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플랫 위의 들판— 공명은 그들에게, 감각은 나에게

<2025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II. 감각> 아레테 콰르텟_리뷰(1)

by 유진

단단한 단어는 가끔 투명하다 ― 공연을 마주하기 전, 내가 있던 자리

아레테 콰르텟에 따르면 공명은 '사상, 감정, 행동에 대해 공감하여 그와 같이 따르려 함'이고, 감각은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이라고 말했다. 앞선 단어는 2025년의 전체 주제이며, 뒤의 '감각'은 상주음악가로서 하는 두 번째 공연의 부제다.


어쩌다 보니 공명을 주제로 한 공연에 현재까지는 모두 참석하고 있다. 지난 첫 번째 공연 때는 내가 이번 생에선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의 규율적인 곡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몰입할 수 없던 기억이 있다. 더군다나 한참 현대 음악을 골라 듣고(?) 있는 와중이었어서 하이든의 곡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갑갑하고 힘들게 느껴졌다. 설상가상, 아레테 콰르텟이라는 실내악팀은 어떤 색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게 느껴졌던 첫 번째 공연이었다. 그렇다면 지난 5월 29일은 어땠는가?


귀는 여물고, 마음은 어수선했던 ― 더 이상 멍은 안때립니다.

그 전에, 이 공연을 마주하기 직전의 나는 어떤 상태였는가? 일단 지난 1월보다는 훨씬 귀가 트인 상태임을 다짐할 수 있다. 3월에 엄청난 바르톡 소나타 청취라는 도전이 있었기도 했고, 다양한 연주자들을 오가면서 사람마다 가지는 해석(연주 스타일)의 서로 다른 재미를 알았다. 더군다나 이젠 사실 듣기만 하지 않는 시점이 되었다. 악장이 지나갈수록 보이는 게 많으니까(내 머릿속 생각이).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면서 공연을 관람하던 시기는 지났다.


어쩌면 나는 '감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여러 자극들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이면서, 그 인상체들이 주는 느낌을 머릿속 안에 문장으로 죽- 나열하는 즐거움을 알았다. 그러니까 이 공연의 부제가 꽤나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음악 전공자도 아닌 내가 악장별 해석을 어떻게 하고,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어떻게 판단하겠나? 내 시야에 담기는 '풍경'을 담기 바쁘다. 어쩌면 그 공간에서 나는 누구보다 바쁘게 감각하고 있던 사람 중 하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섣불리 판단하냐 생각이 들겠지만, 늘상 그랬던 것처럼 아직 나는 내 마음의 10프로도 이 글에 담지 못했다. 어쩌겠나 나는 길게- 말하는 데 도가 트지 않았던가.


비플랫이라는 명랑한 틀 ― 시대를 따라 흐르는 네 개의 조성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먼저 감각했나? 순차적으로 나열해보자. 시대의 흐름 순이라고 하였다. 이 네 곡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 비플랫이라는 조성으로 시작하고, 마지막 브람스를 제외하면 '사냥'이라는 제목이 있다. 금호아트홀 카드 뉴스에 따르면 비플랫이란 '시'가 중심인 조성으로, 곡 자체가 밝고 활기찬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든은 보다 경쾌하고 또렷할 것이며 모차르트는 유연하고 섬세한 감각을, 브람스는 따로 정해진 부제가 없어도 그 깊이를 스스로 증명해낼 것이라 자신했다. 좋다. 그렇다면 내가 아직까지 알고 있는 네 명의 작곡가는 어떤 느낌인가? 내게 하이든은 바흐만 같고, 모차르트는 아주 동그랗고 붕- 뜬 가볍고 투명한 소리의 곡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비트만은 딱 봐도 현대음악 작곡가 같고, 브람스는 특유의 '쪼'가 있고 장엄한 노래를 잘 만드는 사람이다. 이 정도의 생각을 가진 정도로 가볍게 아레테 콰르텟의 해석을 바라보자.

단정한 사람들 ― 아레테 콰르텟의 공명의 방식

그 전에! 내가 알게 된 이 콰르텟은 어떤 느낌이었는가? 아주- 아주- 모범적이다. 누구의 앞에서 모범적이냐? 작곡가 앞에서 아주 바른 자세로 서 있는 사람들이다. 소리가 모험적이지 못하고, 재미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앞서 그들이 내건 2025년의 주제는 공명이었다. 그들은 작곡가가 음악에 담아낸 사상, 감정, 행동을 공감하여 그와 같이 따르며 현악 사중주라는 장르에 집중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 포부가 하이든부터 브람스까지 너무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들의 소리 합 자체는 누구하나 튀지 않았다. 4중주지만 1중주 같았다. 첼로가 첼로 역할을 하는게 아니고, 바이올린이 바이올린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이미 흐름 자체가 하나의 결이어서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아레테'의 소리였다.


조용한 색채들 ― 네 개의 악기, 네 개의 파스텔

소리 자체의 느낌은 어떠했는가? 아무래도 제1바이올린의 소리가 가장 큰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에 전채안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콰르텟의 큰 색채감을 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채안 바이올리니스트는 은은한 아이보리가 섞인, 밀키함이 있는 딸기우유색과 연하늘색을 보여주었다. 연분홍과 연하늘색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따듯하고 포근하고 안정감을 준다. 정말 안정적이고, 우아한데 가까이서 보니 빛도 있다. 빛이 있다는 건 소리가 쨍-하고 선명하다는 것이다. 근데 그마저도 따듯하다. 뭔가 더 날 것처럼 휭- 날아오를 수도 있는데 딱 언저리에 머물러서 다른 영역까지 안아버리는 흐름이다. 파동 자체도 깊게 타기보단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온다. 연주를 하며 상체가 앞으로 내려올 때도, 대각선 뒤로 물러날 때도 과격하지 않다. 게임 중에서 타이밍에 맞춰서 가운데 쯤에 놓여있는 특정 영역에서 stop을 눌러야 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제1바이올린은 남들이 어려워 전혀 깨지 못하는 '중간지대' 안에서 따듯한 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 흐름 안과 밖과 옆에 또 하나의 바이올린이 함께하고, 첼로도 보이고 비올라가 곁에 있다. 첼로는 육중하게 내려앉는 사람은 아니었다. 여기도 딱 그 닿기 어렵고 머물기 어려운 바이올린의 딱 아래 위를 오갔다. 비올라는 정말 때로는 첼로 같았다. 이렇게 목소리가 큰 악기였던가? 가끔은 빠르게 기교도 부리는데 가볍지 않았다. 그런 소리였다. 다들 일단 파스텔톤은 확실했다. 전채안 바이올리니스트가 연하늘과 연분홍을 오가는 사이에 박은중 바이올리니스트는 그 옆을 연두색으로 지켰고, 비올라는 톤다운된 다홍색, 첼로는 무겁지 않으나 연보라보다 짙은 언저리의 색으로 아래를 지켰다.


어떤가? 내가 감각한 이 팀의 색이 보이는가? 따듯한 사람들의 소리다. (연주가님들 성격좋으시죠?) 누구하나 높게 튀어오르지 않고, 자신들의 특유의 부드러운 말랑카우같은 색감을 가진 채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시켜버리는 무서운 모범생같은 사람들이다. 특히나 고전의 작곡가들은 종교적인 배경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하이든과 모차르트 할 법에는 정말 수도원에 소속된 정규 현악 4중주 팀이 공연하는 줄 알았다.


그들의 바깥에서 ― ‘사냥’과 ‘비플랫’의 진짜 얼굴

작곡가의 악보 안에서 충실히 공감하고, 진동하는 게 보였다. 왜냐면 하이든 때는 잔잔하고 좋았지만 여전히 내게는 규율적인게 느껴졌고,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존경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반영하면서도 그가 그려내는 통-통- 튀기는 물방울을 조금 더 확장해서 보여주었고, 비트만 때는 작곡가가 지시한 게 아니라면 절대 못보여줬을 엄청난(?) 텐션의 힘으로 연주와 괴성을 질러주었으며, 마지막 곡에서는 정말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고전을 중시했던 브람스만의 느낌과 풍성한 사운드감을 보여준게 기억에 남는다. 비트만은 논외로 치고 하이든-모차르트-브람스 순서대로 소리와 표현 자체가 조금 더 확장 되고 있음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이러하니 내가 모범생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모범적으로 그들의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청중하게 건넸다. 작곡가와 공명한 현악4중주를 내가 또 언제 보겠는가?


사실 내가 그들에게 공명할 수는 없었다. 주제 자체도, 곡 표현 자체도 나(청중)에게 닿고자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가운데서 피어난 소리가 뒤쪽에서 위로 향하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관람객이었다. 영화나 전시회에서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다. 전람회의 그림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것도 안되면 곡 자체가 비 플랫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비트만을 제외하면 이 곡들에 화려한 기교나 서글프거나 한없이 서정적인 표현 자체가 없다. 그저 흐름을 느껴보는건 정말 평화 안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게 무엇인지 탐구하는 시간에 오히려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곡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못했는데 벌써 말이 많다. 그렇다면 내가 진짜로 '감각'한 시선을 논해보자. 나는 아레테콰르텟을 통해 어떤 '사냥'과 '비플랫'을 만났는가?


이야기가 길어지는 만큼, 남은 감상은 5월 31일에 이어 나누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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