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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생각 Jan 09. 2021

코로나가 가져온 세컨드 라이프


은퇴 또는 퇴직 후에 새로운 경력을 준비하는 전직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전직 지원이라는 표현은 너무 오래된 느낌이어서 ‘세컨드 라이프’라는 표현을 나는 더 선호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세컨드 라이프’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선택을 하기보단 예측에 의존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측은 늘 빗나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미 예측하지 못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바로 코로나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세컨드 라이프’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기업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무려 314개 기업을 만날 수 있었다.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일 년 내내 코로나가 만들어 버린 비대면 세상에서 의외로 많은 기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방역수칙을 위반하거나 거리 두기를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방역수칙을 잘 지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비즈니스 판을 바꿔 버렸다. 기업 간 거래라든지 계약 체결을 하려면 명함을 주고받고 테이블에 마주 앉아 비말을 튀겨가며 협상을 진행하는 게 당연한 관행이었다. 이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처리하려면 일 년 365일 동안 314개 기업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물리적 이동 거리와 그에 따른 절차가 제약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절차를 간소화했다. 화상회의와 같은 비대면 미팅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작 하고 보니 비즈니스의 본질에 더 빨리 다가가게 해주었다.


이제는 악수 한 번 하지 않고 거래를 한다든지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 낯설지 않다. 팬데믹 세상에서는 언택트가 상식처럼 돼버렸다. 덕분에 시간이 절약되었다. 불필요한 이동이 사라져 하루에도 여러 개의 기업과 미팅을 할 수 있다. 교통수단도 필요 없으니 비용이 절감되었다. 한 번은 70여 개 기업을 초청하는 행사를 마련했는데, 이것 역시 비대면 영상 송출 방식(유튜브)으로 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행사를 할 때보다 10분의 1의 비용 절감 효과가 발생했다. 어쩌면 수백 년을 이어온 ‘거마비’라는 관행이 드디어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이러스가 바꿔버린 관행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한 대학 연구소에서는 코로나 이후에 해외 미팅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해외 대학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하려면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다녀오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는데 이제는 그런 일들이 온라인으로 대체되면서 수많은 국가와 공동 작업이 더 활발해졌다고 한다. 더군다나 항공료와 숙박비가 필요 없으니 더 많은 교류가 제약되지 않게 되었다.


교육계는 ‘온라인 개학’이라고 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선택한 온라인 교육이었지만 정작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알고 보면 그들은 ‘인강’이라는 학습 방식에 이미 익숙한 세대다. 그들에게 ‘비대면 수업’이란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며 그동안 기성의 고리타분함에 머물렀던 교육이 이제서야 제대로 시대 변화를 만난 셈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비대면 수업이 보편화하면 드넓고 멋진 대학 캠퍼스는 갈수록 이용률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등록금이 비쌀 이유가 있을까? 교육비라고 하기엔 지금의 대학 등록금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미 지난 6월부터 등록금 갈등은 고조됐고 실제로 등록금 감면은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원격 수업이 보편화하면 굳이 우리나라 대학을 고집할 이유도 사라지게 된다.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 교수들이 원격 수업을 하는 마당에 한국의 SKY 대학을 고집할 이유는 무엇일까?


관행이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바꾸지 못했던 묵시적 규칙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매일 코로나 확진자 수를 확인할 때마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것은 관행이었다. 그것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까지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바꿀 수 없었던 관행이 바뀌고 따라야 했던 전례를 따르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동안 시대를 움켜쥐고 있던 권위와 권력이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


인류 역사는 그렇게 서막을 열어 왔다. 아주 오래전 중세 시대를 끝낼 수 있었던 것도 혁명이 아니라 바이러스(흑사병)였다. 흑사병은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분기점이 되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 세상의 종말을 경험한 사람들은 영혼의 변화도 경험해야 했다. 바이러스는 인류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 인류를 각성하게 하였다. 결국 바이러스는 중세 종교의 권위와 봉건 제도의 권력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인간의 가치, 르네상스의 근본정신인 ‘휴머니즘’이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러자 중세 시대에 박해를 받았거나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변화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본주의자, 과학자, 기능공, 법률가, 개방적 성직자, 셰익스피어와 같은 보헤미안 극작가였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 그렇게 인간의 창조성이 부각되는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이러스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흑사병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인구 감소는 노동력의 가치를 중요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봉건 영주의 세력이 약화하면서 농노제가 무너지고 임금 노동자가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귀족이 아닌 계급이 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를 태동하게 하였다. 결국 바이러스는 르네상스와 자본주의 시대를 열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었다.


인류의 근대사만 놓고 보더라도 수많은 바이러스가 있었다. 천연두, 흑사병, 인플루엔자, 결핵, 페스트, 홍역, 콜레라, 스페인 독감, 신종플루, 에볼라, 메르스, 에이즈, 사스 등등 그럴 때마다 바이러스는 인류를 각성하게 하였고 각성한 인류는 그 시대의 권위와 권력에 맞서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갈림길에서 늘 중요한 선택을 해왔다. 그 선택이 다음 세대, 인류의 미래를 결정했다.


지난 19세기에도 인류사의 중요한 선택이 있었다. 그것은 석탄이 고갈되는 상황에서 대체 에너지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대안은 석유와 수소 둘 중 하나였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인류는 석유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지구의 온실가스를 위험 수준으로 만들었으며 이후에 벌어진 모든 지구 환경적 문제의 근원이 되었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선택 때문에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도 지구온난화, 에너지 고갈, 기후변화, 난민 문제, 금융위기, 고령화, 부동산 대책 등 수많은 문제가 난립한 상황에서 코로나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코로나 감금을 겪으며 새로운 각성의 시기를 맞이한 인류는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측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다.



퇴직 후의 삶 또는 이전과 다른 삶, ‘세컨드 라이프’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이전과 다른 삶, 세컨드 라이프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예전과 다르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예전과 다르게 공부를 하고 있으며 예전과 다르게 일상을 체험하고 있다. 언택트 세상은 이미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었으며 어쩌면 바이러스가 종식되더라도 모든 것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 가장 올바른 선택인가를 판단하고 그 선택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기간 동안 각성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그것이다. 예측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당신의 세컨드 라이프를 위해 가장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


이 글은 '중앙일보 [더오래]'에 아래 제목으로 기고 되었습니다.

중세 끝내고 르네상스 연 흑사병...코로나도 그럴까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068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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