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에 대한 해석 에세이
이 삶이 내게 얼마나 외로운지. 계속해서 살아가고 돈을 벌고 밥을 먹고 공과금을 내고 카드 등록을 하고 국가지원사업을 찾아보는 이 끈질긴 생명력이 내게 얼마나 지겨운지.
지하철에 빼곡히 앉아서, 서서 있는 사람들의 늘어진 얼굴을 볼때면 우리에게 청춘이란 가당키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터널을 통과할 때면 언제나 눈물을 참아야 한다.
쌓여 있는 친구와 연인의 연락.
혼자인 기분을 차마 방해받고 싶지 않아 궁금하지만 그냥 눈을 감는다.
이런 마음. 이것도 외로움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른한 외로움에 취해 하루 정도는 그저 흘려 보낼 수 있다면.
떠오르는 상념들 때문에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외로움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상념이 외로움만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생각들 속에는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존재한다.
불안이 100명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시뮬레이션을 돌리느라 잠이 안 오나보다. 그외에도 오늘 같이 일했던 동료는 나와 달리 일을 너무 잘한 것 같고, 직무에 대한 고민, 곁가지 고민이긴 하지만 자주 생각하는 나와 멀어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과 약간의 후회와 원망. 만약에 이랬다면 어땠을까 로 생각하는 온갖 가상의 상황들. 시뮬레이션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생각이 많고 지나치게 기억을 잘하면 불행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뇌가 그렇게 생겨먹었다고 한다. 나는 타인에게 준 상처나 받은 상처나 주고받은 무엇들을 지나치게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러한 과거가 발목을 잡아 현재에 집중을 못할 때도 있다. 언젠가 친구가 내게 삶의 질이 너무 낮지 않느냐며 자조하듯이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어쩌면 고통을 즐기는 걸까? 불안이 100명이 날뛰며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와중, 잠을 못자더라도 내일 아침에 산책을 하는 나를 떠올리고, 산책을 가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편히 누워 뭔가를 시켜먹는 내가 있다.
'삶이 나선형으로 괜찮아지는 거래 원래. 괜찮았다가 다시 안 좋았다가 그게 당연한 거래.'
그니까 우울을 동경하던 십 대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도 그게 당연한 거란 거지. 다 가짜 같고 거짓말로 웃고 떠드는 것 같은데 사실 가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어.
다른 게 있다면 이제 우울만 진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는 거야.
적어도 이 글이 지나치게 감정적이란 비판을 할 수 있게 됐단 거야.
그거면 된 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