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5만 년 전, 인류 최초의 '오징어 게임'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금부터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실제 일어났다면 위의 캐릭터 중 누가 생존할 수 있을까? 어쩌면 주인공 '찌질남'이 가장 먼저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생존에 유리한 장점이 두드러진다. 보다 냉철하거나, 의심이 많거나, 근력이 뛰어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런 캐릭터가 생존에 더 유리해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생존과 관련된 가장 오랜 믿음이기도 하다.
그 믿음을 뒷받침하는 고전이 있는데 16세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다. 이 책은 서바이벌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안내서라고 할 수도 있다. 군주론에 따르면 생존할 수 있는 궁극의 재능이란 교활함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해야 한다. 인간이 수만 년 동안 해온 일이란 서로를 속이고 죽이기 위해 점점 더 창의적인 방법을 고안했으며, 특히 거짓말이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뇌를 더 크게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렇게 교활함의 극치인 '마키아벨리적 지능'을 가진 인간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다.
특히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것은 '포커페이스'였다. 그것은 수치심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표정을 말한다. 그래야 남을 속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뻔뻔한 인간만이 승자라고 봤을 때 오징어 게임의 진짜 승자는 '엘리트'가 되어야 맞다. 여기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수치심을 느끼는 동물일까?
이 지구를 거대한 오징어 게임이라고 가정해 보자. 지구 탄생 후 46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체가 있었지만 이곳을 정복한 최후 승자는 인간처럼 보인다. 그런데 불편한 진실이 하나 숨어 있다. 사실은 현생 인류만이 유일한 인간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5만 년 전, 지구엔 최소 다섯 종류의 인간이 함께 살고 있었다. 통상 우리가 '호모'라고 명칭을 붙이는 존재들 말이다. 그들은 모두 구석기 시대를 살다가 이후 자연스럽게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었다고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호모 루소넨시스, 호모 데니소바, 호모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우리(호모 사피엔스)가 동시대에 공존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다. 진실은 모든 이야기 뒤에 숨는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모든 게 가설이다. 우리는 5만 년 전에 벌어진 인류 최초의 '오징어 게임'을 유추해야 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 오징어 게임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인종 청소 캠페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에서도 이렇게 표현했다. "관용이란 사피엔스의 특징이 아니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도 동일한 의견을 얘기했다. 우리 조상들은 웬만한 살인자보다 더 많은 살인 흔적을 남겼으며 유죄판결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피엔스는 다른 인종을 학살했다.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이란 뜻)는 가장 교활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키아벨리적 지능을 가진 존재였으며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의 달인으로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와 재러드 다이아몬드뿐만 아니라 이미 그전부터 인간 본성에 대해 탁월한 결론을 내렸던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비슷한 결론이었다. 이 모든 주장을 종합해 보면 사피엔스는 오징어 게임 캐릭터 중 '엘리트'였다. 그런데 최근 밝혀진 과학적 추론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진짜 엘리트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호모 네안데르탈인'이었다.
사피엔스(왼쪽)와 네안데르탈인(오른쪽) 두개골 비교
최근 과학은 죽은 자들의 없어진 뇌도 유추할 수 있다. 유골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뇌를 3차원 모델링한 결과 사피엔스의 뇌보다 15%가 더 컸다. 크기만 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성능 좋은 컴퓨터였다. 우리가 맥북 에어를 가졌다면 그들은 맥북 프로를 가졌다. 지능도 더 좋았고 의식 수준도 더 높았다. 우리가 발명했다고 믿어왔던 일부 석기 도구와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까지 사실은 사피엔스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것이라는 증거도 나왔다. 심지어 그들은 악기도 다루고 벽화도 그렸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최근 발견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 있다. 그들은 사피엔스보다 신장도 컸으며 근육질에 힘도 세고 추운 기후에 대한 생존 능력도 훨씬 뛰어난 인간이었다. 모든 지능적 신체적 능력을 분석해 봤을 때 인류 중에 가장 뛰어난 엘리트는 사피엔스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이었다.
그렇다면 왜 네안데르탈인은 오징어 게임의 최후 승자가 되지 못했을까? 왜 열등한 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았을까? 결론적으로 우리가 믿어 왔던 생존 능력에 대한 통찰이 모두 틀렸다. 생존에 유리한 것은 교활한 '엘리트'가 아니었다.
우리가 믿어 왔던 마키아벨리의 주장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는 수치심과 감정을 숨길 수 있는 자가 최후의 승자라고 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능력이 '포커페이스'라면, 인간은 왜 모든 동물 중 유일하게 얼굴이 빨개지는 동물이란 말인가. 만약 그것이 생존에 불필요한 기질이라면, 왜 진화 과정에서 자연도태되지 않았을까?
애석하게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미치지 못했다. 찰스 다윈은 얼굴을 붉힐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구별짓는 진화적 특성이라고 했다. 우리는 표정을 통해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발산하며 다른 동물이 느낄 수 없는 고등 감각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인간이 생존하는 동안 사라지지 않은 진화적 결론이다. 수치심이란 인간의 조건이었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을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우리는 감정을 숨기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노출하며 주위와 관계를 맺는 동물이다.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관계를 지향하는 존재의 특권이다. 매우 이타적이며 이기적이지 않은 감각이다. 인간이 유아독존으로 생존했다면 발전할 수 없는 감각이다. 사피엔스는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로 인해 살아남았다. 열등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뛰어난 점은 관계를 지향하는 이타성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인류 중에 엘리트였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들의 유전적 특성은 사교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개개인의 뇌가 뛰어났지만 집단으로서는 똑똑하지 못했다. 네안데르탈인이 초고속 컴퓨터였다면 사피엔스는 저사양 컴퓨터지만 와이파이를 탑재했다. 사피엔스는 느리지만 잘 연결되었다. 네안데르탈인은 5명이 무리를 지었다면 사피엔스는 50명이 무리를 이루었다. 덕분에 번식도 용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대신 타인을 모방하는 것에 능했다. 모방이란 집단학습이다. 네안데르탈인은 1명이 낚시를 할 줄 알았다면 사피엔스는 10명이 누군가의 낚시를 모방했다.
이런 차이가 수천~수만 년 지속되면 진화 과정에서 생김새도 달라진다. 사피엔스는 눈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홍채 주위에 흰자위가 생겨난 것이다. 이 또한 현생 인류만이 가진 신체적 특징이다. 이로 인해 눈동자가 또렷해졌고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해졌다. 네안데르탈인은 흰자위가 없으며 멜라닌 색소가 달라 눈이 온통 검은색이었다. 마치 선글라스를 착용한 것처럼 곁눈질을 해도 시선을 알 수 없다. 다른 영장류인 침팬지나 오랑우탄과 똑같다. 이는 마치 포커페이스에 가까운 특징이다.
사피엔스의 눈은 위장술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진화였다. 누구를 속이려는 게 아니라 시선을 노출함으로써 타인과 '눈짓'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다. 눈으로 방향을 가리킬 수도 있고 눈빛으로 상대에게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어쨌든 마키아벨리가 원했던 뻔뻔함을 위한 기능은 아니었다. 인간의 눈 또한 이기적 유전자가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에 가까웠다.
특이한 점은, 인간이 개를 기르기 시작한 시기와 네안데르탈인이 자취를 감췄던 시기가 일치한다는 점이다(약 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개를 기르지 않았다. 개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사피엔스와 공생의 연을 맺었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사피엔스처럼 흰자위를 갖고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작은 뇌를 가졌지만 더 큰 무리를 형성했던 사피엔스는 언어 능력도 더 발달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타성을 기반으로 관계를 지향하고 더 큰 무리와 소통을 하려면 언어 능력은 향상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많은 것을 감추기보단 더 많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능했다. 언어의 발달이란 사회적 동물의 특성이며 이는 다른 인류보다 사피엔스가 가진 가장 탁월한 특징이었다.
현생 인류의 '오징어 게임'에서 마지막 게임은 다름 아닌 '빙하기'였다. 이 빙하기 이후 네안데르탈인은 자취를 감췄다. 다섯 인류 중 가장 똑똑했던 엘리트는 그렇게 고독한 추위를 맞이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피엔스가 그들을 몰살시켰는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과학은 현생 인류의 유전자에서 4%는 네안데르탈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싸웠다는 증거는 희박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서로 이종교배를 시도했다는 명백한 증거다. 좀 더 로맨틱하게 표현하자면, 서로 사랑하기도 했다는 의미다.
이로써 현실판 오징어 게임의 최종 결말도 드러났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최후 승자는 '찌질남'이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에 방점을 찍는 플롯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도 그와 다르지 않다. 가장 똑똑하진 않아도 가장 이타적인 캐릭터가 생존에 유리하다. 그런 특성을 가진 것은 누가 뭐래도 '찌질남'이었다. 그는 위기 때마다 타인을 결합시켰고 관계의 힘을 얻었다. 어딘가 어설픈 그의 모습은 타인이 경계심을 내려놓는 이유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로 벌어진 현실판 오징어 게임에서 최후 승자는 사피엔스였다. 그 사피엔스는 바로 '찌질남'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생존에 대한 선입견은 모두 틀렸다. 그것은 더 똑똑하거나, 냉철하거나, 의심이 많거나, 근력이 뛰어나거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적 지능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는 우리가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이타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