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타령

어른 아이의 기저귀

by 오난난
aluminous-749358_1280.jpg 출처 jyleen21 in Pixbay

지난 일요일, 형부와 언니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아침식사는 영양가가 풍부한 전복 가자미 미역국과 집에 있는 반찬들이었다. 초장에 찍어먹을 다시마부터 시작해서 이모가 정성스레 담고 만들어 보내주신 김치들과 반찬으로 식탁이 비좁았다. 오순도순 둘러앉아 맛있게 아침을 먹고, 엄마와 동생은 식사를 마친 후 부랴부랴 가게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서둘러 나가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 예쁜 커피잔을 꺼내 각 취향대로 커피를 타서 거실로 가져갔다. 설탕이 두 스푼이나 들어간 커피는 할머니, 뜨거운 블랙커피는 아빠, 아이스커피는 형부, 한 잔의 국화 꿀차는 요즘 커피를 자제하고 있는 언니를 위한 차였다. 커피를 내가고 나서 일곱 식구가 먹은 설거지를 했다. 하도 설거지를 하다 보니 속도가 많이 빨라져서 이제 이 정도의 설거지는 일도 아니었다. 설거지 후에는 내 몫의 커피를 거실에 가져가서 함께 앉아 TV를 봤다. 그 식구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TV를 함께 보는 건 정말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고, 아침식사 후에 찾아온 평온한 시간이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가는데 아빠는 형부와 언니가 오랜만에 놀러 왔으니 다 함께 외식을 하고 싶은 눈치셨다. 몸이 편찮으신 할머니가 계시다 보니 외식을 한번 하려고 해도 메뉴 선정에서부터 앉아야 하는 자리, 음식점의 층수,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없는지 등 사소한 것들을 훨씬 더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나도 항상 예민해졌다.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할머니는 모든 것을 놓으신 듯 생각도 마음도 어린아이가 되셨다. 그 이후로는 다 함께 나가 외식을 하는 것이 더 편하지 않았다. 언니도 할머니나 나를 생각해서 그냥 집에서 시켜먹자고 했지만 오랜만에 온 두 사람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아빠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소고기를 먹느냐, 민어탕을 먹느냐, 소고기를 먹으면 어디서 먹느냐, 새로운 메뉴로 양고기는 어떠냐, 할머니는 고기를 드시면 속이 안 좋은데 그럼 딴 거를 먹어야 하냐, 메뉴 하나를 정하는데도 아주 한참이었다. 메뉴를 말할 때마다 퇴짜 아닌 퇴짜를 놓던 아빠는 갑자기 머쓱하셨는지 "그럼, 너희들이 이야기해서 정해봐 그냥 군소리 없이 거기로 따라갈게."라고 하셨다. 언니랑 형부랑 이야기하다가 며칠 전부터 고기가 먹고 싶었다는 언니 말에 소고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예전에 내가 가봤던 와규 집인데 집에서 거리도 가깝고 주차도 편하고 엘리베이터도 있고, 의자 테이블이라서 할머니도 앉기 편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커피 먹었던 컵까지 설거지해놓고 씻고 나와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아빠가 할머니가 기저귀를 하셨는지 확인하라고 하신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또 실랑이가 시작되겠구나 싶다. 나갈 때마다 기저귀 때문에 한 번씩 난리가 나는데 우리 할머니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 한 번도 기저귀를 순순히 차는 법이 없으시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외출에 신이 나셔서 벌써부터 마스크를 하시고 방에 앉아서 헉헉대고 계셨다.

medicine-5103043_1280.jpg 출처 Anastasia Gepp In Pixbay

더운 날씨에도 내복에 티를 하나 더 껴입으신 할머니는 제법 두툼한 재킷까지 꺼내드셨다. 언니가 깜짝 놀라 반팔을 찾아서 입으시라고 내놓는다. 언짢은 표정이 되신 할머니는 "팔을 다 내놓으라고 하는가 봐? 추워 죽으라고??" 하신다. 언니는 밖이 더워서 그런다고 알아들으시게 설명하지만 들으실 리가 없다. 또 젊은 우리와는 달리 항상 추워하시기 때문에 할머니 뜻대로 해드리는 게 서로 마음이 편하다. 얇은 속내의를 입혀 드리고, 여름 긴팔 티를 입혀드렸다. 이제야 표정이 좀 풀린다.

자, 이제 가장 높은 고개가 남았다. 일단 로션을 바르러 내 방에 들어가서 로션을 바르며 심기일전을 하고 다시 방을 나간다. 거실 소파에 할머니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앉으셔서 "빨리 가자, 얼른 가자" 하신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서 "할머니, 기저귀는 하셨을까요?"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단번에 표정이 변하시며 역정을 내시는 할머니.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아무 소리 말고 그냥 가. 할머니 아직 그 정도 아니여." 당연히 한 번에 알겠다고 하실 리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한번 더 말한다.

baby-19534_640.jpg 출처 PublicDomainPictures in Pixbay

"응, 할머니 근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 가요. 아빠도 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래야 할머니 마음도 편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 목소리가 더 커진다. "내가 괜찮다고 했지? 어?? 괜찮다면 괜찮은 줄 알지 뭘 자꾸 하라고 지랄들이여 지랄이." 말을 끝으로 눈을 흘기며 육 두 문자를 마구 날리신다. 데자뷔처럼 매번 반복되는 이 상황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가 않지만 나도 이대로는 물러설 수가 없다. "할머니, 온 식구들이 걱정해서 내가 대표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빠가 해야 된다고 하잖아. 그리고 할머니도 그래야 마음이 편하시잖아요." 있는 대로 화가 난 할머니는 그럼 나는 안 갈 테니 갔다 오라고 하신다. "그려, 그럼 그냥 나는 안가. 니들이 편하려면 내가 안 가는 게 맞지, 나 안 갈 테니까 니들끼리 갔다 와." 그 뒤에도 육 두 문자가 붙는다.

smiley-1274747_1280.jpg 출처 Alexas_Fotos in Pixbay

"할머니가 안 가시면 다 안 가지. 다 같이 가자고 하는 건데, 가서 할머니 마음 편하라고 이야기하는 건데 이게 지금 할머니가 나한테 이렇게 화낼 일이에요? 응?? 아빠는 계속 나한테 할머니 기저귀 하시라고 이야기하라고 하고, 응? 내가 뭐 동네북인가?? 그럼 다 가지 마요!!" 정색하며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온다. 저번에도 괜찮다고 우기시는 통에 그냥 나갔다가 할머니가 의자에 그냥 볼일을 보셔서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 먹고 나온 음식점 바깥에 있는 의자에서 그러셔서 차에 깔만한 것을 찾아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었다. 정색하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는다. 그냥 진이 조금 빠질 뿐. 언니랑 형부도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했었나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방에 들어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라 앉힌다. 언니가 안방에서 나와 그냥 집에서 시켜먹자고 한다. 다들 좋자고 하는 건데 매번 이렇게 힘드니 안 하느니 못하다 생각하는 거겠지. 어쩔 수 없이 단호하게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구십 평생 살아오신 할머니의 뜻을 손녀인 내가 어떻게 꺾고 거스를 수 있을까 싶다. 방에 나와서 할머니 방을 쳐다보니 조그마한 가방을 하나 더 꺼내놓으셨는데, 들어가서 뭐냐고 물어보며 가방을 열어보니 안에는 속옷이 들었다. 혹시 몰라서 챙겼다고 하신다. 하, 이럴 바에야 기저귀를 하시는 게 낫지 않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킨다. 할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의자에 깔고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챙겼다. 나갈 생각에 신난 할머니는 지팡이를 챙겨 앞장서신다. 사람이 다섯이라 형부 차 하나로 움직이기로 해서 형부 차에 타서 출발하려니 할머니가 "이 차는 누구 차여? 형부 차여?" 한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때부터 불안하신지, "아이고, 내가 이 차를 타면 안 되는데 뭣도 모르고 그냥 나왔구나." 하신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내내 좌불안석이다. 나는 그냥 웃으며, 제발 오늘은 그런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는 수밖에. 아빠가 양념된 고기보다는 생고기가 좋다고 하셔서 아빠가 가자고 하신 곳으로 출발했다. 가까운 거리라 금방 도착해서 가게로 들어서니 고기를 사서 구워 먹는 정육식당인데 규모가 꽤 크고 깔끔하다. 할머니와 나는 먼저 식당 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고, 아빠와 형부, 언니가 고기를 사 오기로 했다. 문과 화장실이 가까운 자리에 앉아서 수저랑 젓가락을 놓고 있으려니 인원수를 물어보시 고상을 차려 주셨다. 조금 있으려니 고기와 버섯을 사서 세 사람이 들어온다. 확실히 고기가 엄청 신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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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와 언니가 옆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고 아빠가 나한테 할머니를 챙기라 하신다. 말은 나한테 챙기라 했지만, 명이 나물이며, 고기를 할머니 그릇에 계속 넣어드리는 아들이다. 고기를 접시에 놓는 족족 집어 드시기 때문에 적당히 속도를 조절해서 놔드려야 한다. 스스로 잘 제어가 안되시는데 많이 드시고 나면 소화가 되지 않아 꼭 탈이 나고 며칠을 고생하시기 때문이다. 셀프바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된장국과 선짓국을 퍼 나르며 열심히 고기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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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잘 드시니 아빠는 아주 흡족한 표정이시다. 나도 그냥 다 내려놓고 열심히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아침부터 진이 빠져서 그런지 양껏 먹지 못했다. 한참 드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나 화장실, 화장실 하신다. 얼른 일어나서 할머니를 모시고 화장실로 향한다. 할머니는 칸에 들어가시며 먼저 자리에 가 있으라 하신다. 알겠다고 대답하며 화장실 앞에 서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한참 뒤에 나오신 할머니는 안 가고 기다렸냐며 홀가분한 표정이시다. 여태껏 함께 긴장하고 있던 나도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고기를 맛있게 먹고 아무 일도 없이 무사 귀환했다. 식사 후에 들리는 커피숍은 생략하고 집에 가서 마시기로 했다. 할머니가 바짝 긴장을 하고 계셨는지 실수를 안 하시고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가자미 눈이 되어 육두문자를 날리실 때는 조금 속상했지만 아무 일도 없이 집으로 왔으니 죄송한 마음이다.

앞으로도 기저귀 타령은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할 때마다 계속되겠지만, 그렇게 실수를 하실 때마다 제일 속상한 사람이 할머니시고, 그 자괴감이나 슬픔의 여파가 할머니를 꽤 오랫동안 힘들게 함을 알고 있는 손녀의 걱정이 기저귀 타령으로 이어짐을 할머니가 언젠가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알아주시지 않으셔도 좋으니 지금처럼만, 더 아프시지 말고 우리 곁에 좀 더 머물러 주시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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