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원점이었습니다

[프리뷰] 한지호 피아노 리사이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by 유진
돌아간다. 돌아간다.
이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면,
우리는 다시 원점에 서 있을 것이다.
반드시.


1. Aria


그 일이 있은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오전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쿵—하고 부딪히던 순간과 모른 척하고 싶은 그 눈맞춤이 불쑥 떠오른다. 잊으려 해도 잊히질 않는다. 지우고 싶고 피하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그날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가고 싶은 곳이 있었고, 그곳에 갈 것인가를 두고 길게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기차를 타고 가야만 한다, 혼자서는 위험하지 않을까—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조금은 나약한 변명들 아래에서 나의 욕심과 타협점을 찾느라 참 바빴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같았다면 내일보다 젊은 내가 오늘의 치기를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날만큼은 괜히 머뭇거리며 최소한 이때에는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발끝이 바싹 오르고, 명치 위가 울렁울렁—두근두근—가고 싶어 심장 부근이 진동했지만, 무리가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방어선을 그날은 끝내 넘지 않기로 택해 버린 것이다.


‘가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고 나니 선택의 결과가 곧장 나타났다. 정적. 머무름. 적막. 원하는 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라던 바였는데, 같은 박동으로 뛰던 곳이 무겁게 짓눌리고 기분 언저리가 소리 없이 언짢아졌다.


그런 와중에 부모님께 외출을 다녀오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 오늘도 그리 나갔다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거야. 이게 맞는 선택이다—스스로 되새겼다. 몇 번이고.


그렇게 출발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차 안의 공기가 한순간 뒤틀렸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었고 가벼운 접촉 사고여서 안심할 수준이었지만, 그 일을 겪은 나는 완전히 타들어 갔다. 뚫려버린 마음 안으로 수도 없는 ‘만약’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만약 내가 아침에 그곳으로 향했다면, 그냥 집에서 쉬자고 말이라도 꺼냈다면, 애초에 내가 그곳에 갔다면. 내가 하기로 했던 일을 내가 했다면….


끝도 없는 물음표의 짓밟힘으로 이틀 사흘을 보냈다. ‘왜?’라고 시작하는 새빨간 줄무늬가 끝없이 나를 따라붙어 오니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다고?

왜? 왜 나는 움직일 수 없는가?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기로, 저 문장 하나에 얽매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나간 사건 하나에 영원을, 앞으로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굴어버리기로 ‘택’한 것이었다.


아, 그리도 길게 후회하면서 머뭇거렸던 이른 아침의 나와 여전히 같은 상태로 머물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생각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원점이 못 박혀 있는 그 지점이 어디일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침대 속의 시간일까, 현관문을 다 같이 나서던 그 시점일까. 내가 내 앞에 셀 수도 없는 후회들을 내려놓기 전도 좋다.


나를 태워버리는 장작을 뒤덮을 더 거대한 것이 필요했다. 그까짓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줄 만큼 깊은 고랑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있었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속도를 재촉하고 싶었다.

정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기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슬픔을 오래 묵혀 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숲길을 거닐 때 철없이 행복해하는 나로 ‘하루빨리’ 되돌려 놓고 싶었다.

다만 쉽게 손 뻗을 수 있는 곳이 ‘클래식’밖에 없었다. 원래 이곳이 감정의 파도가 흐르는 영역이 아니겠는가.

나보다 먼저 살다 간 사람들이 자신의 무의식을 왈칵 꺼내놓은 일기장이 클래식이다. 교훈이나 위로가 필요해 책을 펼쳐 드는 것처럼, 나는 소리로 마음을 비춰줄 사람을 찾아 이래저래 헤맸다.

그토록 좋아하는 현악기에 문을 두드렸는데 이상하리만큼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저 밑바닥 돌길 위에 서 있는데, 바이올린은 하늘을 부드럽게 노닌다. 그 거리감 때문에 온전히 마음을 맡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열리기 직전 바흐의 ‘골드베르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곡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그리고 강렬히 떠올랐다.


나를 되돌려 놓을 수단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떠올렸다. 바흐가 작곡한 32곡. 누군가는 죽기 전에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는 이 곡.


모든 것을 지나 변하지 않는 아리아로 돌아오게 하는 이 곡이라면, 나를 보다 빨리 ‘원점’ 안으로 데려다줄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고, 애타게도 바라며 집으로 돌아가던 까만 밤의 지하철 한가운데서 한 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크 전곡 앨범을 재생했다.


2. 30 Variations


아리아다. 향하는 소리다. 닿고자 하는 길은 알려주지 않지만, 나와 손깍지를 꽉 낀 채 어린아이처럼 함께 발맞춰 리듬 위를 걷기 시작한다. 멈추려는 기색 자체가 없다. 이미 올라탔기 때문에 내려온다는 선택지는 없다.


내가 한참 정지해 있었다는 상태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충분히 딜레이 된 시간만큼 따라잡아 주겠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변주곡 4에 다달아 보시라. 이토록 상냥한 미소일 수가 없다. 얼떨떨한 내 모습을 보며 살짝 웃어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매 순간이 장난 같으면서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의문을 가지기도 어려운 길이다.


변주곡 5에서는 모든 잡념이 사그라든다. 온 세상이 빛 안인데, 상념이 존재할 길이 있는가.


이제는 빙글빙글—원을 도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6으로 나아간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어느새 익숙해진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난다. 이제는 내가 살짝씩 발을 먼저 뻗는 타이밍도 있다.



7이다. 성급해진 나의 숨을 천천히—천천히—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이다. 나아감에 있어서 ‘순간’의 현재를 인지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주는 시간이다. 걸음이 빠르다고 해서 마음까지 다급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가 휙—8번이다. 숨을 고르게 쉬었으니 다시 앞질러 가야 하지 않겠나. 아까 말했지만, 며칠간 뒤처진 만큼 속도를 붙여야 한다. 이제는 나도 붙잡힌 손을 살짝은 마주 잡을 수 있다.


익숙해진 9번, 4번이 떠오르는 가벼운 발걸음이다. 뒤동땅땅거리는 11번이다.


계단도 나오고 미끄럼틀도 있다. 가볍게 올랐다 내려온다. 어쩌겠나. 따라갈 수밖에. 이제는 리듬을 바꿔서 두 발은 두 발, 한 발은 한 발. 조금 더 변주를 줘보자. 한쪽 발에는 더 힘을 줘보기도, 강조해 보기도.


이 땅에 발자국은 몇 개든 남겨둬야 하지 않겠는가.



자, 다시 숨 쉬는 13이다. 지나온 발자국도 돌아보고 고개를 들어 새파란 하늘도 눈에 담는 시간이다. 잘 들어보면 새가 노래하는 따라라랑—목소리도 들린다. 반복적인 노래가 있다. 마음의 부분으로 기억해 보자.


둥—둥—왼손으로 조용히 뒤따라오는 그림자도 있다. 항상 함께하고 싶은지, 중간부터는 다른 춤을 추기도 한다. 밤하늘도 보인다. 은하수가 옅게 흐르는 정취가 보인다. 이때야말로 눈을 감을 때다. 별이 나풀거리는데 멍해지지 않을 인간이 어딨겠는가.


그 순간 14가 온다. 별무리의 축제다. 호숫가가 일렁이며 파도를 닮은 기색을 뽐낸다. 갑자기 나를 잡아챈 것이 그 수면 위로 뛰어오른다. ‘빠진다!’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내 발끝은 이미 차가운 물기운 위에 얹혀 있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지 않았다. 그 자체로 마음 안에 새로운 번개 하나가 스친다. 이 세상은 어딘가. 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물방울 위를 마구 쏘다닌다. 자유의 몸짓이다.


기쁨이 어떻게 영원하겠는가. 재밌는 시간도 저무는 15다. 고요히 잠에 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잔잔한 조언이겠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내일 또 재밌게 놀자고 다정하게 일러주는 목소리다.


아직은 눈을 감고 싶지 않으나, 만져지는 이불이 무겁게 나를 눌러온다.


이젠 꿈속 안에 있는 16이겠다. 꿈 안에서는 또 두 발이 자유롭다. 나를 잡고 있던 깍지 손도 없다. 뛰어놀 평지와 온화한 공기만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을 뿐이다. 어디까지 뛰놀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들풀들이 재촉하는 소리들이다. 여기 온 애들을 난 늘 지켜보고 있었지—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보여내는 17이다. 나라면 절대 못 했을 재간스러운 걸음걸이가 자동으로 나온다. 14의 나다. 호숫가가 아니더라도 이젠 괜찮다. 기쁨의 춤사위를 알지 않았던가. 앞으로 계속 뻗어내는 손짓과 발짓 안에서 나는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밤하늘 아래에 놓여 있다.


사그라진 18이다. 신이 난 틈새 사이로 인적 없는 반딧불이들이 가득한 숲 안으로 들어선다. 온통 노란빛이 곳곳에 공기방울처럼 둥둥—떠 있다. 나무 기둥 사이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맨발로 차가운 흙바닥을 오간다. 그 싸늘함이 이곳에 ‘걷고’ 있음을 인식시킨다.


19다. 다시 속력을 내야 하지 않겠나. 나를 놓아주었던 손길이 다시 마주 잡아준다. 헤매지 않도록 이끄는 길이다. 내 따뜻한 손을 붙잡는 시원한 기운이다. 이 길이 맞다고 굳이 묻지 않아도 그 길이 맞음을 저 뒷모습으로 알 수 있다.


20이다. 리듬을 다시 바꾸자. 재즈 스캣 같다. 한 손은 미끄럼틀을 자유자재로 오가고, 한 손은 구간마다 도장을 찍는다. 때로는 발을 서로 다르게 맞춰가며 불규칙함을 받아들인다.


굳이 발의 합이 착착—맞아야 할까. 아니, 전혀.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디딛는 맛이 있다. 재밌는 시간이 순식간에 21에서 사그라든다. 갑자기 모든 게 사라졌다. 들푸른 대지도, 나를 붙잡아주던 것도 아스라이 소멸했다. 갑자기 온 공간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아리아보다 이전의 나를 일순간 목도한다.


방금까지 즐거워했던 게 ‘가짜’만 같고, 돌아온 길에 내가 했던 모양새가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무의식의 영역임에도 ‘아무도 못 봤겠지?’ 하는 부질없는 물음이 떠오른다.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터덜거리며 느릿하게 앞으로 간다. 숨을 곳도 없으면서 몸을 가릴 수 있는 곳으로 향하는 몸짓이다.



통나무 하나를 발견한 22다.


그 나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아 본다. 이래저래 부질없는 생각들을 던지고 내 앞보다 더 너머에 시선을 던진다. 아직도 밤이다. 낮이 오긴 하는 걸까. 소리 자체가 이미 은하수를 품어내어 낮을 그려낼 수가 없다.


심드렁한 얼굴로 무릎 위에 팔을 얹은 채 턱을 괸 모양새다. 입이 삐쭉 튀어나와 있다. 이젠 불만도 표현할 수 있구나.


그 마음을 눈치챈 23이다. 나를 놓고 사라진 것들이 친구를 데리고 내 앞에서 종알거린다. 사람이 아닌 어떤 형체들이 조근거리며 말을 건다. 그 목소리가 나름 듣기 좋다. 고개가 저절로 좌우로 왔다 갔다 춤을 춘다. 툭 튀어나온 입이 어느새 쏙 들어간 채 입꼬리를 힘껏 들어 올리고 있다.


바보. 이렇게 순진하고 단순해서 어떡하겠는가.


자, 이제 일어날 시간이 된 24다. 엉덩이에 붙은 흙은 툭툭 털고 다시 천천히 가던 길을 간다. 이젠 뒷짐을 지고 익숙하게 넓은 보폭으로 걷는다. 주변도 살짝씩 돌아본다. 이런 게 있었구나. 보이지 않던 게 눈에 담기기 시작한다.


아래쪽에도 시선을 던져본다. 발치에 있는 귀여운 것들이 종종거리며 나를 피해 왔다 갔다 길을 오간다.


마냥 걷던 와중에 우뚝 멈춰서는 25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양새다. 보이는 듯하면서 너무 멀리 있어, 눈을 찌푸려봐도 형체가 정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궁금하면서도 낯선 느낌에 닿기가 영 어렵게만 느껴진다.


저곳이 혹시 내가 닿을 끝인가—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전보다 조용한 기색으로 차분히 그쪽으로 방향을 옮기기 시작한다. 조심스럽지만 느리진 않은, 그런 기색으로.


갑자기 탐색하듯 다가가는 내 곁으로 손깍지를 낀 그 아이가 내 손을 낚아채 달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속도감에 놀라긴 했지만 끌려가진 않는다. 이젠 나도 널 알아. 그 리듬에 맞춰 발을 맞추면서도, 앞에 보이는 것이 점차 가까워지는 모양새에 살짝씩 불안해진다.


흙길이 갑자기 정제된 길로 깔려 있다. 이젠 모난 바닥은 없다. 내가 아는 아스팔트 길 같기도 하다. 익숙한 소리도 들린다. 자연의 요소가 아닌, 어딘가 정해진 규율성의 리듬감이다. 오르고 내리는 게 마치 정해진 순번대로 돌아가는 신호등과 같다.



갑자기 종이 울린다. 28이다. 빠른 기색이다. 내가 거의 다 왔음을 알리는 누군가의 예비 알림 같다.


거의 다 왔어. 거의 다 왔어! 갑자기 온 세상이 나를 반기고 성급한 인사를 해대니까 나까지 흥분된다. 여기가 어디야, 어딘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갑자기 쿵! 29의 변주다. 팡파레가 울리고 28보다 더 빠르다.


내가 지금 어딘지도 모르겠는데, 마구 빙빙 돌며 기뻐하고 있으니 어지럽다. 혼란스럽다. 근데 일단 마냥 기쁘다. 왔다잖아. 내가 도달했네. 와, 어디지? 어딘데. 알려줘.


마냥 물어도 대답이 없다. 뭐지. 이제는 답을 확인하라는 듯 함께 숨을 골라주는 30이다. 그동안 만났던 것들과 인사를 나눈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여기까지 오는데 함께했던 것들이 전부 내 곁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토록 따뜻할 수 있나. 이처럼 빛날 수 있나.


마음 안에서부터 벅차오르는 기쁨과 성취감이 나를 잠식한다. 그리고 고요한 하나의 음표와 종결이다.



아리아다. 마침의 소리다. 모든 동적인 것들이 사그라들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내가 그토록 향하던 길이 결국 되돌아오기 위한 길이었다. 점에서 시작해서 다시 점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돌아올 것이면 왜 향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에 달뜬 내 숨소리가 먼저 들린다. 아까와는 다른 시원한 기색이 마음 안에 가득하다. 얼굴에는 땀이 맺혀 있고 머리카락은 엉망이다. 그런데 눈이, 눈자위가 다르다. 무겁게 눌러앉아 있던 것이 사그라들었다.


발끝을 들어본다. 어느새 딱지가 앉은 발바닥이다. 뭐지. 이 30번의 한 바퀴는 결국, 나를 어디로 되돌려 놓은 것인가.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골드베르크는 나를, 내가 아는 ‘나’로 돌려놓았다. 어두컴컴한 과거의 두터운 상처 아래에서 눈을 내리깐 채 뚝뚝—무언가를 흘리며 뒤로 잔뜩 밀려난 나의 손을 잡아채, 원래 있던 원점의 0 위에 다시 세워놓았다. 그로써 제자리가 되었다.


아무 일도 없던 상태의, 무념의 시간으로 턱—하니 되돌려 보낸 구슬들이다.


나는 내 안에 나를 비추는 ‘원형’ 하나가 있다고 믿는다. 그 원형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점차 빗금 쳐져, 어느 순간 ‘네모’처럼 경화되기 시작했다. 꼭짓점이 생기려는 찰나, 표면이 딱딱하게 굳기 직전에—바흐가 건반 위로 굴린 구슬이 내 안의 것을 툭툭 두드리기 시작했다.


피아노로 굴려낸 그 물방울들은 함부로 터지지 않았다. 대신 계속해서 튕겨졌다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30번의 흐름, 그리고 2번의 원점이었다.


그 서로 다른 두드림이 내 안의 ‘원형’을 다시 O로 돌려놓았다. 오늘에서야 나는 이 곡이 왜 그토록 누군가의 마음에 깊게 서려 있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잃어버린 원형을 되찾는 곡. 나보다 더 투명하고 동그란 것이, 각진 ‘네모’를 조용히 사포질해 냈다.


내가 앞으로 간다고 믿었던 모든 걸음은, 실은 내가 아는 ‘나’로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를테면, 원점으로 돌아오는 길이겠다.


그래, 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통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마음 하나를 떠올렸다. 그제서야 왜 사람들이 골드베르크를 두고 그런 말을 하는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잃어버린 곳이 있는 사람들. 잊고 있던 평범한 어제. 되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어제로 돌아가게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연장에서 다시 인사하게 된다.


3. Aria da capo


그 일이 있은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오전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다. 다시금 이 곡을 전곡으로 들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운명처럼, 그것도 바흐의 생일에 골드베르크가 우리 곁에 찾아온다.


3월 21일 토요일, 피아니스트 한지호가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연주 후에는 뇌과학자 정재승 KAIST 교수와 함께하는 토크 세션 ‘골드베르크의 질문들’이 이어진다.


연주를 앞둔 피아니스트 한지호는 이렇게 말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가장 첫 번째 음악적 동기인 아리아는 서른 가지 다른 형태로 연주되며 결국 다시 그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서양에서 작곡된 곡이지만 동양의 사상과도 만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어 매우 흥미롭다. 음들의 순환과 귀환, 그리고 다시 안정에 이르는 경험을 관객과 나누고 싶다.


어떤가. 낮이든 밤이든 내려놓지 못하는 돌덩이 위에서 헤매고 있다면. 당신만의 원형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한밤의 산책길 위에서 잠시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며.


■ PROGRAM ■

J.S.Bach, Goldberg Variations, BWV 988

골드베르크의 질문들
정재승 KAIST 교수 & 한지호 토크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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