 어찌 됐든,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해석을 달리하고, 애초에 그 문제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을 명심할 것. 그게 중요하겠다. 이미 상상으로 생각해 놓은 결과치가 도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고통받으면 안 된다. 애초에 나는 결과를 소유한 적이 없다. (말은 이렇게 해도 잘만 고통받는 게 나다.)


사소한 것에 신경 쓰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통제감을 가지려 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 그래야 무병적당수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 나는 어제오늘 소소하게 감사한 일을 떠올려보겠다. 사소한 감사는 많지만 굳이 나열하지 않겠다. 뻔한 건 재미없고, 음악 얘기로 말을 이어보자. 어제의 감사는 브람스 이중협주곡에서 찾아왔다.

바이올린 임동민 X 첼로 정우찬 | 브람스 이중협주곡 가단조 Op.102 중 2,3악장

이중협주곡이 무엇인가? 두 대의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것이 이중협주곡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을 써냈다. 이 곡은 ‘악기와의 대화’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브람스가 자신의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써냈다고 한다. (그때 당시 요아힘이 아내에게 의처증 증세를 보여서, 브람스가 그들을 중재하려다 요아힘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곡으로 우정 회복을 시도했다고…) 참, 클래식 명곡들의 작곡 배경을 보면 인간미가 있다.


우리가 회사 자기소개서를 쓸 때 지원 동기를 솔직하게 쓰면 어떻게 되는가? “아, 돈이 필요해서요. 취직해야 돼서요.” 등 별의별 말이 다 나오겠다. 그들은 알았을까? 후세 사람들이 이 곡의 작곡 비하인드를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노래 감상에 그런 것까지 알아야겠어?” 하면서 핀잔을 늘어놓을 것 같아서 웃기다. 아무튼, 이중협주곡이 감사했던 이유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경험을 이 곡이 실현시켜 줬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사실 별게 아니다. 그냥 이미 내가 아는 곡을 실연으로 듣기다.


나는 클래식 초심자이기 때문에 아직 유명한 곡 리스트를 다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기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런데 이 곡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협연하는 신기한 형태이고, 브람스 특유의 그 든든하고 장엄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이 가득해서, 이미 머릿속으로 소리 몇 가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5월 9일 공연을 보았는데, 레퍼토리 중 이 곡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실연으로 이중협주곡을 들은 소감은 사실 간단하다. 참 좋았다..! 당신은 연주자마다 음색과 표현이 다른 걸 알고 있나? 그 차이를 발견하는 재미가 꽤 크다.

임지영 바이올리니스트 / 양성원 첼리스트 / 최수열 지휘자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연주자인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주 얇고 선명한 빛을 품은 길고 예리한 은바늘 같은 소리를 내신다. 9일의 임지영 바이올리니스트는 쨍한 색감에 수성펜 정도의 두께감이 느껴지는 음색이었다. 첼리스트는 어땠을까? 양성원 첼리스트의 소리는 지나온 연륜이 느껴질 만큼 두터우면서도, 그 안에 바람이 통하는 넓은 공간이 보인다. 소리 자체가 아래로 풍성하게, 그러나 무겁지 않게 펼쳐진다.


정말 듣기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양성원 첼리스트의 공연은 꼭 경험해 보시길. 티켓값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그렇다면 어제가 지난 오늘의 감사는 무엇일까? 방금 일어난 일이다. 바로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 '아메리칸'! 아르떼(arte)에서 발견한 명곡이다. 홈페이지에 가면, 예전 싸이월드 미니홈피 BGM처럼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너무 좋아)


노부스 콰르텟 | 드보르작 ‘아메리칸’ A. Dvorak String Quartet ‘American’

원래는 따로 재생 버튼을 누르지 않지만, 오늘은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드보르작의 현악 4중주 '아메리칸' 3악장 후반부가 재생되고 있었다. 듣자마자 좋은 곡임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겠나? 유튜브에 바로 검색했다.


이 곡은 드보르작이 뉴욕의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여름휴가를 맞아 스필빌에 머물며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휴가를 가면 이런 악상이 떠오르는 건가? 신기하다.)이 버전은 전체적으로 좋지만, 특히 1악장이 감미롭다. 노부스 콰르텟은 이든 콰르텟 다음으로 알게 된 실내악 팀인데, 이미 명실상부한 연주팀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소리의 합을 듣다 보면 느낌이 온다. "이들은 정말 프로구나…"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공연을 보러 가야지 다짐했다.


어떤가? 노래 두 곡을 발굴한 것만으로도 오늘의 할 일을 다 이룬 것 같다. (물론 정작 해야 할 일은 아직 다 끝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주말엔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어떻게든 흥미로운 것을 찾아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 그리고 언제 올지 모를 무언가를 기쁘게 받아들일 마음 상태일 것. 그게 참 중요하겠다. 왜냐고? 재밌는 건 늘 갑자기 찾아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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