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구의 증명>을 통해 건강한 이별 톺아보기
세상에 주목함으로써 관계의 지속에 집중하는 나는 유독 누군가와의 관계 단절에 크게 반응했다. 그런데 이러한 이별의 반복에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당장 음악 앱을 켜서 생각나는 유행가의 가사들을 떠올려 보자.
남녀 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노래는 얼마나 많으며, 또 그 사랑이 끝난 뒤의 삶에 대한 노래는 얼마나 더 많은가.
어떤 노래는 지나간 시절은 깨끗이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해서 나를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노래는 일 년이 가도 십 년이 가도 너를 잊을 수 없으리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두 번 다시는 사랑같이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방법들 중 어느 것이 이별의 수용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과연 우리는 이별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다룰 수 있을까?
이별 면역력이 약한 서사 – 최진영 <구의 증명>
구는 어릴 때부터 친한 담과 가족과도 같은 사이이다.
그러나 구는 자신의 상황 때문에 담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일방적으로 단절하려 한다.
구는 주변에서 담을 희롱하는 상황,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 부모님에게 쫓기는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차가운 세상 앞에서 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보다 혼자 고난을 견디기를 원한다.
멍청한 집착이라고 했다. 분명 더 큰 불행이 올 거라고 했다. 불행이 커지면 함께 있어도 외로울 것이고, 자기와 같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괴로울 것이고, 그때가 되면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거라고.
“나는 내가, 너를 좋아지게 하는 사람이면 좋겠어. 근데 그게 안 되잖아. 앞으로도 쭉 안 될 것 같잖아."
구는 자신의 삶에 대해 단 한순간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자신의 삶에서 불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구는 담과 함께하는 미래에 대해 의혹을 품고, 그와 멀어지고 혼자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이후에 둘은 관계를 이어가지만 구는 돈벌이를 위해 매춘을 한다. 구는 담과의 관계의 낙관적인 지속이 아니라 자기 삶의 철저한 불행을 믿는 사람이다.
반면 담은 홀로서기에 완전히 실패한 상태로,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도 구와 함께하겠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이 소망은 집착과도 같이 보이는데 이모의 죽음 이후로 이러한 집착은 더욱 심해진다.
구와 담은 지난한 만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한다. 그리고 결국 구가 죽음을 로 담의 곁을 떠나고 난 이후에야 그 관계는 끝이 난다.
그러나 담은 구가 죽은 순간까지도 관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데, 이는 담이 구의 허물, 말하자면 그의 육신이자 시체를 버리지 못한 채 그것을 먹어버리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담은 구를 영원히 자신 안에서 보내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그로테스크한 의지를 보이는데, 이는 구의 죽음이라는 이별에 매몰되어 그 이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한 모습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자기 파괴적이고 집착적인 ‘담’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은 날들이 있었다. 맹목적이 지 않으면 진심이 아니라고 믿은 적이 있었다. 한 교양 수업에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토론할 때에, 나는 손을 들고 ‘구의 증명’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해도 같이 행복하고, 불행해도 같이 불행한 거요.
교수님은 불행해도 같이 불행하자는 말은 조금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교수님 또한 현실에 타협해 진정한 사랑을 할 줄 모르는 비겁한 어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야기를 남자친구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난 후, 그 관계는 끝나 있었고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비겁한 어른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사랑이 결국 끝을 맞았다고 해서 그간의 관계가 실패한 것일까. 우리가 나누었던 약속을 더는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그 모든 새끼손가락의 마주 봄은 없어져야 하는 나쁜 기억에 불과한 것일까.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니듯이, 지속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현실에 타협한다고 생각했던 교수님의 갸웃거림이 이해가 된다. 서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관계라면, 끊어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온전히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인가? <구의 증명> 속 담처럼, 홀로 설 수 없다는 두려움이 당신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나를 갉아먹고, 해치는 관계여도 상대방을 떠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가?
건강한 이별은 사실에 대한 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사람이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떠나겠다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 연애라는 관계가 서로의 합의 하에 진행된 것처럼 이별 또한 존중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별 때문에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건강하고 새로운 만남과 이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