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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그 소리잖아.

흥미로운 악기가 있다는 것

by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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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지나가려고 하는. 선 자체가 아주 날렵한 칼로 이뤄져 있는. 소리 자체가 살짝 무표정한 느낌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서 과하지 않게 아주 얇게 진동하고 울림을 주며 지나가는. 그래서 한 음 한 음 자꾸 곱씹게 되면서 듣게 되는. 정말 하나하나 마다. 곳곳에 스민 즉흥성. 자유로운 느낌. 늘이기. 강타하기. 잠시 기다렸다 시작할때는 바로 눈앞에 있기 보단, 세 발치 멀리서 서서히 다가오는. 예민한 소리를 내는게 바이올린이지만, 그보다 더 예민한 소리가 나는. 마테오 고프릴러 바이올린 자체가 첼로로 유명한 장인이 제작한 악기라서 그런가 본질 아주 저 밑의 깊은 곳에서 시작하는 소리가 날 때가 있는데 그 안에서 연주가의 재량으로 아주 높고 얇게 선을 뽑아 내는. 약간 음을 평면적으로 두기보다는 약간씩 비틀어내 그 공간의 입체감을 부여하여 그 결이 귀로 느껴지게 하는. 그 비틈이 즉흥적이고, 정해진 느낌이 아닌. 아주 공격적인 것 같으면서 정돈된 절제감이 부담스럽지 않은.


일전에 말했듯이 나는 사람이, 연주가가 소리를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이면 그 연주 자체가 몰입이 안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내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어. 극에 대사를 뱉고 있어.' 느낌이 들면 몰입이 안되듯이, 연주가가 '이 곡을 내가 음미하고 있어. 들어봐 내 소리를.' 이 마음이 그 순간에 전달되면 음악이 나에게서 뒷걸음 친다. 사람은 사라지고 소리만이 남아 있어야 내가 그날의 기억을 오래토록 잊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연주가님 공연은 이래저래 그래서 딜레마다. 보고도 싶고 듣고도 싶고. 그래서 공연 때 나는 정~~~~~~말 바쁘다. 연주가님은 모션이 과하지 않고 표정도 절제되지만, 뻗어내는 소리는 무척이나 차갑게 감정적이여서 시선을 빼앗는다. 그 눈앞에 나타나는 소리는 또 아주 선명해서 흘러가는 것들을 붙잡아서 듣기느라 너무 바쁘다. 정말 맨날 공연 하실 때마다 녹음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내일 듣게될, 이미 전에 들어봤었던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다시 듣고 있는데.. 내가 이날 그냥 서초구였어도 공연을 갔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때는 이럴 줄 몰랐다. (정말~~~) 그냥 바보다. 바보.


이건 그냥, 듣기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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