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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Feb 02. 2020

진실은 이야기 뒤에 숨는다

이야기에 대한 딴생각

우리는 항상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믿은 적이 있는가. 일곱 살까지는 믿었던 것 같다. 때묻지 않고 순수했던 그 시절엔 판타지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었다. 혹시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못 받을까 봐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다짐했었고, 어쩌다 내가 엇나갈 때면 엄마는 늘 산타클로스 레퍼토리로 나를 겁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유치원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드디어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어린이가 그랬듯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산타 할아버지의 하얀 콧수염 위로 보이는 눈웃음과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문방구 아저씨였다. 이야기가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일곱 살 난 아이에게 동심 파괴란 가혹한 일이었다. 그의 일곱 평생을 바친 '산타의 진실'이 고작 문방구 아저씨였다니, 차라리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산수도 배우고 과학도 배워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눈을 떴더라면 자연스럽게 깨달았을 것을, 지적 걸음마가 무르익기도 전에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반응이란 엄마를 바라보는 분노에 찬 눈빛과 서러움과 참담함이었다. 그리고 터져버린 눈물이었다.


그렇게 상처받은 아이는 뒤늦게나마 세상의 이치를 배운다. 유니세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챙겨줘야 할 어린이가 전 세계적으로 22억 명이나 되는데, 그중에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를 제외한다고 해도 약 4억 명의 어린이가 산타의 선물을 기다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산타 할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이브 단 하룻밤 동안에 4억 명의 어린이에게 선물을 배달해야 하는데, 그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하는 극한 노동이며,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마켓 컬리의 최첨단 새벽 배송을 이용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적 믿었던 이야기야 엄마를 탓할 일이지만, 어른이 돼서도 믿는 이야기는 누구를 탓해야 할까? 베스트셀러 <여행의 이유> 김영하 작가도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동설'이 아니라 이야기를 중심으로 도는 '설동설'이라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원시 인류의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밝히면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란 '이야기하는 동물'이었다고.


현실을 직시하는 어른이 되더라도 증권가의 지라시는 그렇게 철석같이 믿는다. 연애계의 각종 가십거리엔 본인들 의견을 섞어 루머를 생산하기도 하고, 정치계의 뻔한 레퍼토리엔 지역감정과 파벌을 섞어 선동질에 앞장서기도 한다. 회사에선 조직개편이나 승진 인사가 발표 나기도 전에 어김없이 각종 하마평과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결국, 어른이 되어 '동화'는 피해 갈 수 있을지언정 '동화 같은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은 피해 가지 못한다.


스토리텔링의 사전적 의미는 '이야기하기'이다. 구어적으로는 '거짓말하기'란 뜻이 있다. 따라서 '이야기=거짓말'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그 또한 거짓말이며 오히려 그럴싸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기만하고 현실도 외면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큰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진실이란 골치 아픈 일이다. 그 진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것은 공포에 가깝다. 정치적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가끔은 진실을 가리는 허구적 이야기가 대중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믿게 할 수 있을까?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사제와 무당들은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의식(儀式) 이었다.


의식이란 기묘한 일을 현실화하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제를 어떤 이야기로 덮은 다음 정성을 다하는 행동 양식이다. 가령 옛날에는 하늘에서 돌덩어리가 떨어지면 그것이 신의 분노라며 두려워했다. 그게 유성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이니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제사 의식이 만들어졌다. 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면 '기우제'로 의식을 치렀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다면 인디언식 기우제처럼 비가 올 때까지 의식을 치르는 것도 방법이었다. 어쨌든 하늘에서 돌이 떨어지거나 비가 오지 않는 문제는 국가 의례와 의식이라는 방법으로 통제해야지 신의 뜻이나 천재지변으로 두기엔 민심을 달래기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공자만큼 의식의 중요성을 잘 이해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의례를 엄격히 준수하는 것이 사회가 조화를 이루고 정치가 안정을 얻는 열쇠라고 봤다. 공자가 쓴 <예기>와 <주례>, <의례> 같은 고전을 보면 국가 의식에서 따라야 할 절차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심지어 의식에 사용되는 그릇의 수와 악기 종류와 참가자 의복의 색상까지 나열되어 있다. 이는 모든 문제의 정치적 해법을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 중국에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유학자들은 곧장 의례를 소홀히 한 탓으로 돌리곤 했으니까 말이다. 이것은 마치 군대가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주임원사가 그 원인을 군기 빠진 병사들이 군화에 광을 내지 않은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돌이켜 봤을 때, 우리는 이런 의식들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서 벗어났으며 현대적인 대중들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얄팍한 술법임을 안다. 하지만 그 옛날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공자는 우매한 인간의 본성을 깊이 꿰뚫어 보고 내린 탁월한 비책이었다. 그 당시에 진실이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으며 때론 의식(意識)이 없는 대중들을 의식(儀式) 속으로 가둬야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런 정치적 허위의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중이 똑똑해진 만큼 정치적인 수단도 진화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하는 기우제를 '정치공학'이라고 부른다. 비가 안 온다면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지만 오늘날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예컨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와중에도 다가올 총선을 대비해 바이러스를 자양분 삼아 민심을 움직이려는 정당과 후보들의 정치공학이 꿈틀거린다.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건강한 정책적 논의란 없다. 비방만 있을 뿐. 두 눈 뜨고 지켜볼 일이다. 그들도 섣불리 움직였다간 댓글이라는 칼날에 목이 베일 것이다.


기우제도 필요 없지만, 영웅도 필요 없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지성 있는 대중에게 공자는 필요 없다. 가당치 않은 언론 기사와 통계로 여론을 선동하는 정치공학도 이제는 한물간 느낌이다. 언론에서 쓰레기를 작성하는 '기레기'를 선별하는 일이란 상품평을 분석하고 쇼핑하는 것만큼이나 대중들에겐 쉬운 일이 돼버렸다. 옛날 같았으면 '남산의 부장들'이 출동할 일이지만, 때론 대통령도 비판하고 검찰총장도 비판하며 여야 모두를 비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건강한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항상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야기도 거짓이고 이야기를 바라는 마음도 거짓이다. 사실은 진실을 덮어두고 싶은 마음이 더 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나 둘 다.


엄마는 왜 어린아이에게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믿게 했을까? 착한 어린이로 성장하길 바랐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진실은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벅찼을 것이다. 엄마에게는 기우제가 필요했고 그것이 산타클로스였다. 반대로 어린아이도 모든 진실을 받아들이기엔 한계가 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있다. 그건 그 사람의 한계다. 그런 어른이라면 아직 산타클로스가 필요하다. 기우제도 필요하고, 정치공학으로 길들여야 한다. 조작 이야기를 직접 하거나 또는 듣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이야기는 '남 이야기'이고, 가장 힘든 이야기는 '내 이야기'이다.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가장 진실에 가깝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두렵기도 하다.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때, 비로소 진실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단연코 신화다. 신화 속의 신들은 하나같이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운명 우주의 삼라만상을 대변했다. 그래야만 했다. 진실은 너무나 멀고 그것을 마주한 사람들은 두려워만 했으니까. 보호 장치가 필요했다.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이야기하기'로 신화를 창조하고, 의식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고, 국가를 건설하고, 이념과 사상을 뒷받침했다. 간혹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호모 사피엔스니까. 이야기는 듣는 것이 아니라 뒤를 보는 것이다. 진실을 가린 이야기엔 음모가 있기 마련이다. 스토리텔링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의심'밖에 없다.


간혹 누군가가 통계로 우리를 속이려고 할 때, 숫자에는 진실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숫자는 단편적 현상만을 보여주니까. 혜안을 가진 자는 숫자의 뒤를 본다. 진실은 항상 숫자 너머에 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 진실은 이야기 뒤에 숨는다.






영감을 준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 유발 하라리 / 전병근 역 / 2018.09.03.

"바람에 나부끼는 천 조각이 국가다. 민족이란 은유일 뿐이다.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 404~466페이지

#스토리텔링 / 조은하 / 2006.05.15.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면 '거짓말'이다." - 4페이지


진실은 이야기 뒤에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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