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었던 것. 짐을 진다는 것. 그리고 패배한다는 것.
1.
분명 미쳤던 거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여름이었다. 진격의 검색을 하며 가장 많이 접한 말이 있었다.
“짐을 줄이시오.”
배낭 메고 하루 20~30㎞를 걸어야 하니 무거우면 절대 안 된다는 거였다. 평소에도 화장품, 책, 스마트폰 3종 세트는 기본이요 온갖 쿠폰과 휴지와 칫솔과 스카프와 간식 등등을 챙겨야 마음이 놓이는 나다. 이번만큼은 내려놓아야 했다. 최대한 간결하게 짐을 꾸렸다. 그러나 떠나기 전날, 불안함이 엄습했다. 결국 모두 쑤셔넣었다.
순례 첫날. 왜 사람들이 그런 조언을 했는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골반이 나갈 것 같았고 어깨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짐을 줄여야 했다. 먼저 먹을 것을 버렸다. 물티슈를, 책을 버렸다. 훨씬 나았다. 해방감을 느낀 나는 매일 조금씩 버리기 시작했다. 사이좋게 전기를 나눠쓸 수 있다는 3구 콘센트, 나를 인도한 가이드북, 귀여운 에코백 등과 그렇게 작별했다.
2.
그러나 절대 사수, 곧 죽어도 버릴 수 없는 물건이 있었다. 배낭 여행에 도가 튼 순례자들은 그것을 보고 웃었다. ‘아직 넌 멀었다, 얘’ 하는 말을 감추고.
옷이며 화장품은 덜어냈는데, 헤어 드라이기를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긴 머리가 물에 젖어 미역처럼 늘어져 있을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그리고 살충제. 순례길 숙소들은 빈대로 몸살을 앓는 곳이 많았고, 순례자들이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는 빈대로 고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했다. 살충제를 두 통이나 챙겼다. 뼈빠지게 무거웠다. 많은 이들이 “물리는 것은 복불복이야”라며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로 절대로 싫었다. 침대 구석구석과 배낭에 정성스레 살충제를 뿌리고 있던 어느 날엔, 프랑스 할머니가 지긋이 말했다.
“그러다 니가 죽겠다.”
나도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버릴 수 없었다. 버려지지 않았다.
한 가지 위안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자기만의 무엇’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할머니는 묵직한 묵주 목걸이를 내내 들고 다녔고, 어떤 남자는 영어 회화책을 고집했다. 스무 살 폴란드 여대생은 풀메이크업을 하고 다녔는데, 무릎을 다쳐 쩔뚝이면서도 아침이면 마스카라를 발랐다.
3.
잊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상처받고 자존심 상했던 일들, 그 누구의 안중에도 내가 없었던 때, 내게 주어진 부담스러운 책무들. 그런 것들을 잊고자 어울리지도 않는 순례길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충제와 헤어 드라이기를 기어이 배낭 속에 구겨넣고 길을 걸으며 나는 조금은, 받아들였다.
이건 그냥, 내가 지고 가야하는 것이구나. 인간 각자에게는 버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고, 버려서는 안 되는 것들도 있구나. 그것이 살충제든 마스카라든 아픈 기억이든 무거운 임무든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이든 그게 뭐든, 질 것은 지고 가자.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편했다.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들려왔던 말보다 훨씬 나았다. ‘내려놓으라. 여행길에서 짐을 줄여야 하듯, 삶 또한 마찬가지다’와 같은 말에 휘둘려 나는 얼마나! 되지도 않는 내려놓기 연습을 했던가.
차라리 지고 가자. 나의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책무가 끝끝내 버려지지 않아 결국 내가 이고 가야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자.
4.
남보다 무거운 짐을 져야 할 때나 책임져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졌다...제기랄”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짐을 ‘지다’는 말이 싸움에서 ‘지다’는 말과 동음이의어 여서일까. ‘책임을 지다’는 말과 ‘패배하다’는 말이 묘하게 맞닿아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식상하고 촌스럽고 낡아빠진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을 떠올렸다. 책임지는 사람이 희귀한 세상. 남들 눈에 패배처럼 보일지라도, 자기가 져야 할 짐을 지는 사람은 단언컨대 아름답다.
역시 순진하고 낡아빠지긴 했지만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말도 있구나. 이번엔 그렇기도 했다. 나는 빈대와의 전쟁에서 결국 이겼다. 두 통의 살충제를 지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대륙을 넘어 기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