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라이의 오프닝이 막을 올리는 틈에서
잘 모르니까 재밌고, 감이 안 오니까 예측이 어렵다. 이럴 땐 추천해주신 비올리스트 최하람의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를 들어보면 좋겠다. 일전에 교향악축제에서 비올라는 흑연필로 빗금을 사선으로 긋는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쇼스타코비치의 안으로 들어오니까 뭔가 오늘은 ‘첼로’ 같다. 물론 그보단 높은 선상에 위치한 음색이지만, 바이올린보단 확실히 중심 자체가 진중하다. 더블베이스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선명하게 음색 자체를 들어본 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최하람 비올리스트가 '분명함'을 앞세워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3악장 안에서는 그렇게 들린다. 신기하다.
사실 본격적으로 클래식 공연을 다니게 된 이유는, 항상 내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명제'가 확실히 부서지면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재미 때문이다. 공연장이 즐거움을 주는 유희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얹고 가면, 새로운 문장 하나씩을 꼭 더해준다. 이론적으로, 완전히 남 일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줄글을 읽는 것보다, 내 짧은 생각 안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실 자체가 이미 공공연한 것이라는 걸 역순으로 알게 되면 그것만큼 유쾌한 일이 없다.
이를테면, 얼마 전에 유튜버 탱로그께서 한 채널에 나와서 연주가마다 다른 해석(연주)을 보여주는 것에 관해서 말씀하셨다. 특히나 비브라토(소리를 살짝 떨리게 해서 감정을 담는 연주 기법)에 대해 이야기하셨던 부분이 너무 인상 깊었다. 처음 내가 현악기에 입문한 곡은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이 곡은 바이올린 레퍼토리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곡이겠지만, 이 장르를 아는 사람이나 18번이지, 모르는 사람들은 관심도 없다. 다만, 나는 이 곡을 듣자마자 서서히, 혹은 한순간에 매료되었다. 특히나 2악장.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멘델스존을 들어보시면 딱—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흐름 자체가 급하지 않고, 분명히 짚어나간다는 느낌이 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신중히 머물다가, 높아질 수 있는 영역에서는 부드럽게 타오른다. 이 지점이 연주가만의 개성의 영역이라는 건 한참 나중에, 다른 연주가의 멘델스존을 들어본 이후에나 알게 되었다. 분명 같은 곡인데, 미묘하게 안 끌렸다. 내가 아는 멘델스존은 여기서 충분히 기다려줬는데, 왜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 버리지? 나랑 손을 잡고 헛둘—헛둘 기다려줘야 하는데? 하면서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들었다. 다른 영상 버전들 모두 조회수가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연주가들은 다 이유가 있지 않은가? 누가 들어도 좋을 확률 자체가 높다는 이야기 아니겠나.
하지만, 이와 별개로 내 취향이 어떤 느낌인지를 먼저 팍—알아버리고 나니까 사람들의 관심 여부와 상관없이 이전 버전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아—그날 이후로 알게 되었다. 연주가들마다 자신만의 색을 담는다는 게 이런 지점에서 발생하겠구나. 그리고 임동민 연주가의 해석에 끌렸던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느낌의 표현을, 비브라토를, 절제를 다뤄줬기 때문임을 '직접' 깨달았다.
연주 장면을 종종 보는데, 현 위의 왼손이 유달리 진동하고 있는 게 보였다. 또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는 소리 끝에는 약지가 넓게 손을 펼친 상태로 현을 짚고 있었다. 듣기만 했지, 그렇게 연주법이 일치하는지는 몰랐다.
이 지점에 대해서 궁금해져서 C랑 신나게 이야기를 하다가, 악보에 비브라토가 세세하게 지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악보는 생각보다 불친절하면서도 자유로운 영역이었던 것이다. 미쳤다. 내가 좋아하는 게 누군가의 선택지와 해석으로 비롯된 일이구나! 전율까진 아니더라도 이 장르만이 줄 수 있는 깨달음을 내 발자취로 직접 건져내니 너무 행복했다.
그래, 이 장르는 어차피 친해지려면 끝이 없는 것을 나도 안다. 연주가들도 모르는 곡이나 연주법이 가득할 텐데, 나라고 언제 금방 친구가 될 수 있겠는가? 늘 나한테는 아주 먼 친구다. 다만, 항상 내 쪽을 바라봐주고 있는 것은 맞다. 어찌나 재밌는 창구도 많은지. 악보를 볼 줄도 모르면서 유튜브에 있는 악보 영상의 음표를 따라가면서 소리를 청취하는 것도 재밌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소리랑 음표를 매치해보는 재미도 있다. 얼른 내가 온전히 취미를 영위할 수 있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막 파고들어가면서, 몰랐던 것을 마주해보고 싶은데 아—할 게 너무 많다. (이것도 배부른 생각임을 안다) 즐길 수 있을 때 재밌게 즐겨야 한다. —체력을 열심히 기르면서—방금도 오늘 관람할 줄라이 페스티벌 오프닝 공연의 사전 문자가 발송되었다.
마지막 문구가 나를 설레게 했다. "곧 뵙겠습니다." 누군가의 열망과 노력 안에서 피어난 것을 지켜보는 재미는 당분간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겠다. 병사들의 이야기? 솔직히 아직까지도 어떤 극이 펼쳐질지 감이 안 오고, 친해질 수 있을지 자신 없다. 하지만? 연주가들이 나를 충분히 설득시켜주고 또 새로운 한 문장을 남겨줄 것을 알기에 괜찮다. 무지한 나는 이렇게 배움이 많이 필요하다. 그럼, 나도 오늘의 글을 남기고 바이올린 팔고 파멸하는 병사의 이야기 품 속에 잠시 다녀 오겠다. 곧-아마 내일-뵙겠습니다!
유튜브에서 생방송으로 감상할 수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시라!
+) 오늘 있었던 즐거운 일을 추가하고 싶다.
당신은 클래식FM을 아시는가? 라디오 채널인데 유튜브에서 생방송으로 감상할 수 있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진행하는데 보통 그 시간대는 밖에서 이동하는 시간이라 늘 청취하기 번거로웠다. 근데 오늘 '문득' '갑자기' 라디오가 궁금해져서 8시 후반부부터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 흘러나오는 거다. (!!!!) 알고리즘도 내 편이고, KBS도 그 잠깐만큼은 내 편이셨다! (음하하하)
*이미지출처: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