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2425!

[공연 리뷰] 대구콘서트하우스 특별연주회 : 크리스마스 에브리데이

by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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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크리스마스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브에는 뭘 해야 12월의 끝자락을 잘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지만, 이브에서 막 25일을 넘어온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놀랍지도 않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연말 특별연주회 〈크리스마스 에브리데이〉가 열렸다. 정주영의 지휘 아래 DCH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았고,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과 소프라노 강혜정이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훔퍼딩크의 〈헨젤과 그레텔〉 서곡을 시작으로 협연곡과 성악곡,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3악장, 그리고 캐럴까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담은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이번 공연에는 남산복지재단 소속의 성인 발달장애인 연주자들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이번만큼은 정말 리뷰를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공연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구성부터 레퍼토리까지, 고요한 분위기 속 즐거움의 파도를 몇 번이나 오가며 듣기 좋은 화음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 12월 24일의 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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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연출이 압권이었다. 무대 위 곳곳에 눈 내린 트리는 물론 촛불 모양의 조명이 놓여 있었다. 발레 공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서늘한 푸른빛의 조명이 공연 시작 전부터 무대를 감싸고 있었는데, 흰 눈이 쌓인 한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곡이 진행될 때에는 노란 조명 빛이 바이올린 위에 때때로 드리워지고, 보라와 파란색이 첼로 위에 내려앉아 장식을 더했다. 원래 저 자리에는 흰색만이 자리하지 않았던가. 공연 후반부에는 하얀 컨페티가 무대와 객석 사이로 눈처럼 흩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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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식들에 마음이 뺏기긴 했지만, 사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정주영 지휘자의 뒷모습과 손끝이었다. 선율을 이끄는 태도에는 부드러운 강단이 있었고, 협연자의 호흡을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에서 소리에 대한 성의가 또렷하게 보였다.


공연이 끝나면 조용한 LP 바에 들러 칵테일 한 잔쯤 마셔보자는 낭만적인 계획이 있었는데, 칵테일은 무슨. 당장 숙소로 돌아와 내일 아침에 마실 용도로 남겨 두었던 커피를 들이키고 노트북을 열었다.


마음에 남는 것은 반드시 써야 한다는 나만의 불편한 규칙이, 25일이라고 예외가 될 리 있겠는가. 오히려 좋은 명분만 제공해 준다. 크리스마스엔 루돌프 같은, 산타의 털모자 같은 글을 써야지.


그래, 어차피 쓸 거라면 오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루만 지나도 징글벨 타임은 지나가 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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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퍼딩크 – 〈헨젤과 그레텔〉 서곡

이 소리를 굳이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관악의 따뜻한 ‘몽글거리는 옹알거림’이겠다. 현악이 서서히 다가올 때는 어떤가? 서로에게 다정히 섞여 들어 하나의 구름으로 이어지니, 선율이 관객석 안으로 파고든다. 방향은? 앉아 있는 자들의 아래로 내려앉는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딱—기모 담요를 닮아 있는 것들이 성탄절의 윤을 들고 나타나 흥도 들여다 놓는다. 현악의 안온함과 관악의 장난스러움, 아이러닉한 흐름이 섞여 드니 이거야말로 크리스마스가 아니던가. 관악이 재미난 걸음을 걸어 주니 마냥 고개를 까딱이며 현악의 품에 안겨 있을 수 있어 좋다.


장중하게 또 씩씩하게 배경을 만들어 내는 여러 선들의 절묘한 합이 보이는가? 평화를 상징하지도, 넓은 투지를 보여 주지도 않는다. 오늘은 ‘해피’하게 즐기면 되는 날이다.


악기들이 지휘자의 요술 지팡이를 따라 제 영역 안에서 따듯한 이야기를 한다. 겹겹이 쌓아 올려지는 것들이 있으나 버겁지 않다. 이 안에서는 행복한 꿈만 꿀 수 있다 전했거든.


시벨리우스 – 축제풍의 안단테

시벨리우스의 축제는 은빛의 대각선을 닮아 있구나. 사선이 그려짐에도 시렵지 않고, 온기가 없음에도 고독한 느낌이 없다. 흰 눈 안에서 내려오는 것들을 이방인들과 사이좋게 구경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굳이 다정한 시선을 나눠야 할까?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전해질 마음은 다 전해지지 않던가. 소리의 기운 자체가 무표정인데 옆을 같이 지켜 주는 사람을 닮아 있다.


말하지 않아도, 이어질 수 있다. 그리 전하는 마음이 있으니 아까보다 더 높은 환호가 관중석에 터져 나왔다.


발트토이펠 – 스케이터즈 왈츠

내가 어떤 왈츠를 출 수 있을까? 제1바이올린과 관악이 요정이 되어 있다. 봄의 기운을 닮은 것들이 미소를 가져온다.


현악이 뒷선으로 관악을 위해 아지랑이 같은 소리를 내면, 관악이 끊임없이 마음 하나를 묘사해 낼 것이다. 이윽고 두 손을 맞잡는 왈츠의 순간이 도래한다. 속으로 ‘쿵짝짝’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저들의 선율에 함께하는 이들이 있으니.


내 오른편에 계셨던 할머님께서는 관객석의 작은 지휘자가 되어 오른손을 하나둘, 하나둘 흔드셨고, 왼편의 어머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계셨다. 기분이 좋아졌다. 반짝이는 타악기 소리가 규칙적인 박자로 귓가를 맴도니 신나지 않을 이가 누가 있겠나.


간들어진 바이올린과 거대한 두드림이 마음을 연약하게 만든다. 이래서 크리스마스 직전이 제일 신나는 걸까? 짧은 춤을 출 때는 강한 포인트가 되어 주는 타악이 반갑다.


이 곡의 이별은 마치 당첨자를 발표하기 직전의 순간을 닮아 있어 이어질 곡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 냈다. 나는 기억한다. 내 뒤로 느껴지는 기분 좋은 박수 소리들을!


마스네 – 타이스의 명상곡 (Violin 임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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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곡을 당신이 듣게 된다면 ‘고즈넉한 안정됨’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들으면 또 듣게 되고, 이상하게 반복해서 찾게 되는—그만큼 듣기 좋고, 불안정한 것들이 차분히 내려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율이 가득하다. 그러니 궁금했다. 이 좋은 곡을, 그는 어떻게 흘려낼 것인가?


아래에서 시작하는 낮은 선을 그어낼 것이다. 다만 그 경사는 매우 완만하다. ‘서서히’보다 더 하단에 위치해 이어질 것이다. 바닥에 붙지도, 하늘 위를 높게 날지도 않고, 너무 많은 파동을 선택하지도 않을 것이다.


0으로 사그라들지도, 영영 떠나버리지도 않을 것들을 닮은 형태로 부드럽게 다가올 것이며, 기색은 시원한 바람을 닮아 있다. 조금 낮은 음을 이야기할 적에도 벽난로 옆 통나무 하나 정도의 든든함을 닮아 있을 것이니 문제없다. 연분홍빛 바람들과 함께 노닐 것이다.


합을 맞추는 모습은 어떠한가? 그들보다 살짝 앞에서 두꺼운 선으로 서 있을 뿐, 함께 나아감이 눈에 담긴다.


내가 생각한 안정된 소리보다 저 직선이 살짝 높이 위치해 있는데, 그 자체로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어 신기했다. 마냥 편안한 게 아니라,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저만치의 거리에서 아랫선을 그려 내주니 마냥 편하게 지켜볼 수 있다. 과하게 아름다워질 필요도, 지나치게 담담한 노래를 부르지 않아서 좋다.


필요한 만큼만 함께 기다리고, 중간 선상보다 아주 살짝 날아오른다. 윤 한두 개를 손안에 붙잡아 낸 순간, 웅장한 폭풍 하나가 마음 안으로 진하게 내려앉는다. 다만 그럼에도 놀라는 이 하나 없다. 왜? 별이 여기 있거든.


생상스 –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Violin 임동민)

이어졌던 곡 중에 가장 비장한 것이 서두에 깔리고, 바이올린이 기세 있는 소리를 들여다 놓을 것이다. 매혹적이기보단 신중하게 들여다 놓고 있음에 집중하자. 한 결도 쉬이 내놓지 않을 것이다.


바이올린이 매혹적인 건, 높은 소리를 냈다가도 꼭 몇 겹을 겹쳐 놓은 것 같은 진중함을 시시각각 묘사할 수 있음이다. 소리가 완전히 뒤집어진 건 아닌데, 높게 날아오를 적엔 가볍게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수놓아진다.


흐름을 보다 재미나게 가져가 볼 적엔 어떤가? 필요한 만큼 새침해지고, 리듬을 가지고 놀 줄 아는구나. 마냥 간드러지지 않아 좋다. 화음을 함께 이뤄 나가는 길이 아니던가?


기세를 강하게 가져가지 말고, 어우러질 수 있을 만큼 캐릭터를 드러내니 관악과 서로 다른 소리로 흐름을 이어 갈 때도 표현의 차이를 음미할 수 있다. 애초에 이 연주가의 소리가 다정한 편은 아니라, 그 끝선의 날카로움이 이 곡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만 색의 선명도를 높여야 할 구간에서는 기꺼이 머리를 들어 올리고, 내려다 놓기도 할 것이다. 대각선 하향으로 소리를 꽂아 넣기도 하는구나. 특유의 리듬감으로 점도 찍어 내기도 한다.


막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곡은 아닌데, 구간마다 소리의 이곳저곳이 서로 다른 길이니 개별 요소들 하나하나를 음미할 시간이 주어졌다. 어떤 건 막 세차게 파고든다.


사선으로 내려꽂는 번개는 또 어떤가? 재빠른 춤사위를 보일 때는 또 어떤가. 오늘 곡들 중에 가장 연주자에게서 기교적인 재미를 목격할 수 있는 구간이 여긴가 싶은 부분이 후반부에 몰아치더니, 아주 깔끔하게 끝을 낸다. 그러니 환호성이 그렇게 컸지. 어째 오늘의 레퍼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관객의 호응도가 더 높아졌다.



고향의 노래, 소프라노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 (편곡. 유민수), 오페레타 〈말괄량이 마리에타〉 중 ‘이탈리아 거리의 노래’ 등 (Soprano 강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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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정 소프라노가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와, 너무 예쁘다.”


공연에서 퍼포머의 복장이 꽤 중요한 요소가 아니던가? 흰색 드레스에 투명한 흰 천이 팔 부분에 드리워져 있는데, 겉에 박힌 보석들이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 어찌나 예뻤는지.


맨 앞에 있는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 주기까지 하셨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성악가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 없었는데, 확실히 악기와는 다른 힘이 있었다. 훨씬 직관적으로, 오직 사람만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진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뭘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하나 느낄 필요 없다. 그가 전하는 대로 음미하기만 하면 되니, 그 자체로 즐거웠다. 거기다 이 날은 캐럴까지 불러 주셨는데, 내가 지브리 혹은 디즈니 세계관 한복판에 놓인 기분이 들었다.


캐럴 메들리로 좋은 곡들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좋았다. 클래식과 친해지기로 하면서 매일 모르는 곡들 한복판에서 헤매돌지 않았던가? 내가 매일 듣지 않아도, 이미 오랫동안 알고 있던 것들과 공명할 수 있어 기뻤다.


아, 이 포근함은 뭘까? 이 문장을 나열한 시점부터 스멀-스멀 눈치챘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게 되겠구나…. ‘이탈리아 거리의 노래’를 할 적엔, 소프라노님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정말, 고개를 한껏 들어 올리고 검은 눈동자 안에 반짝이는 것 하나를 쫓아가기 바빴다. 프로그램 노트에 나와 있지 않은 가곡도 하나 추가로 노래해 주셨는데, 아—오늘 공연 정말 아낌없이 내어준다. 정말 다채롭다.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제2번 3악장 ‘아다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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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의 3악장이라, 아주 위험한 악장이었다. 듣자마자 ‘눈물 버튼’이 콱—눌릴 수밖에 없는 악장이 아니던가? 하필 한층 감정선이 고조된 이 시점에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3악장을 한다고? 잔인한 선택지였다…. 관람객 1의 눈 화장이 지워지는 순간이다.


일전에 다른 교향악단의 연주로 이 악장을 들을 적엔, 라흐마니노프의 이 감당하기 어려운 온화함이 싫다고 했다.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이 너무 크게 안아 주니까, 내가 부끄럽게 어린아이를 닮은 모습으로 서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선 어떤가? 지나온 것들이 많이 신이 나고 흥에 오른 순간들이 많지 않았던가? 조금 더 포근한 이불로 이 겨울을 감싸 안는 시점이라 일러주는 것만 같다. 가만히 따라오라, 관악기 하나가 길을 내어 줄 테니 헤맬 걱정 하나 할 필요 없다.


이만큼 수직선상으로 올곧게 내 안 깊이 파고드는 장르가 있던가. 광활한 것들을 묘사함에 있어 조금도 조급함이 없고, 책임지고 그려 놓겠다는 소리들이 여기 가득하니 어느 누가 감동받지 않을 수 있겠나.


무대와 가까이 앉은 덕에 바이올린과 관악이 홀로 노래할 때의 소리들을 크게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현악 4중주 때 악기가 소리 하나를 가지고 각각 한 번씩 이야기할 때의 대화도 좋았는데, 이 안에 있을 때도 흥미롭다.


아, 따뜻하다. 소리가 동동 떠 있는데, 저 자리 잡지 못한 것들이 하나 되어 이리도 긴 노래를 부르니 위안이 된다.


땅에 발붙이고 서 있다고, 높게 날아오를 수 있어야만 좋은 인생이 아니다. 머무는 자리에서 드넓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윤이 난다고 노래하는 선율이 있다. 급하지 않게 관객이 다 들여다볼 수 있게 천천히 움직이는 것들도 있다. 지휘자가 끝없이 아래로 또 아래로, 손을 감싸 쥔다. 참, 다정하다.



오케스트라를 위한 크리스마스 캐럴 모음곡 (편곡. 김주형, 유민수)

뭐, 이것저것 생각할 것 하나 없이 만끽하면 되는 순간이다.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동화 같은 마무리다. 이 곡으로 공연은 끝이 나지만, 아직 24일이 아니던가? 크리스마스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점의 이야기들이다.


당신께서 오늘을 한없이 기대할 수 있도록 고조시켜 주는 것들이 있다. 이맘때쯤 오니 경직된 표정의 연주가들도 꽤 편안한 미소를 입꼬리에 얹고 계셨다.

소리는 한껏 신나고 들떴는데, 연주에 집중해야 하니 한껏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 나가던 분들이 꽤 많았는데, 차마 ‘징글벨’에서는 포커 페이스를 지키지 못하셨다.


나라도 못하겠다! 이쯤 되선 만끽하느라 바빴다. 누가 캐럴 앞에 긴 상념을 내려놓을 수 있겠는가. 방긋-방긋-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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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빛자락이 쏟아지는 앵콜까지 끝이 났다. 곧이어 내 오른편에서 무대를 관람하시던 할머님께서 내 옷깃을 톡톡—두드리셨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 가까이 다가갔다.


메리 크리스마스

갑작스레 다가온 다정한 말 한 조각에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황급히 답했다. “감사해요. 행복한 성탄절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와 성탄절이라는 단어를 나눈 뒤에는 기쁜 마음에 짧은 대화를 나눴다. 오늘 공연에 대한 이야기, 내가 바이올린을 보러 대구까지 왔다는 사실까지. “어머, 그래?” 하며 웃어주시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난다.


공연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그 인삿말은 내 머릿속을 빙빙—맴돌았다. 내게는 산타가 왔다 간 순간만 같았다.

먼 타지에 와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 온기를 느꼈고, 기다린 만큼의 성의 어린 선물을 받았으며, 같은 음악을 완전한 타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거대한 사랑의 품 안에 놓였다.


홀로 나오는 길이 외롭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지나온 장면들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것, 작은 두드림과 말 한마디의 애정에서 모두 비롯되었으니. 앞으로 내가 어찌해야겠는가.


거대한 사랑으로 너를 만나야지.

메리 크리스마스. (속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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