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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rora Sep 21. 2020

아무것도 안하는 날

제주에서 쉼과 멍

10월 사업장 이전과 컨테이너 입고. 거사를 앞두고 제주에 다녀왔다. 9월 주말마다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다. 무겁고 바쁜 압박감으로 보내는 일상을 보내는 시기에 잘 쉬지 못하면 고장이 난다. 다양한 주제의 결정을 하고 지친 주말은 제주에서 쉰다. 제주에 가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충만한 시간을 선물해준다. 고마운 여유를 준다. 그래서인지 자꾸 제주에 가고 싶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해도 어느새 조급해진다. 제주에 가야만 공백 여유로움 충만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 집에서는 잘 안된다. 명상을 해도 요가를 해도 일을 하고 있어도 마음 어딘가는 계속 바쁘게 달리고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급함을 분주함을 못난 독을 내뿜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스스로 컨트롤이 잘 안된다. 삶에 거리를 두고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서는 생활의 공간과 물리적 거리감이 필수적이다.

생각해보니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9월에 한국에 있어본 적이 별로 없다. 9월 내 생일 그리고 결혼기념일, 추석 연휴 놀 구실이 다양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 배낭여행을 유럽으로 간 이후 20대 그리고 30대 나는 부지런히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뉴욕에 있는 친구를 만나야 한다며 떠났었고, 워크숍을 가야 한다며 출장을 가야 한다며 다양한 이유로 떠났다. 9월은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새로운 경험과 영감으로 꿈꾸기 바빴다. 그리고 해외에 있다는 그 기분에 행복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실이다. 나는 방랑 유전자가 심어져 있나 보다. 떠나면 금방 행복해진다. 어쨌든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이고 여행은 꿈만 꾸어야 하는 요즘 탈출구는 제주다. 제주에 가면 좋은 게 많지만 비행기를 타는 게 좋다. 차를 타는 여행과 비행기를 타는 여행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더 멀리 떠나는 기분 같은 거랄까.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여정이 지금 현실과 서서히 거리를 만들어 준다. 어쩌면 나는 그 거리감을 위해 단절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 강원도보다 제주가 좋은 건 비행기를 타고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제주에서 한 일이라곤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풍경 바라보고 음악 듣고 가끔 걷고 하늘 구름 보고 별 보고 사진 찍고 가끔 얘기하고 이것이 내가 한 일의 전부다. 시시한 일만 했는데 나는 충만해졌다. 여유로워졌다. 편안 해졌고 가끔은 계절감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계도 달력도 SNS도 보지 않았다. 그냥 좀 심심했는데 그 점이 제일 좋았다. 사업을 하면서 힘든 이유 중 하나는 SNS를 운영하면서 감정노동에 사로잡힌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노출되면서 보지 않아도 될 것 알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세계에 나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나도 조금 이상해 지기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전전 긍긍하면서 살게 된다. 다른 사람을 맥락 없이 부러워하거나 싫어하게 된다. 아닌 척 하지만 사실 상관없지 않고 휘둘리게 된다. 대표로서 다른 대표님들보다 인기가 없어 그 사실이 브랜드 운영에 혹여라도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면서 비생산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인기 셀럽 앞 광고 뒤 광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며칠 전 장기하 님이 쓴 책 <상관없지 않은가>를 읽었는데, 장기하 님도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놀랍고 한편으로는 위로가 되었다. 연예인도 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 자살을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유튜브도 하고 싶긴 한데… 이 증상이 더 심각해질까 보류하고 있다. 어쨌든 개인 기록 공간을 모두 사업 계정에 양보하고 나는 지금 브런치로 도망 와 있다. 누가 읽을까 싶은 글을 쓰면서 위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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