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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Mar 24. 2020

코로나 후에 다가오는 것들

봄바람을 맞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기다렸는지 알게 되었다.




"코로나19 후에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3월 20일, 10여 명의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받은 첫 질문이었다. 그동안 유쾌했던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뜬금없이 심각한 질문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어떤 견해를 밝히기에 그리 전문가적인 입장도 아니었다. 그 자리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마련하였고 나는 후원사 자격으로 참여해 스타트업 대표들을 위한 후원 사업을 설명해 주는 시간이었다. 물론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코로나 이후가 긍정적이지 않는다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었다.


세계를 덮친 코로나의 팬데믹, 주가 폭락, 유가 폭락, 출입국 금지로 인한 전 세계적 고립 현상, 비접촉-비대면의 일상화, 글로벌 경제가 앞으로 마이너스 성장할 거라는 각종 위기의 신호들, 그 어느 것 하나 긍정적으로 보이는 지표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다가올 일들이란 산업 생태계의 붕괴와 기업들의 파산, 구조조정, 아웃플레이스먼트의 증가와 같은 서슬 퍼런 이야기를 내 입에 담고야 말았다.


행사가 끝나고 밖을 나와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행사의 성격상 긍정적인 말로 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한숨이었다. 마침 그때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혹시나 싶어 스마트폰으로 달력을 확인해 보니 그날이 '춘분'이었다. 이미 세상은 봄바람 불고 따스한 기운이 스며드니 꽃 필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코로나 후에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봄바람을 맞고 나서야 무엇이 오길 기다리는지 알 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의 회복이 아니라 '일상의 회복'일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글로벌 경제가 2009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심각해졌기 때문은 아니다. 미국 다우지수가 폭락해서도 아니고, 국제 항공사들의 잇따른 '셧다운' 때문도 아니며, 이런 와중에 미사일을 쏴대는 북한 김정은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냥 어느샌가 날아가 버린 소소한 일상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한 번도 크게 바란 적이 없었던 들이쉬고 내쉬는 한숨만큼이나 하찮았던 '일상의 호흡'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를 예측한다고 해도 우리가 얼마나 예측할 수 있을까? 지난번 인공지능(AI) 강연회에서 만났던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데이터라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분석할 수 있는 데이터는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세요? 아마 10%도 안될 거예요. 왜냐하면 나머지는 정량화하거나 계산할 수가 없는 성질이거든요." 즉, 우리가 분석해서 알 수 있는 세상이란 10%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코로나 이후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고 한들 10%의 영양가도 없는 소리 나 다름없다.


간혹 우리는 알고 있다고 믿는 것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자신의 투자 비법을 남들에게 알려준다고 해도 10%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나머지 90%는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를 얼마나 사랑해?"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적이 있는가. 아마도 당신이 할 수 있는 대답이란 진실의 10%에도 못 미치는 매우 궁색한 답변일 것이다.


나머지 90%가 당신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 90%가 워런 버핏이 설명할 수 없는 진짜 부자가 되는 방법이며, 그 90%가 인공지능조차 예측할 수 없는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계산하기 어려운 미지의 영역에 해당한다. 나는 그 90%가 우리가 경제에만 정신이 팔려 놓쳐버린 아주 사소한 '일상의 호흡'과도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지 느껴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랑의 크기는 일상 속에서만 가늠할 수 있기에, 그 사람을 잃고 나서야 그가 없는 일상이 얼마나 공허한 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비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듣고,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 순간을 맛본다.' 영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에서 묘사해 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의 정취다. 작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무척 심심하다고 느꼈었는데 그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새삼 크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먹고사는 일도 등한시할 수는 없다. 일상의 호흡만큼이나 경제도 호흡해야 할 테니까.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 피해가 크지 않았던 이유는 사실 경제 주체인 기업들 공이 컸다. 하루 최대 2만 명의 코로나 검사 능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씨젠'과 같은 기업 덕분이었다. 씨젠은 일찌감치 이러한 사태를 대비해 확진자가 나오기도 전에 진단 키트 개발에 착수했고 대량생산까지 성공시켰다. '씨젠' 뿐만 아니라 '코젠', '셀트리온'과 같은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대한민국도 유럽이나 미국처럼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우리나라 기업들의 선견지명과 기술혁신 그리고 추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씨젠'도 처음엔 작은 벤처기업에서 시작했다. 내가 만났던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과 다를 바가 없다. 지난 3월 20일, 봄바람 불던 그날에 만났던 청년 스타트업 대표들이 앞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어 나갈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어쩌면 우리가 전망할 수 있는 그 어떤 경제 지표보다 그들의 존재 가치가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하루빨리 일상이 복원되길 희망한다. 일상의 복원이란 일상이 가진 원래 의미를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입술을 보며 가까이하는 일, 손을 내밀어 맞잡은 손의 체온을 느끼는 일, 사회적 거리를 좁혀 보다 가까운 관계가 되는 일, 지금은 그랬다간 위험천만한 일이 돼버렸지만 원래는 그것이 행복해야 마땅한 일상적 의미가 아니었나.


코로나 후에 다가오는 일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오는 일이 되기를,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워지는 일이 되기를, 사회적 거리두기만큼 벌어진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되기를, 그런 일들이 먼저 다가오기를, 불어오는 봄바람에 내 마음 담아 따스한 온기를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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