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딴생각

어디까지가 인맥일까?

던바의 법칙, 150명

by 딴생각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00명 이상의 카톡 친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판매왕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조 지라드의 인맥은 250명이라고 했다.

당신의 인맥은 몇 명인가?

*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9/28 결과), 4,191명 참여 중 44%가 100명 이상의 카톡 친구를 두고 있음.



8년 전이었을까?

내가 다니는 회사의 임직원이 200명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당시엔 모두 친하진 않더라도 얼굴을 모르는 직원은 없었으니 오다가다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하고 다녔다.


어느덧 회사는 점점 커져 임직원이 700명을 넘어선 지금, 200명과 700명의 차이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를테면 면식도 없이 메신저나 이메일로만 소통하는 직원이 많아졌다.

어쩌다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회의가 생기면 서로 누군지 못 알아봐서 당황하기도 한다.

한때는 회사의 임직원 전체가 나의 인맥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느낌이다.


진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가 말하길, 인간이 친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치는 150명이라고 한다.

동물마다 사교성에 한계가 존재하는데 즉, 대뇌의 용량에 따라 인맥의 최대치가 결정된다는 '던바의 법칙'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인간이 부족을 형성하며 공동체 생활을 했을 때도 평균 숫자는 150명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호주나 뉴기니, 그린란드에 거주하는 원시부족의 평균 숫자는 150명이다.

영국 시민들이 연말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몇 명에게 보내는지 조사해 보니 1인당 평균 68곳이고, 그 가정의 구성원을 다 합치게 되면 평균 150명이라고 한다.

군대에서도 최적의 전투를 위해 필요한 중대 단위의 병력은 150명 이내라고 한다.


EBS.jpg


200명은 감당하지만 700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를 '던바의 숫자'인 150명을 기준으로 하니 납득이 된다.

그런데 인맥을 '양'이 아닌 '질'로 따지게 된다면 어떨까?


사실은 로빈 던바도 인맥의 최대치인 150명을 얘기했을 때 단서를 하나 붙였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저녁식사나 술자리를 함께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를 <인맥>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이 150명이란 숫자는 결코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자신의 비밀을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아주 친한 관계는 1~2명 정도다.

어쩌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신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수준의 관계는 3~5명 정도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사망했을 때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정도의 관계를 사회심리학자들은 <공감 집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10~15명 정도의 규모를 의미한다.

아마도 이 <공감 집단>을 넘어선 인맥의 숫자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핵가족 시대를 넘어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엔 인맥의 성질도 변화했다.

이제는 인맥을 형성하는 일이 아날로그 방식보다 디지털 방식에서 훨씬 많이 일어나며, 눈을 마주치고 피부가 닿아서 느껴지는 친근함보다 주고받는 이모티콘의 풍부함이 관계의 깊이를 대신해 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페이스북의 친구가 수백 명이 넘는데도, 페이스북은 여전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추천해 주며 친구 맺기를 부추긴다.

마치 '던바의 숫자'인 150명을 비웃기라도 한 듯, 친구 맺기가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비로소 5,000명이 넘어서야 <친구 한도 초과>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facebook.jpg


뉴욕대학 에릭 클리넨버그 교수가 쓴 '고잉 솔로(Going Solo)'라는 책을 보면 외로움을 결정하는 것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이며, 따라서 관계의 욕구를 질이 아닌 양으로 채우려는 것은 허망한 시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페이스북에서 한도 초과 판정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은 멋진 일이다.

그저 관계의 욕구를 채우려는 외로움의 몸부림이었다면 허망하겠지만, 그것이 목적을 수반으로 한 행동이라면, 나의 인지도를 높이고자 한 결과라면, 필요할 때 소통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놀라운 성과다.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맺은 친구도 소중하지만, 때론 디지털 소통에 알맞은 친구도 있는 법이다.

로빈 던바가 얘기했던 밥을 먹고 술을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것이 <인맥>이라는 정의는 그런 관점에서 조금 어색하다.


옛말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있다.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거리를 둔다는 뜻으로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표현이다.

통신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런 '불가근불가원'이 필요할 때, 오히려 SNS가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설사 부부라고 할지라도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좋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독일에서는 주6일 근무제가 주5일 근무제로 바뀌면서 부부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자 이혼율이 증가했다는 웃지 못할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따라서 부부라 할지라도 '불가근불가원'은 필요하다.


로빈 던바의 말처럼, 언제든 밥을 먹고 술을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150명의 인맥이 있다면 참 든든할 것이다.

내가 속한 회사 700명의 임직원이 모두 나의 인맥이라면 회사 생활이 너무나 행복하겠지만, '던바의 법칙'상 나의 대뇌 용량의 문제로 그러긴 어려울 것 같다.


비록 서로가 면식도 없이 메신저와 이메일로 소통해야 하는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라 하더라도,

한 울타리 안에서 공통의 비전을 공유한 사이이기에 700명이 모두 나의 인맥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욕심쟁이인가.



connection 01.jpg [딴생각] 어디까지가 인맥일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