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처음 맛본 와인은 텁텁했다. 아마도 그것은 레드와인이었고, 레드와인 특유의 타닌(Tannin)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타닌은 떫은맛이다. 초보 경험자에겐 '떫다'로 끝나지만, 와인의 맛을 좀 더 즐기게 되면 풍부한 맛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누구는 스모키 한 여운을 느끼기도 하고 누구는 풍부한 과실 향을 느끼기도 한다.
이 정도면 쉽게 이해가 될 만한데 그 이상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레드와인 중 'A 아리엔조 크리안사(A Arienzo Ciranza)'를 마신 한 남성은 맛을 음미하더니 아주 오래전 아침에 했던 키스가 떠올랐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에서 얼굴을 마주한 연인은 수줍은 듯 키스를 나눈다. 아무래도 입안이 불편할 테니 그것은 가벼운 입맞춤일 것이다. 그 느낌은 타닌처럼 건조하지만 바닐라 향도 배어 있다. 어쩌면 그녀가 자기 전에 바른 나이트 크림 향기가 기억났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A 아리엔조 크리안사에서 감도는 은은한 바닐라 향과 유사했을 것이다.
'오멘, 까베르네 쇼비뇽(Omen, Cabernet Sauvignon)'을 마신 한 여성은 그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담배를 피우는 멋진 슈트를 입은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와 키스를 나눈 느낌이라고. 이러한 맛의 표현은 복합적이다. 맛뿐만 아니라 느낌도 함축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과 연관 있어 보인다. 그것이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아니면 잠재된 욕망이든, 와인은 기억을 건드린다.
와인 전문가인 소믈리에라면 보다 구체적인 맛 표현을 해 줄지도 모르겠다. 프리울리언 레드와인 중에 '안티오 브로일로(Antico Broilo)'를 골랐을 때 이렇게 설명해 준 소믈리에가 있었다.
"바디가 풍성한 편이에요. 후추 향이 약간 느껴지고 돼지고기와 잘 어울립니다. 이 와인은 돌로마이트 지역 제품이라서 미네랄 맛이 날 거예요. 프랑스 보르도와 같은 위도에 있는 지역이라서 민트와 세이지 같은 허브 향취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와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반드시 초보자를 이해하기 쉽게 해주는 건 아니다. 사실 위와 같은 설명에서 나는 어느 한 부분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소믈리에의 지식과 나의 경험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리 아침에 한 키스처럼 어떤 경험에 대한 표현이라든가 나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설명이었다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만으로도 그 와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을 것이다.
담배 피우는 멋진 슈트를 입은 남자와 키스해 보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치도 없지만 '오멘, 까베르네 쇼비뇽'을 마셔 보았다. 한 모금 입에 넣어 어금니로 보낸다. 어금니 주변의 침샘을 자극한 타닌이 입안을 더 강하게 조여온다. 와인은 어금니로 마셔야 침샘이 제대로 터지고 풍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셔보니 그 여성이 말한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처음엔 거칠고 묵직한 질감이더니 다크초콜릿이 연상되면서 마지막엔 가죽 향이 느껴졌다. 확실히 그것은 남자의 것이었다. 느낌은 비슷했지만 나의 상상력이 그 여성과 동일할 순 없다. 다행히 담배 피우는 멋진 슈트를 입은 남자와 키스를 나눈 기분은 아니었고 뭔가 귀여운 짐승의 비린내가 스쳐 지나간 기분이었다.
사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의 종류는 제한적이다. 기본적으로 네 가지 맛이 있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이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론>에서 이 네 가지 맛을 처음 정리한 이후에 무려 2,000년 동안 새로운 맛은 단 하나도 없었다. 20세기 들어서야 우마미(umami)라고 하는 새로운 맛이 정의되었는데, 그것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감칠맛'이라 한다. 인간의 혀가 느낄 수 있는 맛은 지금까지 이 다섯 가지 밖에 없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매운맛이나 떫은맛이라는 표현은 사실 혀의 미각세포가 느끼는 맛이 아니라 통증으로 느끼는 피부감각이다. 그리고 우리가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감기에 걸리면 코가 막힐 뿐인데 음식 맛을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도 사실은 후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와인을 감상할 때도 후각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닐라향, 민트향, 다크초콜릿향, 스모키한 느낌, 어떤 비린내 등 와인에서 느껴지는 맛의 표현도 대부분 '맛'이 아니라 '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인간은 맛보다 향에 민감한 존재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도 향이 없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방이 콘크리트로 갇힌 곳에서도 향을 느낄 수 있다. 이사를 가면 아무것도 없는 새집이라도 그 냄새를 감지한다. 마른 바닥에 비가 내려도 땅의 내음을 느끼며, 좋은 향기를 지닌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져도 그 사람의 향기는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어떤 향은 우리의 기억을 끄집어 내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아침을 침대에서 마주한 누군가의 수줍은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래전 그 사람이 피우던 담배와 슈트와 향수가 복합적인 냄새로 기억나기도 한다. 무향 무취의 공간이란 없다. 더불어 무향 무취의 시간도 없다.
새해를 맞아 와인을 공부해 보기로 했다. 인사동에 새롭게 오픈한 목시호텔 루프탑에서 소믈리에 전요한님을 만났다. 그가 엄선한 와인 5병을 함께 모인 사람들이 시음도 하고 지식도 배우는 와인 클래스에 참석했다. 와인 지식을 배우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와인을 마신 후 감성적 소감을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부르고뉴 샤르도네(Bourgogne Chardonnay)'를 마신 누군가는 '바람의 향기'가 떠오른다고 했다. 아마도 그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불었던 바람 냄새가 스쳐갔는지도 모르겠다. '산타 바바라 카운티 샤르도네(Santa Barbara County Chardonnay)를 마셔 본 나는 '도도한 어떤 여자'가 떠올랐다. 기억은 논리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왜 그 사람이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와인을 좋아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소믈리에 전요한님이 좋은 와인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오래된 와인이라고 좋은 와인은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좋은 와인과 좋은 사람이 오래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오래된 사람이라고 무조건 좋은 사람일 리 없다. 좋은 사람이 내곁에 오래 머무는 건 단순히 오래된 관계와 전혀 다른 일이다. 그것은 좋은 와인을 오래 간직한 것처럼 귀한 일이다. 집에서 혼자 마셔볼 요량으로 레드와인 '샤또 딸보(Chateau Talbot)'를 구입했다. 저녁 무렵, 조용히 혼자 남은 시간에 코르크 마게를 땄다. 그리고 와인 잔에 술을 따르는 순간, 또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마음이 설레었다.
와인을 한 모금 입에 넣어 어금니로 보낸다. 침샘을 자극한 타닌이 미각과 후각을 지나 기억을 건드리기 시작한다. 나는 기억 속에 머문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어느 공간에 배인 냄새일지도 모르며, 어느 시간에 스며든 키스일지도 모르겠다. 무향 무취의 기억이란 없으니까. 만약 누군가가 왜 와인을 마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와인이 그리운 기억을 건드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