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행복은 U자 곡선을 그리는데,
그 U자 곡선의 가장 밑바닥 지점이 40대 중반이라고 한다.
어느 은퇴한 호텔 경영자가 에어비앤비의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를 만났다. 체스키는 그에게 에어비앤비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했다. 그 은퇴한 호텔 경영자란 칩 콘리였으며 당시 52세였다.
칩 콘리는 이 제안이 두근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겁이 났다. 사실 그는 에어비앤비가 뭐 하는 기업인지도 잘 몰랐다. 당시는 2013년이었고 에어비앤비는 IT기업에 가까운 모습이었는데, 콘리는 IT에 대한 지식도 부족했고 그들이 말하는 공유경제가 뭔지도 몰랐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였으며, 젊음과 코딩의 산물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런 이유가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콘리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는 파트타이머로 입사하게 된다.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결말은 예측하기가 쉽다. 마치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보여준 해피엔딩처럼 말이다. 입사 후 몇 주가 지났을 무렵, 콘리는 일주일에 15시간이 아니라 하루에 15시간씩일을 해도 모자란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그러자 체스키는 그에게 글로벌 전략 책임자라는 묵직한 직함을 주었다. 주 15시간 파트타임에서 상근직 임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령화 시대에 중장년 일자리를 만들어 준 훈훈한 사례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엔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체스키는 왜 하필 은퇴한 호텔 경영자를 데려왔을까? 왜 자신보다 21살이나 많고 직원들의 평균 연령보다 두 배나 많은 사람을 채용했을까?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1년에 수백 퍼센트씩 성장하는 회사에서 31세의 CEO가 24세의 부하직원들과 일을 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5명이었던 회사가 50명이 되고 어느 날 갑자기 5,000명을 넘어선다면, 젊은 CEO는 갑자기 어떤 기분이 들까?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처럼 회사가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그때야 비로소 젊음과 코딩이 아닌 경험과 지혜를 찾게 된다. 그것이 브라이언 체스키가 가진 고민이었으며 칩 콘리를 찾은 배경이었다.
수많은 국가에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비즈니스의 세대교체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전체 근로자의 평균연령은 42세라고 하지만, 유니콘 기업 설립자들의 평균연령은 31세다. 모든 업종에서 디지털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CEO의 평균 연령은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처럼 거꾸로 흐르며 30대로 내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20~30대의 젊은 창업자가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나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 사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얼마 전 미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Age and High-Growth Entrepreneurship)에 따르면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의 나이는 20~30대가 아니라 40~50대였다. 20~30대는 실패한 스타트업이 많은 나이였다. 이 연구팀은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미국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의 창업자 27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성공의 기준이란 매출, 고용률, 합병이나 주식상장을 통한 '엑싯(Exit)'을 지표로 삼아 분석했는데,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평균 나이는 41.9세였으며, 그중 상위 0.1%의 고속 성장을 이룬 창업자들의 평균 나이는 45세였다고 한다. (창업을 시작했을 때의 나이를 기준으로 함)
또한 이 연구는 40대 이상의 창업자가 성공적으로 ‘엑싯 (M&A 혹은 IPO)’을 이룰 확률이 20대의 창업자보다 높다는 결과도 제시하였다. 특히, 50대의 창업자는 30대 창업자보다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킬 가능성이 1.8배 이상 높은 반면, 20대 창업자는 성공적으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가능성이 가장 낮은 나이대로 집계되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젊은 창업자가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젊은 시절의 빌 게이츠가 워렌 버핏을 찾아갔고 마크 주커버그가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던 일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일터의 현자'를 찾는 일이다.
2007년 10월, 브라이언 체스키가 조 게비아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에어비앤비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집에 매트리스 3개 깔아놓고 시작했던 일이 전 세계 400만 명의 손님을 모시게 되었을 때(2013년 쯤), 그들의 사업이 단순한 '공유 주택(home sharing)' 사업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에어비앤비를 찾은 고객에게 더 의미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고 그 서비스의 구체적인 의미가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 환대를 고객에게 어떻게 제공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환대 사업'의 경험자, '주아 드 비브르 호스피탈리티(Joie de Vivre Hospitality)'의 CEO로 재직하면서 50개가 넘는 부티크 호텔을 총괄했던 사람, 그가 바로 칩 콘리였다. 물론 경험자라고 해서 모두가 이로운 것은 아니다. 체스키에게 필요한 사람은 과거의 환대 사업을 에어비앤비에 맞게 구현할 수 있는 '일터의 현자'가 필요한 것이지, 구식 환대 사업을 고집할 '일터의 꼰대'는 아니었다. 현자와 꼰대는 한 끗 차이일지도 모른다. 그 불안한 경계에서 칩 콘리는 한 끗 차이의 정수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멘턴(멘토+인턴)'이라는 새로운 역할이었다.
그는 젊은 CEO에게 호스피탈리티를 조언해 주는 멘토이면서 동시에 그들에게서 '공유 경제'를 배우는 인턴 역할을 자처했다. 콘리는 그들의 의사결정을 간섭하는 '참견인'이라기보단 옆에 서 있는 '안내인'에 가까웠으며 그것은 마치 밀레니얼 세대들을 관찰하며 새로운 문화를 함께 탐험하는 '문화인류학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칩 콘리는 그런 자신을 멘토와 인턴을 합쳐 '멘턴'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물론 멘턴이 되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리 경험자라 해도 그것은 또 다른 경력의 과도기를 거치는 일이며, 새로운 정체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콘리는 에어비앤비에서 멘턴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과정과 새로운 세컨드 커리어의 가능성을 책으로 엮기도 했다. 그 책이 바로 '일터의 현자(Wisdom at Work)'다.
칩 콘리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멘턴이라는 정체성을 발견하고 ‘일터의 현자’가 되었지만, 국내에서는 이를 양성하는 전문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멘턴을 양성하는 이른바 ‘멘턴살롱’이다. 일터의 현자처럼 새로운 세컨드 커리어를 희망하는 40대 이상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며, 특이한 점은 이 프로그램을 수료한 사람들을 채용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이 연계된 채용 연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멘턴살롱’은 국내 300여 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4차 산업 전문훈련기관인 삼성 멀티캠퍼스가 함께 만든 이른바 ‘멘턴 양성 프로그램’이다. 총 8주에 걸쳐 30시간의 교육이 이루어지며, 칩 콘리가 에어비앤비에서 겪은 시행착오에 착안하여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멘턴으로서의 마인드셋과 역할을 학습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미 작년 10월에 시작하여 1기 수료생을 배출하였고, 2기는 다가오는 3월 16일부터 시작된다(모집기간 : 2/1 ~ 3/5까지).
행복에 관한 거의 모든 연구에 따르면, 살아가면서 행복은 U자 곡선을 그리는데 그 U자 곡선의 가장 밑바닥 지점이 40대 중반이라고 한다. 직장과 결혼, 인생이라는 것이 가장 익숙해지는 시기에 공교롭게도 행복은 가장 낮아지게 된다. 무언가를 욕망하며 사는 삶이란 다른 의미의 행복을 갉아먹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꿈도, 이상도, 사랑도 모두 내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밖에서 찾는 삶이란 언제나 목마를 뿐이다.
그동안 U자 곡선의 왼쪽을 살아왔다면 앞으로 오른쪽을 바라봐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제 행복 곡선이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는 것. 한편 그것은 삶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리는 일이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나의 '세컨드 커리어’를 고민하게 된다. 당신의 터닝포인트가 될 세컨드 커리어는 무엇인가.
'일터의 현자'라는 세컨드 커리어
- 딴생각 89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