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반으로 자를 수 있다면

태초에 하나였던 우리에게, 흉터는 사실 사랑의 증거다.

by 회복하는돌


제우스는 인간을 둘로 잘랐다.
인간이 자신의 잘린 면을 보며 겸손의 교훈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아폴론은 양쪽 피부를 잡아당겨 우리가 배 가운데에 단단히 매듭을 묶었다. 그 배꼽이라 부르는 것 때문에 인간은 예전의 상태를 기억할 수 있었다.

(...) 이렇게 인간이 둘로 나누어진 후에는 각각이 나머지 반쪽을 갈망하면서 같이 있게 되고, (...) 그 남은 반쪽은 완전한 부분을 찾는 데에 매달리게 된다.

-플라톤, <향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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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넘버 - The origin of love를 듣고


우리가 지금 나누어져 있다고 믿는 당연한 것들은 원래는 하나였다. 행복과 슬픔, 사랑과 고통, 남성과 여성까지도.

가끔 나의 결핍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적 사랑에 대해 떠올린다. 인간을 둘로 나눈 제우스의 칼로 결핍을 자를 수 있다면 어떨까?

나의 결핍을 자른 채 행복했던 기억만 안고 살아간다면, 나는 그 결핍을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인간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영원히 반쪽을 찾아 헤맨 것처럼.


태초부터 분리된 줄 알았던 것들이 단일한 하나에서 쪼갈라진 거라고 생각하면 많은 게 쉬워진다.

결핍도 삶의 한 조각이고, 흉터도 사랑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에게 배꼽이 남아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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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른쪽 팔에는 헤드윅 타투가 하나 있다. 리터치를 받지 못해 희미해졌긴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분명히 새겨져 있어 나의 어떤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했던 누군가를 잃었을 때 오는 상실, 차라리 없었으면 나았을까 싶어서 기억을 떼어버리고 싶을 때마다 새긴 타투를 쳐다본다.

자신을 사랑해줄 반쪽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자신이 그 반쪽임을 깨달은 채 홀로 거리를 걸어가던 헤드윅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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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마음이나 관계를 분리시킨 채 이해하려던 나의 마음이 얼마나 무의한 것인지 깨닫는다.

내가 떼어버리고 싶은 기억들도, 숱한 관계도, 모두 나라는 사람의 삶에서 파생된 것임을 이해하면

우리는 더 이상 이분법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만남과 이별도, 영원과 유한함도, 나의 행복과 나의 슬픔도 모두 하나의 원 안에서 돌고 돈다.

원 안에서 나는 넘어진 나를 스스로 일으켜세울 힘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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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랑 내가 다르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확인받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을 만큼 나를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운 사람한테 지나치게 징징거릴 때가 있다.

열심히 배우려는 태도를 가진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중을 못하고 계속 딴 짓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내가 가끔 싫어진다.


싫어하는 나의 모습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외롭다고 느낄 때마다 헤드윅이 맨몸으로 노래를 부르던 모습을 떠올리고,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는 나를 구원할 힘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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