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영 아티스트 시리즈 Ⅳ : 이자이_6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토요일이다.
(이때의 토요일은 대충 일주일 지난 시점의 요일을 가리킨다) 지난 월요일부터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복해하고 있다. 사소한 것들에 웃음 짓고, 조그만 순간을 붙잡아 되돌아가고, 여러 차례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는 요즘이다. 오랜 기다림이었지만 찰나로 지나간 2시간을 붙잡고 싶어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꼭 일기를 써야지. 기록으로 남겨야지. 했지만 막상 당일은 쉽지 않다.
공연을 볼 때면 나는 너무나도 바쁘다. 눈으로 표정, 눈짓, 연주하는 몸짓, 손가락, 움직임을 담아보려 애쓴다. 귀로는 흘러가버리는 고아한 음색을 음미하면서 들어야 한다. 눈과 귀를 집중시키기 위해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면서도 나는 이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 더없이 애쓰려 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이 순간이 지나간다는 아쉬운 사실이 머릿속 상념으로 둥둥 떠오르기도 하고, 이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인사를 건네볼지에 대한 나의 내성적인 고민이 동동 생겨난다. 하지만 이내 아니야 이 모든 고민은 모두 뒤로 하고 지금을 즐기자. 애써 다짐하며 앞을 바라본다.
가끔은 자리에 서서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이 흘러나올 땐 박수도 짝짝 치고 싶고, 발도 동동 거리면서 마음껏 즐겨보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순 없으니까 남몰래 손짓과 발짓으로 함께 음을 따라가 본다. (물론 내 옆의 친구들은 내가 신난 사실을 이미 눈치챘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을 만큼은 먹었으니까, 얌전히 앉아 체면을 지켜가며 관람하고 싶은데 잘 안되기도 하고, 그 순간만큼은 체면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고 싶다.
그냥 순수하게 공연을 만끽하고 싶은 기분! 상대를 배려하기보다 내가 고대한 이 순간을 빠짐없이 눈에 담아내고, 나의 기쁨을 마음껏 표출하고 싶다! 나는 평소 나라는 사람을 '대체로 차분한 사람' (친구들이 들으면 비웃겠지만)이라는 키워드로 낯선 이들에게 기억되었기 때문에 그런 자리에서도 마냥 소위 남들처럼 얌전히 감상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필요한 생각임을 나도 안다)
하지만, 일단 공연이 시작되면, 그 연주가 시작되면, 현이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내가 사랑하는 그 음들이 내 눈앞에 펼쳐지면, 내 귓가에 들려오면 모든 요소는 사라지고 그냥 '즐기고 싶다!'라는 생각만이 가득하다.
너무 신나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연주가가! 그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훌륭하게! 그것도 내 앞에서!!! 너무 신나서 가끔은 정말 어깨가 으쓱거려진다. 입도 틀어막고 싶다.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는 (대충 느낌이 와서 민망하다) ..모르겠고 그냥 신나느라 매우 바쁘다.
다른 공연도 무척 좋았지만, 그날은 내가 꼭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순간들이 있어서 오늘의 글을 적게 되었다. 끝나자마자 적고 싶었지만, 친구들이 나를 위해 남겨준 사진이나 영상, 그날의 음악을 음미하기에도 너무 벅차서 이 마음을 글로 적어 내려갈 시간이나 여력이 없었다. 이제야 아주 조금은 차분해진 지금 이 시점에 다시 한번 그날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성당에서 진행된 공연이었다. 밖에서 드리워진 어둠 사이에 놓인 창문과 황색빛 벽들이 운치 있었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확실히 성당만의 분위기가 은은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저 건물 안으로 들어온 건데, 이 공간 자체에 흐르는 공기가 선명하고 차갑게 느껴졌다. 공연 시작 시간이 되었다.
관객석이 어두워지고 무대에 노란 조명이 탁 켜졌다. 대기실 문 안쪽으로 튜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근두근. 괜히 옆에 앉은 친구를 툭툭 건들며 설렘을 내보낸다. 문이 열리고 무대 앞으로 나타났다. 처음 보는 옷차림에!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나는 또 설렘이! 설렘이! 또 가중되었다. 다른 때와 달리 정가운데에서 인사해 주시는 색다름도 있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잠시 들어갔다가 다시 무대로 홀연히 걸어 나와 때마다 인사를 건넨 뒤 연주를 진행했다. 사각- 사각- 악보가 넘어가는 소리, 살짝 상기된 표정, 그 어느 때보다 긴 여운의 연주, 조명 아래 비추는 하얀색 와이셔츠, 뭐 하나 맘에 들지 않는 게 없다. 나는 정말 내가 그려왔던 풍경을 눈에 오래도록 담아내려고 애썼다.
제1번 소나타
1악장 Grave. Lento assai
시작이 날카롭다. 성당의 공기가 느껴지는 서늘함. 깊게 파고들어 단숨에 찌르는 듯한 느낌. 무심한 듯 서정적이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속도감 있는 연주는 단박에 집중을 불러일으킨다.
공간과 음을 기다리며 울리는, 선명하고 톤 다운된 차가움. 서서히 가라앉다가도 음을 흔드는 순간은 이 악장에 대한 이해도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2악장 Fugato. Molto moderato
악보가 펼쳐지며 투명하게 나타나는 소리가 인상적이다. Grave가 수직적인 흐름을 보였다면, 지금은 수평으로 음이 진동하며 흘러가는 느낌이다. 점점 커져가는 감정선 속에서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다.
앞으로 끊임없이 달려 나가면서 수갈래로 펼쳐지는 감정과 현의 소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음이 위아래를 타고 유영하다가도 과감하게 내지르고 뻗어 나가는 순간들이 있다. 정제된 날것의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속절없이 흐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분명히 찍어 내려오는 무거운 음들이 마음에 쿵쿵 박혀온다. 사정없이 유영하는 갈래들. 다시 조금 가라앉아 노래하듯 감정이 차오른다. 깊이 찌르고 다시 소리치며, 소용돌이에 휩싸이듯 흔들리다가 잠시의 침묵 후 날카로운 선율로 마무리된다.
3악장 Allegretto poco scherzoso. Amabile
악보가 펼쳐진다. 깊이 찌르고 올라오는 첫 음이 마음에 남는다.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지만, 가볍지 않고 짙다. 높은 음들이 선명하게 짚어진다.
안정적인 템포로 음이 귀에 울려 퍼지고, 현과 공기가 일체된 듯하다. 무겁지도, 주저하지도 않고 떠다니며 빠르게 파동친다. 평화와 파스텔 그린을 떠올리게 하는 곡조.
짙어지는 감정 사이에 구름 같은 음들이 놓여 있다. 마치 떠다니듯 머무르다가 고요히 떠나는 듯한 여운이 남는다.
4악장 Finale con brio. Allegro fermo
악보가 넘겨지는 소리. 단박에 치고 들어오는 강렬한 시작. 1악장이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활의 소리. 빠른 템포와 정확한 음정 속에서 위아래로 끊임없이 찔러 오는 시원한 울림.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가는 거대한 울림. 빠르게 달리다가도 기다렸다가 음을 강하게 내리꽂는다. 귓가에 박혀오는 강렬함. 고조되는 감정이 느껴지지만, 여전히 서늘하다. 격정적인 파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느낌. 멍해지는 기분과 단박에 음을 마무리하는 강단이 인상적이었다.
제2번 소나타
1악장 Obsession. Prélude. Poco vivace
튜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앙칼지게,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멜로디. 마치 이중인격처럼 돌변했다가 치고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빠르게 흐르면서도 선명히 박혀 오는 음들. 고요히 기저에 가라앉아 찌르다가 단박에 위로 솟구쳐 달려드는 순간들.
그 사이에도 음은 흐르고 또 흐르며 점차 강렬해진다. 감정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한순간도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놓을 수 없는 긴장감과 서정성 사이에서 크고 작게 흔들리다, 극적이고 예고 없이 찾아온 끝맺음.
2악장 Malinconia. Poco lento
다시 악보가 넘어간다. 기저에 가라앉아 조금은 멀리서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내면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주제 테마를 살려내는 감정. 차가운 음색 속에서 특유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개인의 감정보다는 공간 속에서 전해지는 외로움이 두드러졌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고요한 아우성 속에 감춰진 슬픔. 푸른빛 달빛이 비치는 방 안에서 차분히 앉아, 초점 없는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한 사람이 떠오른다. 혼자 있기에 더 짙게 다가오는 고요. 질끈 눈을 감는 뒷모습이 그려진다.
3악장 Danse des ombres. Sarabande (lento)
악보가 넘겨진다. 가벼운 피치카토. 통통 울려오는, 기분 좋은 하프 같은 음들. 마치 무도회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의 미묘한 들뜬 감정이 소리로 표현된 듯하다. 전주가 펼쳐지고, 조심스레 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노란 조명 아래 사람들이 춤추며 움직이는 그림자. 난로 속에서 장작불이 타닥이며 타오르는 평화로운 분위기. 음이 수평과 수직을 자유롭게 오가며, 가볍게 스텝을 밟듯 공간을 유영한다. 가볍고도 날렵한 발걸음 같다.
순식간에 고조되는 감정선. 다시 깊게 찌르고 내려오는 소리. 깊이 짚으면서도 울리는 그 소리가 특히 좋다. 충분히 기다려주며 나타난, 찰나의 정지와 함께 마무리된다.
4악장 Les furies. Allegro furioso
누군가의 가벼운 분노가 순식간에 짙어지는 듯한 기분. 하나의 말실수로 마음이 깊이 까매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같다. 이번엔 사선으로 찔러 오는 소리들. 푹푹 찌르는 듯한, 신경질적인 감정들이 여러 갈래로 마구 스며든다.
한 번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고요히 타오르다가 번뜩이며, 다시 고요해지고, 또다시 번뜩인다.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의 갈래 속에서 종잡을 수 없는 내면의 양가적 감정들이 마구 흔들린다. 고뇌에 휩싸이는 음과 한 사람. 순식간에 타올라 결국 저질러 버린 하나의 행동. 그로 인해 펼쳐지는 비극적 결과. 그리고 미쳐버린 그림자가 그려진다.
제3번 소나타 "Ballade". Lento molto sostenuto
차분하게 시작되며 차갑게 울려오는 소리. 그리고 잠시 사라진다. 아래쪽에서 시작해 위로 서서히 퍼져 가는 감정. 기꺼이 아래에서 기다리며 마음의 고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 번져 오는 것들 사이로 서서히 다가오는 소리. 차갑게 찔러 오지만 그 안에 짙은 복잡성이 묻어난다. 마치 갈등을 겪고 있는 두 사람의 ‘발라드’를 듣는 듯한 기분. 감정을 타고 흐르는 연주. 화려하지만 동시에 창백해지는 소리. 고요히 갈등하며 지나가는 선율이 점차 고조된다.
수면 아래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치지만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점점 다가오는 파동. 차갑게 치고 들어오는 느낌이지만 그 선을 지켜내려는 절제가 있다. 그러나 점점 참을 수 없게 타오르며 치고 들어오는 매서운 선율. 짙은 서정성이 가득한 음색이 인상적이다. 음을 찍고 내려와 화려하게, 그리고 빠르게 진동하는 듯한 기분을 자아내는 연주였다.
제4번 소나타
1악장 Allemanda. Lento maestoso
무거운 시작과 짙은 서정성. 그 속에서 짚어 가며 흘러오는 음색.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선율. 대놓고 울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리는 한 여자의 슬픔을 보여주는 듯한 절제미가 느껴진다.
짙게 이어지는 감정선. 분명하게 들려오며 확실히 전달되는 이야기. 조용히 가라앉으며 써 내려가는 마지막 편지, 혹은 유언이 연상된다. 이 이상 찾을 수 없는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흘리는 차가운 눈물. 담담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결심하는 한 사람의 짧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세밀하고 예리한 곡조가 천천히 흘러나오며 숨죽이듯 노래하다가도, 넓고 크게 울려오는 순간들. 무겁지만 한없이 내려앉지는 않고 음을 유지시키는 느낌. 그런 가운데 더욱 깊이 파고들며 울리는 음들이 인상적이었다.
2악장 Sarabande. Quasi lento
피치카토 소리를 느낄 수 있는 시작.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느낌. 소리와 공기가 서로 다르게 겹쳐지며 입체감을 형성한다.
음이 둥글게 파동 치다가 잠시 빨라졌다가, 다시 원래 템포로 돌아오는 흐름. 가볍게 위로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재미있고, 동시에 마음을 한결 누그러뜨린다. 마지막 부분, 종달새를 닮은 소리와 이어지는 피치카토가 특히 매력적이다. 좋은 소리다.
3악장 Finale. Presto ma non troppo
“팍!” 음을 찍으며 순식간에 흘러가는 시작. 빠르게 흐르면서도 성당의 특성 덕에 음이 울리며 퍼져 나가는 소리가 느껴진다. 그 울림이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는 기분을 준다. 다른 곡보다 유달리 강하게 전해지는 울림이다.
재간스러운 박자와 속도감이 돋보인다.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바이올린의 소리를 최대한 표현하려는 의도가 그대로 전달된다. 중간에 글리산도처럼 미끄러져 오는 음들이 선명하게 마음에 남는다.
이 빠른 속도에서 정확한 음을 표현한다는 것이 놀랍다.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 이런 것을 이렇게 쉽게 들어도 되는 걸까…
제5번 소나타
1악장 L'aurore. Lento assai
새벽녘이 드리우며 느껴지는 차분하고도 서늘한 바람 같은 시작. 같은 피치카토라도 이렇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놀랍다. 이전엔 하프 같았다면, 이번엔 기타 소리를 듣는 듯하다. 이전보다 한결 가라앉은 기운이 있다.
음색은 분명하고, 음을 서서히 줄였다가 확 커지게 만드는 순간들이 인상적이다. 기다려주다가 당기고, 다시 확 늘리고, 두드리며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 마치 고무줄놀이를 하듯, 바이올린을 가지고 노는 악사의 모습이 겹쳐진다. 장난스럽게 가지고 노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음들은 지독히도 선명하다. 확 피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다시 반복되다 아침이 끝내 떠오르는 순간이 연상된다.
2악장 Danse rustique. Allegro giocoso molto moderato
시작부터 장난스러운 느낌이 확연하다. 분명히 찍고 들어오는 음들이 좋다. 장난스럽지만 지나치게 짓궂지 않고,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경쾌하고 전진하는 활기가 있다. 동시에 확실히 음을 표현하는 무게감도 느껴진다.
음이 가볍게 지저귀듯 하면서도, 악장마다 다른 표현을 살려내 듣는 즐거움을 준다. 작게 숨죽였다가 “톡!” 찍고, 다시 간질이다가, 서서히 커지며 세밀하게 변하는 음들. 그리고 확 퍼져 나오는 피치카토에서 느껴지는 경쾌함이 특히 매력적이다.
성당에서 들려온 버전은 가장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며 속도감 있는 피치카토였음을 확신한다. 그 순간에 나타난 감정과 영감이 공간 속에 스며드는 느낌을 준다. 피어나는 것을 조금의 주저도 없이 내보이는 자신감과 매서운 질주는 부럽기까지 하다. 마무리마저도 주저 없이 깔끔하고 강렬했다.
제6번 소나타 Allegro giusto non troppo vivo
마지막 곡이라는 사실만으로, 연주를 듣기 전부터 끝이 다가왔음을 체감한다. 음악만을 온전히 들을 수 없는 상태. ‘아쉬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돈다. 6번 소나타는 연주자님이 가장 익숙하게 연주하시는 곡이었는지, 악보도 보지 않고 연주하셨다. 이전 악장의 질주가 남아 있어 또 한 번 원초적인 연주가 터져 나왔다. 매섭게 달리다가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연주는 이제 무서울 지경이다. (갑작스럽게 돌변하니 말이다.)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들의 표현법이 경이롭다. 마치 각 음마다 울려 퍼지는 방식이 제각각 다른 듯하다. 이 곡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바이올린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는 듯하다. “나는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어.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어. 나는 이런 존재야.” 하고 말하는 듯이.
연주를 들으며, 내가 느껴온 모든 표현과 감정의 여파가 이 곡 안에서 조금씩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하고, 마냥 감정적이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이 곡은 속도감 있게 음을 짚어내며 본능적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날카롭고 짙게 마무리되는 순간, 연주자님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참 좋았다!
마지막, 앵콜
앵콜 곡은 1번 소나타의 3악장 Allegretto poco scherzoso. Amabile이었다. 당시에는 왜 앵콜로 같은 곡을 선택하셨을까 하는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성당에서 그 순간 피어나는 그 ‘울림’을 관객과 다시 한 번 나누기 위해 선택하신 게 아닐까. 너무 난해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곡이면서도 그 여운을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선택처럼 다가왔다.
음이 현을 타며 나타나는 그 파동의 여운을 짙게, 또렷하게 다시 한 번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한, 이 난곡의 마지막을 첫 부분의 서정성과 함께 기억하게 만든 선택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곡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공연이 끝났다고 해서 완전한 ‘온점’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끝없는 ‘물음표’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