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가 책 <영화로운 세계>를 냈습니다. 책 출간은 2008년 <언론사 합격의 모든 것>(공저), 2014년 <일상방황>에 이어 세 번째인데요. 꼭 10년 만이네요.
책은 제가 중앙일보에 오랫동안 연재한 칼럼 '영화로운 세계'에서 출발했지만, 칼럼 모음집이 아닙니다. 영화를 곁들여 세계정세를 짚어보는 콘셉트만 가져왔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썼어요.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계정세를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을 들였습니다. 긴 설명보다 책 속 프롤로그를 옮기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프롤로그 <세상에 '남의 일'은 없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집에 모이는 날에는 신이 났다. 외판원 아저씨가 오는 날인 게 분명했다. 세계 명작동화 전집 따위를 펼쳐놓고 겨드랑이가 흥건히 젖은 채 비말을 서 말 튀기며 열변을 토하던 아저씨들. 뿌듯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던 그들의 시큼한 냄새가 흩어질 때쯤, 책들이 한 아름 도착했다. 크게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던 어린 내가 활자에 빠져든 건 그 시굼한 발자국 때문이었다.
그중 제일은 역사 전집이었다. 수양대군이 조카를 죽이는 장면은 매번 섬뜩했고, 영조가 뒤주에 아들인 사도세자를 가둘 때엔 가슴이 아려왔다. 공통점이라면 그 모든 이야기가 밤을 새워 읽을 만큼 흥미로웠단 사실이다. 나는 역사 전집을 달달 외울 만큼 읽고 또 읽었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게 아까울 정도였다. 대신 나의 책 읽기가 빛을 발한 순간은 TV 앞에서였다. 나는 사극 드라마를 보는 엄마와 아빠 옆에 쪼그려 앉아 아는 걸 죄다 쫑알쫑알 떠들어대는 아이였다. 말하자면, 대단히 시끄러운 스포일러였다.
"이성계는 곧 돌아온다니까? 그걸 ‘위화도 회군’이라고 하는 거야."
"엄마, 저 사람 이제 큰일났어. 연산군이 자기 엄마(폐비 윤 씨)한테 사약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벌을 주거든. 이름이 뭐였더라.… 아 맞다, 이세좌!"
엄마와 아빠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다음, 그다음을 계속 물었다. ‘전집에 돈을 쓰기 잘했군.’ 알뜰살뜰 천원도 허투루 쓰지 않던 젊은 부부의 고단한 저녁은 조그만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던 방해꾼 덕에 충만했을 것이라고, 요즘도 가끔 생각한다.
대학에 입학해선 책보다 영화를 많이 봤다. 그렇다고 영화사를 깊이 탐닉하는 시네필은 되지 못했다. 내겐 뜨겁게 우울한 날들을 식혀줄 영화가 필요했다. 스무 살의 우울함은 대개 연애에서 비롯됐다. 나는 온갖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로코) 영화를 샅샅이 찾아서 봤다. 소개팅한 상대와, 그럭저럭 친했던 친구와, 때로는 혼자서 극장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것이 슬플 지경이었다. 운이 좋았다면 내가 20대를 보낸 2000년대가 한국 '웰메이드 영화'의 황금기였단 것일까. 하릴없이 극장에 가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같은 영화들이 걸려있었다. 영화 보기 좋은 시절이었다.
이런저런 방황을 거쳐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면서는 문화부 기자를 목표로 삼았다. 영화 전문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대중문화 전반을 다루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역시 운이 좋았던 덕에 초년병 시절 덜컥, 문화부에 발령이 났지만 곧 슬럼프에 빠졌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회의감이 들었다. 그즈음 영화팀으로 가게 됐다.
영화의 세계는 과연 깊고도 넓었다. 유려한 기사를 쓰고 싶었지만 '로코 내공' 따위로는 어림도 없었다. 일단 영화를 많이 봐야 했다. 닥치는 대로 봤다. 발을 들이고 보니 이럴 수가, 세상에는 규모가 작아도 울림이 큰 영화들이 정말, 정말 많았다. 어두컴컴하고 작은 극장에서 무심히 앉아 있는 관객 서너 명을 앞에 두고 펼쳐지던 이야기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 1주일 정도 걸려 있다 막을 내리는 영화들 속에서 보석을 발견하면 가슴이 뛰었다. 찝찝하고 의뭉스러운 결말에 뒤통수를 맞을 때도 많았지만, 음미하다 보면 그것마저 달콤쌉싸름한 게 꽤 괜찮았다. 오래 머금고 있어서인가, 삶의 피로 한가운데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닥쳐오는 장면들은 제목도 가물가물한 그런 영화들의 한 조각일 때가 많았다.
나는 왜 그렇게 영화를 좋아했을까.
단 두 시간, 어두운 극장 의자에 앉아 지긋지긋한 나를 벗어나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 문제를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완벽히 남에게 몰입해 그 사람이 되는 시간이 좋았다. 종국에는 이야기의 끝에서 주인공의 안에 고인 것을 내 것으로 한 움큼 가져올 수 있어 좋았다. 그 한 움큼으로 우울을 가라앉히고, 눈물을 닦고, 다시 한번 해보자고 나를 다독일 수 있었다. 그 한 움큼 덕분에 많은 날의 슬픔을 흘려보냈다.
역사책을 다시 집어 든 것은 국제부에 오면서였다. 한국이란 좁은 땅을 벗어나 세계정세를 다루는 기사를 쓰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매일 국제뉴스를 쓰다 보면 종종 이런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세상에 이렇게나 중요한 일이 많은데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여러분!’ 짧은 기사를 내보내고 나면 그 뒷이야기가 늘 궁금했다. 미국하고 이란이 다툰다는 기사를 쓴 후에는 두 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앙숙이 된 건지 알고 싶었다. 쿠르드족이 핍박받는다는 기사를 송고한 후엔 튀르키예(터키)가 쿠르드족을 왜 그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궁금했다. 퇴근하면 맥주 한 캔을 따고선 역사책을 읽기 시작했다.
국제뉴스에 흠뻑 빠져들어 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뉴스를 볼 때마다 영화들이 불쑥불쑥 떠올랐다. 작고 깜깜한 극장 의자에서 보낸 수많은 날이 소환됐다. '아, 이란 얘기면 그 영화가 재밌겠는데.' '브라질을 제대로 알려면 역시 그 드라마지.'
그렇게 시작한 칼럼이 '영화로운 세계'였다.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세계정세를 전하는 칼럼에 독자들은 큰 응원을 보내왔다. 영화 속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딱딱한 뉴스도 쉽게 읽힌다는 댓글과 메일이 날아들었다. 주말까지 헌납해 기사를 쓴 일이 헛되지 않았다. 그 응원 덕분에 한 고등학교에선 내 칼럼이 세계사 부교재로 쓰였고, 대학에서 특강 요청을 받기도 했다. 퇴근길 라디오에 출연해 영화를 곁들인 국제뉴스를 전하기도 했다. 넘치는 사랑을 받은 덕에 나는 이 칼럼을 2018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3개 시즌에 걸쳐 연재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일이 쌓이고 모여 이 책이 됐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밥상 물가를 좌지우지하는 시대다.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우리 주식시장이 요동친다. 유럽연합(EU)의 환경 정책이 당장 내가 다니는 회사의 올해 목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세계 시민 아닌가. 먼 나라인 줄만 알았던 예멘의 난민이 한국까지 오는 세상에서 '이슬람은 무서워'라는 태도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 세계정세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필수 교양이 됐다.
걸림돌이 있다면 그 정세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괜찮다. 우리에게는 영화가 있으니까.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젊은 세대도 <서울의 봄>(2023, 김성수 감독)을 보고 극장 밖으로 나서는 순간에는 그 시절의 부조리함에 분노하며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드는 힘, 그런 매력으로 때로는 천만 명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힘. 그게 영화의 힘이니까. 스크린 속에 서 있는 한 인간이 처한 위기를 함께 걱정하며 그의 발걸음을 좇다 보면, 지겹기만 했던 역사책의 한 페이지가 잊지 못할 절절한 이야기로 남고는 한다.
지금 이 시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이야기를 추리고 추렸다. 영화를 통해 세계정세를 전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다룬다는 칼럼의 기본 콘셉트만 가져왔을 뿐 모든 이야기는 새로 썼다. 그때그때 벌어지는 일에 초점을 맞춰 쓴 칼럼 모음집이 아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교양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화 중에서도 언젠가 시간을 들여 챙겨 봐도 아깝지 않을 작품을 고르려 애를 썼다. 오늘의 안위를 지켜내느라 녹초가 되어버린 어느 날, 생의 환기를 위해 당신이 재생 버튼을 누른 영화가 이 책 속 작품이라면 더없이 영광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은 외판원 아저씨의 시큼한 발자국에서 시작된 것 같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책을 훑던 모습, 고민에 빠진 엄마의 미간에 잡히던 주름, 책장에 꽂히던 새 전집의 빳빳한 질감. 그리고 부모님 곁에서 TV 드라마를 보며 활자 매체와 영상 매체가 만난 순간에 희열을 느끼던 어린 날들에서 말이다. 아니면 찝찝하고 의뭉스러운 결말로 뒤통수를 치던 달콤쌉싸름한 영화들에 달뜨던 혼자의 날들, 그날들에 빚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