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가끔 보면 현대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뮤지션들을 종종 마주친다. (봤던 것 같은데?) 내 최애도 그렇다. 인터뷰 기사나 공연에서 선택하는 레퍼토리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대체로 근대 쪽에 가까웠다. 어차피 클래식 세계에서 내가 아는 곡은 우주의 먼지만큼 작기 때문에, 매번 새롭다. 완전히 초면인 작곡가를 만날 때면 이제는 낯설지도 않고, 오히려 “어서 오십시오!” 하는 마음가짐이 생긴다.
왜냐고? 어차피 당신과 나는 필연적으로 친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작정 리스닝하면서 누적 재생을 쌓다 보면, 결국 당신이 왜 ‘최애의 픽’이 되었는지를 파헤치게 될 테니까! 오늘도 쉬니트케의 피아노 5중주를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내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데 이 곡, 낭만주의 시대 작품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내 클래식 입문은 확실히 낭만이었다. 그런데 듣는 건 자꾸 현대 쪽이다. 줄라이 페스티벌도 마침 한 달 내내 러시아 또는 현대 음악을 주제로 공연을 한다. 뭔가 아이러니해졌다. 그래서 문득, 내가 어떤 루트를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나열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한 곡씩 깊게 파고든 뒤 또 다른 곡으로 넘어가는 타입이라서, 나름의 순서가 있다. 물론 중간에 빠진 곡도 있을 테지만, 일단 쭉— 적어보겠다. 놀라지 마시라. 좀 길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 슈만 〈피아노 협주곡〉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슈만 〈현악 4중주 3번〉 → 비에니아프스키 〈화려한 환상곡〉 → 파가니니 〈칸타빌레〉 → 생상 〈바이올린 소나타 1번〉 →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 브람스 〈인터메초〉 →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 → 베토벤 〈현악 4중주 13번〉 → 멘델스존 〈현악 4중주 81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 → 크라이슬러 〈서주와 알레그로〉 → 엘가 〈사랑의 인사〉 →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 →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JW VII/7〉 → 풀랑크 〈소나타 FP 119〉 → 바르톡 〈바이올린 소나타〉 → 사리아호 〈녹턴〉 → 풀랑 〈사랑의 길〉 → 퐁세 〈에스텔라〉 →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 →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 보로딘 〈현악 4중주 3번〉→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1번〉→ ing
뭐가 이렇게 많나 싶겠다. (하하하하) 사실 곡 수는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작곡가 이름이 길다 보니 글자 수가 많아 보일 뿐이다. (변명이다) 단언컨대 위에 적힌 곡들은 모두 명곡이다. 클래식 마니아라면 “이걸 몰라?” 할 정도로 유명한 레퍼토리들. 중간에는 함정도 있다. 예컨대 바르톡의 소나타. 어렵다. 진짜 어렵다. 아마 처음 듣고 바로 꺼버릴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는 이 곡을 실제 공연장에서 잘 들어야 한다는 목적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은 거지, 순전히 클래식과 친해지고 싶어서 듣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런 곡들을 연주하는 당사자들도 신기하다. 연습하다가 짜증이 나진 않을까? 이게 의도된 불협화음인지, 내가 지금 틀려서 그런 건지 어떻게 구분할까? 물론, 다들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마냥 신기하다.
사실, 나는 지금 현대 음악과 지인 정도는 된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대’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거부감이 들던 예전과는 다르다. 오히려 반갑다. 너무 자주 마주치다 보니 애초에 부드럽고 유려하게 흘러갈 거란 기대 없이 듣게 된다. 삐걱거림은 기본값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뭐야, 또 예뻐지네? 갑자기...
이 영역의 음악이 주는 들고양이 같은 매력이 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데다, 왠지 면접 전형 결과랑 닮았다. 분명 붙을 줄 알았는데 떨어지고, 안 될 줄 알았는데 붙고. 결국 입시나 면접이란 것도 운이 85% 아니던가. 사람이 정한 기준선에 사람이 평가하는 거니까.
그 운에 기대어 무언가를 계속해서 달려가야 하는 우리네 인간사를 가장 내밀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장르가 바로 이쪽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제 그렇게 안정적이었던가? 늘 삐걱대고, 삐뚤빼뚤하다. 직선주로로 깔끔히 성공한 적은 손에 꼽는다. 그 시소 같은 인생을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 야나체크 같은 작곡가들은 정말 잘 그려냈다.
누가 클래식이 지루하다고 했나. 복잡해서 미치겠다! 나는 소리 단위를 음미하면서 듣는 편인데, 이 시대의 작곡가들은 아주 짧은 구간에서도 음의 변화가 기막히게 다채롭다. 듣고만 있는데, 마냥 들을 수가 없다. 자꾸만 나를 검은색 혹은 흑백 감정선으로 확— 끌고 간다. 한 악장에서 분위기가 네 번쯤 바뀌기도 한다. 난리다, 정말. 인생이 지루하다면, 이 장르의 음악을 음미해보시라. 갑자기 온 세상이 유순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오늘, 처음 보는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의 품 안에 들어갈 예정이다. 오랜만에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에 신청해둔 프로그램이 있다. 이 센터는 맨날 재밌는 것만 해서 안 갈 수가 없다. 사실 좀 안 가고 싶다. 서초구 주민도 아닌데 이렇게 남의 동네 프로그램을 잘 향유해도 되나 싶지만... (땅연하지. 나 한국인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이 천리인데도 자꾸 가게 된다. 그 이상의 가치를 주니까. 이제 지하철 요금도 1,550원으로 올랐으니, 가서 잘 배우고 와야 한다. 오며 가며 커피 한 잔 정도는 쓰는 셈 치고, 오늘도 재밌게 즐겨봐야지. 솔직히 말하면 오늘도 “왜 가지?”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갔다 오면 안다. 내가 굳이 침대 위에 누워 있을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게 낫다는 걸. 내일보단 오늘이 젊을 테니.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