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제를 떠올려야 하는 오늘에 대하여

26일에는 휴식이 있었고, 음악도 있었다

by 유진

어제(5월 26일)는 근래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월요일이었다. 이유가 뭐겠냐! 연차를 썼다. (음하하) 웬일인지 일요일인데도 11시 30분쯤에 잠든 덕분에 월요일 새벽 6시부터 일찍이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준 추가 주말이라고 해도 별다른 건 안 했다. 그냥 방에 틀어 박혀서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갈 준비를 슬슬 시작했다. 직장을 다닌다는 건 생계도 그렇지만, 내가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취미를 거침없이 시도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돗자리 같은 느낌이다. 물론 업무적 스트레스가 있다면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일단 요새는 편안한 편이다. 가을이 오면 또 다른 돗자리를 찾아서 슝슝- 떠날 예정이기 때문에 이제 마냥 누워있을 순 없겠다. 원래 사람의 계획이라는 게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작년 이맘때쯤의 나는 1년 정도 직장 생활을 경험해 본 뒤 중국으로 유학을 가려했었다. 뭔가 큰 숫자가 바뀌기 전에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봐야겠다는 나 혼자만의 큰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엥. 클래식이라는 대박 변수가 찾아왔다. 공연 보고, 음악이랑 친해지는 바람에 중국어에 대한 흥미가 대폭 감소하였다. 나는 원래 하나에 꽂히면 좀 깊게 내려앉은 편인데 아마 2년 전쯤엔 중국어였고 지금은 클래식이 되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에서 이렇게 많은 클래식 행사와 교육, 공연이 이렇게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대형 음악가들의 공연 소식에만 눈이 휘둥그레 해졌던 예전이 아쉬울 지경이다. 관심 있게 찾아보면 무료 교육이나 영화 가격으로 연주가들의 악기 소리를 내 눈앞에서 직관할 수 있다. 즐거운 요즘이다.

어제는 반나절은 내내 잊고 살았던 영어 단어를 들춰봤고, 저녁에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등록해 두었던 클래식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서초랑 전-혀 가깝지 않은 동네에서 사는 주민이 클래식에 눈이 돌아간 바람에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신반포역 혹은 남부터미널역을 드나들고 있다. 복권 당첨되면 고속터미널역 근처에 집부터 사고 봐야겠다. (못 살지도;) 들린 곳은 여느 때처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이곳은 다른 센터보다 음악에 대한 교육을 집중하고 있어서 아마 달에 1,2번씩은 들리게 생겼다. (아 빨리 복권;;)


어제는 '악보'의 옛이야기도 듣고, 관련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소개받았다. 사람들이 지루해질 것 같은 틈에 바로 영상 자료를 공유해 주시고, 청중 간의 대화도 충분히 나누면서 유쾌한 방향으로 강연이 진행되어서 저녁시간임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이 남는다. 특히나 똑똑한 애기 친구들이 많았는데, 적극적으로 손도 들고 대답도 씩씩하게 잘해줘서 2배로 재밌었다. (귀여웠다) 무엇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 품 안에 있다는 건 꽤 기분이 좋은 일이다. (내 주변은 진짜 아직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아쉽) 그렇다고 친구를 사귀기엔 너무 곤란하다. 막 그렇게 사교적으로 교류를 나누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혼자 좋아하는 게 좋겠다. 다들 기회가 되시면 서울시민예술학교의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보시면 좋겠다. 벌써 입소문을 많이 탔는지 강좌 신청 오픈 당일에 마감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당장 29일에는 손열음 피아니스트의 토크콘서트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니까, 거물급 피아니스트를 이 기회에 구경해 보셔도 좋을 것 같다. (흑흑 못 가서 아쉽다) : 자세한 정보는 아래를 확인하시라

그렇다면 오늘(5월 27일)에는 무엇을 들었는가? 이상하게 아침에 걷기 한 15분쯤 지나고 횡단보도 앞에 서면 이 생상스 바이올린 소나타 75 3,4악장이 생각난다. 나한테 친구처럼 만만하고 즐거운 곡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다! 원래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 버전으로만 듣다가 요새는 하이페츠 버전으로 편하게 듣고 있다. 아주 깔끔-하고 빠르기도 아주 신명 나게 날아가주셔서 저 4악장 2분 30초쯤에 도달하면 내가 거의 발에 모터가 달린 듯 종종걸음 칠 수 있다. 당신도 궁금하시다면 시도해 보시면 좋겠다.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쇽쇽 파고들며 지나면서 궁금했던 건, 다들 무엇을 듣고 있을 지다. 혹시 클래식 듣는 분 있으신가? (두리번두리번) 뭐 듣고 계쎄요? (관심관심)

풀랑크 -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작품 119의 아주 일부분

그리고 아까 오후에 발견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건 플랑크 소나타의 일부분인데, 아니 이 부분 뭔가 특이하지 않은가? 처음 들어보신 분은 이게 뭐지 하실 수도 있지만 잘 들어보면, 초반의 울렁거림 이후에 갑자기 아주 얇고 넓고 천천히 파동 치다가 사라지는 소리 하나가 있지 않은가? 여태까지 이 녹음 버전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처음 발견한 부분이어서 너무 신기했다. 이런 표현이 있었구나! 또 새로운 발견이다. 이래서 이 장르가 재밌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모르는 부분이 계속 나타나고, 어제는 진부했던 부분이 오늘은 새롭다. 이 곡도 1~3악장 다 합쳐서 20분은 되니까 매번 악장마다 달리 듣는 재미가 있다. 오늘은 집 가는 길에 다른 음원 버전을 들어봐야겠다. 크크 요새 원래 가는 방향의 지하철을 버려두고 산책길이 구성된 길로 휭- 돌아가고 있다. 매일 같은 길만 걸으면 재미가 없다! 일상에 이런 소소한 재미를 남겨둬야 내가 늘 즐겁게 살 수 있다. 그게 이 삶의 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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