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사랑

2025년, 인도네시아로 2주간의 해외 봉사를 다녀온 후

by 회복하는돌

나는 언제나 사랑의 본질이 궁금했다. 입버릇처럼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라고 믿은 적은 드물었다. 본질이 아니라 대상이 존재하는 거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와닿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진실을 외면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는 건지, 그 사랑이 묻어나오는 순간이 정말로 있다면 그 광경은 어떤 형태를 지닌 것인지 목도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난 2주간 인도네시아에서, 나는 내가 꿈꿔온 사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사랑을 느낀 순간은.

‘첫 번째. 과거에 두고 온 것들보다 현재에 집중하기, 두 번째. 통역 친구들, 하티 팀원들이랑 소통 많이 하기, 세 번째. 사랑을 많이 나누어 주기’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후 첫 번째 날, 이번 해외봉사 활동에서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일기장에 적어 두었다. 나는 세 가지 모두를 다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늘 이루지 못한 것들에 전전긍긍하며, 남들에게 보여지기 좋은 목표에 치중했던 나는 봉사 활동을 하면서 딱 오늘 하루치의 교안, 내일 할 분량만큼의 벽화 등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통역팀으로 파견된 언니, 그리고 나를 누나처럼 따르던 동생들과 함께 매일같이 장난치고 웃으면서 자국에 있을 때보다 더 깊은 유대를 쌓기도 했다.

사랑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마지막 목표는 내겐 참 어려운 목표였고, 이루었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큰 목표였다. 부끄럽게도 나는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이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도 막내였고, 그간 관계를 맺어오며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베푼 사람에 대한 호의와 감사를 표현하는 데 더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주는 것과 받는 것으로 딱 잘라 나누기는 어렵지만,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나는 사랑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교육 봉사활동으로 초등학교에서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돌아섰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가 받은 편지를 읽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 벅차올랐고, 그런 아이들을 이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련해졌다. 내가 그간 준 것이 너무 부족해서 이 아이들이 날 기억해줄 수는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없음이 아쉬워 눈물 흘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건 내가 새롭게 배운 사랑의 이름이었다.

나는 순간으로 영원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한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했던 몇몇 순간들도, 언젠가는 내 세상을 전부 차지할 정도로 크다고 믿었던 관계를 맺으며 함께 울고 웃었던 사람들도, 결국은 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순간이 평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영원이란 말이 주는 무게감이 날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팀원들과 함께 교육을 끝내고 서로 수고했다고 말해주며 걸어오던 날들, 아이들이 내게 다가와 간식과 선물을 건네주던 예쁜 모습, 마지막 날이 가는 게 아쉬워 새벽까지 이어지던 팀원들과의 대화가 떠오를 때면 이 순간의 기억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이 순간 또한 옅어질지도 모른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의 수레바퀴에 치여 살아가는 한국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다면, 그때 내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었던 학생들의 이름은 잊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감각했던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고 싶어 남긴다.

주는 사랑의 기쁨과 순간으로 일생을 지탱하는 법을 알게 해준 인도네시아 팀블하르죠 초등학교 아이들을 비롯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준 통역 친구들, 현지에서 함께 울고 웃은 단원들과 인솔진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