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빈곤
생존의 시간을 위협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시간 빈곤'이다.
우리는 기본적인 삶을 위해 써야 하는 시간이 있다.
그것은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고, 취미 활동을 하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이것을 <생활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생활시간>을 위해 보통 사람이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에 97시간이라고 한다.
- 수면 (54시간)
- 식/음료 섭취 (12시간)
- 위생 및 옷 입기 (8시간)
- 취미, 문화생활, TV 시청, 운동 포함 최소 레저 (14시간)
- 청소, 빨래와 같은 가계 활동 (7시간)
- 휴식 (2시간)
....... 일주일(168시간) 중 97시간 소요
[자료] 한국고용정보원, 연구보고서(2014년) 참고
이 <생활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이 우리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가용시간>이 된다.
즉, 일주일(168시간) 중 97시간을 뺀 71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유로이 쓸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거짓말이다.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71시간 중에 최소 근로 40시간은 제외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짜 '자유로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시간은 일주일에 31시간이 된다.
'고작 그것뿐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최소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하루에 2시간씩만 야근을 해도 가용시간은 일주일에 21시간으로 단축된다.
이와 중에 일주일에 30시간짜리 자기계발 계획을 수립하려고 했다면 낭패다.
최소 근로시간을 줄일 수도 없을뿐더러 야근도 병행해야 하는 현실이라면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바로 <생활시간>을 줄여야 한다.
그래도 자기계발을 위해 생활시간을 아껴야 한다면 양호한 편이라고 봐야 겠다.
만약 일주일에 71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가용시간>이란 것은 아예 없어져 버리게 된다.
자기계발은 고사하고 일을 위해 <생활시간>조차 아껴야 할 지도 모르는 입장이니까.
전 세계를 비교해 봤을 때, 근로시간으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에서 이런 처지에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근로기준법상 최장 노동시간은 52시간이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주말 특근을 하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자영업자의 경우엔 노동시간이 71시간을 초과하는 일이 태반이다.
결국 이런 경우엔 일을 위해 <생활시간> 중 일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생활시간> 중 수면, 위생, 식사와 같은 시간을 줄여야 하는 경우라면 가히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위협하는 것이라 하겠다.
돈이 없는 것만이 빈곤이 아니다.
생존의 시간을 위협받는다면 그것이 바로 '시간 빈곤'이다.
일이 인간의 생존 시간을 위협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오랜 옛날, 18세기 이전만 해도 일이 생존을 위협한다는 생각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재단사라는 직업은 재단할 옷이 있으면 일을 하는 것이었고, 대장장이라는 직업은 말굽을 신기는 일이 끝나면 집에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일터에 남아서 오후 6시가 되어야만 사원증을 찍고 퇴근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량생산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근로자에게 엄청난 노동시간을 종용하는 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거의 하루 종일 환하게 불이 켜진 공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근로 시간을 제한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20세기였다.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표현이 생긴 것은 기혼 여성 중 상당수가 근로자 대열에 합류한 1980년대 중반부터였다.
그때부터 가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우리는 근로자 1명, 가정주부 1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출발하여 근로자 2명, 가정주부가 없는 가정으로 도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부터 회사 일은 물론이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기혼 여성들이 시간 빈곤에 허덕이게 되었다.
따라서 초기에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것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심각한 문제였다.
이후 가사에 대한 인식 변화가 생겨나면서 남녀 모두가 가사를 분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 '일과 삶의 균형'이란 모두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후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었다.
주 44시간이었던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는 '주 5일 근무제'를 시작으로, 8시간 근무를 자유롭게 조정하는 '탄력근무제'라든지, 유연근무제, 재택근무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또 정부가 여러 가지 형태로 지원하는 '문화가 있는 날', '즐거운 직장, 행복한 기업' 인증, '가족친화기업' 인증,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인증 등도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제도였다.
최소한 9시에 출근하면 6시에 눈치 안 보고 퇴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이쯤에서 문제가 하나 있다.
그러한 제도적, 문화적 노력만 있으면 일과 삶의 균형이 저절로 잡히게 되는 걸까?
단순히 오후 6시에 퇴근하는가를 기준으로 일과 삶 모든 것이 성공적인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과 삶의 균형'이란 퇴근 시간만으로 단정할 수 없다.
오로지 시간을 따져서 정확하게 일과 삶으로 이등분하는 개념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잘못된 계산에 불과하다.
인생에 있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될 때를 생각해 보자.
항상 더 많은 시간이 집중적으로 필요해진다.
만약, 인생에서 어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특별한 순간에는 '칼퇴근'을 해도 부족할 수 있다.
반대로, 회사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열정적인 일이 생겼다면 정규 근무 시간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스스로 뭔가에 빠져서 몰입하고 있을 때는 밥을 먹어야 하는 <생활시간>을 거르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오로지 시간을 중심으로 이등분하는 균형이라는 것은, 그것이 무엇을 나누었든 간에 양쪽 모두를 애매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잘못 적용하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중단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따라서 '균형 잡힌 삶(balanced life)'이 오후 6시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이등분하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에게 삶이란 마치 자전거를 타는 것과 흡사하다.
때로는 오른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때로는 왼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자전거의 중심을 잡으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관점은 시간을 공평하게 이등분하는 <균형>이 아니라, 때로는 어느 한쪽에 시간을 집중하면서 좌우로 흔들리며 나아가는 <중심> 잡기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양쪽으로 기울면서 나아가는 자전거를 탔는데 자세가 정중앙으로 경직되면 어떻게 될까?
결국 자빠지게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 일과 삶이라는 이등분으로 정확하게 시간을 쪼갠다고 하면 분명 어느 한쪽도 온전히 성실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하기에 앞서,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인생이 자전거라서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리며 중심 잡기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 결국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향은 어디인가.
좌우로 흔들린다는 것은 방향이 있을 때만 성립하는 얘기다.
어느 날은 일에 집중을 하고, 어느 날은 삶에 집중을 하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방향이 없다면 좌 또는 우로 심하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방향이 없으면 일과 삶의 균형도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내 인생이 향하는 방향이 없다면 '일과 삶의 균형'을 말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심지어 인생의 방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으로 두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두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 순간 출퇴근 시간의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출퇴근 시간이란 '생존에 필요한 노동 시간'이겠지만 말이다.
인생의 방향을 갖고 있다면 출퇴근 시간만이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단정했던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일과 삶의 균형을 따지기에 앞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을 결정하고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생활시간>이나 <가용시간> 따위의 개념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공평하게 분배하기 어려운 '빈부의 격차'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시간이다.
문제는 우리가 24시간으로도 부족할 만큼 많은 일들을 해야 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늘 우리는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항상 있다.
다만 시간이 있다고 해서 모두 같은 시간은 아니다.
한 가지 더, 시간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느 한순간이라도 뭔가에 몰입해 본 적이 있는가.
자산의 삶에서 성공과 행복을 배제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뭔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체험이다. 그리고 그 어떤 시간보다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하지만 몰입하는 순간에는 시간에 대한 자각이 없다.
나에게 시간이 많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 나의 시간은 아니다.
내가 뭔가에 몰입하여 시간을 잊을 때에만,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