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벅꾸벅, 쇼스타코비치 위로 잠이 쏟아지는 9일이다.
진짜 너무 졸리다. 왜 사람은 이렇게 패턴처럼 특정 시간에 졸음이 몰려올까? 요즘은 밤 12시, 1시만 되어도 머리가 띵하다. 매일 체력이 100%라면 얼마나 좋을까. 뒷받침해 주는 게 없을 때는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럴 때마다 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 그래봤자 계단 오르기 정도지만.
아까 어느 정도로 졸렸냐면, 쇼스타코비치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라단조 40번을 재생해 놓고 한참 멍을 때렸다. 화음이고 소리고 하나도 안 들렸다. 오히려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고개만 꾸벅거리며 무게를 더하는 기분이었다. 좋은 곡인 건 분명한데, 유선 이어폰의 지직이는 음질 사이에 놓여 있으니 불면증 예방 수면제 같았다. 어떤 곡이었는지는 밤산책 때나 확인해야겠다. 어우, 졸려.
오늘은 줄라이페스티벌 선예매를 했다. 어젯밤, 어떤 공연을 볼지 한참 고민하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기에, 선예매 시간인 오전 10시에 맞춰 곧장 문자를 보냈다. 오후쯤에나 확정 문자를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예약 확답이 와서 기뻤다. (키키) 얼른 7월이 왔으면 좋겠지만, 행복한 한 달을 보내기 위해서는 이번 6월을 바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꺼풀이 또 무거워진다. (;;) 아니야, 무조건 해야 한다. 의지를 가지고… 그래야 예습과 복습할 시간이 많아진다. (흑흑)
클래식은 정말 재미있지만, 예습 없이 가면 너무 아쉽다. 연주자의 소리에서 생각을 담아가려면 반드시 미리 친해져야 한다. 하필이면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가 7월에만 공연을 네 차례나, 그중 하나는 협주곡까지 준비하셨다니… 클남, 진짜 어떡함. (행복에 겨운 소리)
이쯤 되면, 이 분야의 다른 연주자를 좋아하는 팬들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곡을 들을지 궁금하다. 그 연주자 버전의 곡만 들을까, 아니면 나처럼 실제 공연을 위해 예습하는 데 시간을 많이 쓸까? 나중에 관련 분야의 친구가 생기면 꼭 물어봐야겠다.
오늘 줄라이페스티벌의 쇼스타코비치 곡들도 어제, 오늘에서야 처음 접했다. 쇼스타코비치가 이렇게 실내악 작품도 썼구나. 굳이 어렵게 찾아 듣지 않아도, 공연 소식 하나로 팔중주·소나타·피아노 3중주까지 알아갈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클래식이 궁금한데 무엇부터 들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의 방식을 따라 해도 좋다. 일단 어디로 들어가느냐? 예술의전당 홈페이지 공연 일정 캘린더다.
여기에서 궁금한 공연을 클릭해 프로그램 노트를 확인한다. 그 제목을 복사해 유튜브나 음원 사이트에 검색해 들어보는 것이다. 클래식은 영미권 음악이라 제목이 유난히 복잡하지 않은가. 홈페이지에서 정확한 명칭을 복사해 두는 것이 속 편하다. 내가 한 번 대신해 보겠다.
6월 공연 일정을 보니, 일반인들도 잘 아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무대가 6월 14일에 예정되어 있다. 무슨 레퍼토리일까? 어디 살펴보자.
오, 곡명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14일에는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이, 17일에는 리스트·베토벤·버르토크·브람스의 작품들이 연주된다. 이렇게 한글로 명시되어 있으면 가끔 검색이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이번 곡들은 느낌상 쉽게 확인될 것 같다. 특히 14일의 프로그램은 조성진이 앨범으로 발매한 전곡이어서 찾기 더 수월하다. 클래식 애호가나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왜 유명한지 알겠지만, 일반의 시선에서는 ‘유명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왜 유명한지는 ‘유명하다’는 사실로만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어떤 힘이 있기에 몇 백 석이 넘는 좌석을 가득 채우는 걸까. 나도 아직 그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연주가 시작되는 순간 물빛이 흐르는 호숫가를 테마로 한 4DX에 몸을 싣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그의 연주는 쇼팽 콩쿠르 결선 무대, 드뷔시 ‘달빛’,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뿐이다.
이 세 곡을 연달아 재생시키면, 피아노가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할지도 모른다. 건반을 가장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인데, 그 소리 자체가 매공기에 공명한다. ‘유명하다’는 건 사실 별 이유가 없다.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것을 능숙하게 피워내 곡 하나가 완성되었는데, 다시 사람이 아닌 소리를 창조해낸다. 그 광경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이 이 장르다.
새로운 경험을 하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자본적 여유도 있어야 하고, 어디로 향할지 결정도 해야 하며,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숙고의 시간도 필요하다. 물론 P 성향인 사람에겐 이 무게가 가벼울 수 있지만, 여행 자체를 과업으로 바라보는 내 시선에서 클래식은 아주 간편한 또 하나의 낯선 도착지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작곡 배경을 통해 실마리를 잡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중요한 건 아니다. 연주가에게는 신중히 다뤄야 할 부분이겠지만, 나는 속 편한 관람객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노트의 사전 안내는,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않게 해주는 ‘방향키’ 정도로만 여긴다.
그리고 나서, 멍하니 현재를 살아가는 연주자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물론 이 전달자가 어떤 색을 지녔는지 알고 싶다면, 공연 전에 미리 들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이 곡을 만든 작곡가(브람스나 베토벤 등)가 언제, 어떤 시점에 곡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면 역시 사전 청취가 유리하다. 번거로울 수 있지만, 생각을 바꿔 클래식을 하나의 여행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공연 전까지 한 달쯤의 시간을 두고 음원 사이트에 몇 곡을 담아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들어보는 것이다.
앞서 조성진의 레퍼토리로 돌아가 보자.
한국어로 ‘라벨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검색하니 독주 앨범이 바로 떠오른다.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한다면 다운로드해 들으면 되고, 아니라면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청취를 시작하면 된다. 40초 남짓의 짧은 곡도 있고, 가요처럼 4~5분짜리, 길어도 9분 남짓의 곡이 많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다. 라벨의 곡이 마음에 들었다면, 17일에 연주될 베토벤 곡은 어떤 작품인지도 가볍게 검색해 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곡들에도 시선이 이어질 것이다.
이렇게 청취 경험을 쌓은 뒤 실제 공연장에 가면, 갑자기 음이 내 앞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듯한 감각을 받게 된다. 연주가는 생각보다 공간에서 소리를 짜내는 ‘직조자’ 역할을 한다. 보이지 않는데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며, 몰랐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게 이 장르가 선사하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