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하나 건사하기가 어렵다.
오늘 새벽 이른 시간 누가 자꾸 이름을 부르길래
꿈인지 생시인지 헤매다가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머니의 목소리가 닫힌 방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다. 그냥 이름만 불렀다가, 성을 붙여 불렀다가 너무 애타게 부르시기에 서둘러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가서 보니 할머니가 화장실 문턱에 걸터앉아 있으신데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얼굴빛은 하얗고 기운도 하나도 없고, 내가 나왔는데도 내 얼굴을 보며 계속 내 이름을 부르신다.
바지는 입은 것도 아니고 벗은 것도 아닌 것이 애매하게 허벅지에 걸쳐져 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괜찮으세요?"
"아이고, 몰러, 여기가 너무 아파, 어깨가, 팔이..안 움직여. 아이고.. 나 왜 이래.."
정신도 없고 기운이 없으신지 제대로 말씀을
못하신다. 여태껏 내 이름을 부르느라 기운을 쥐어짜셨던 건가 싶다.
기상시간도 아닌 이른 새벽에 잠을 깨며 올라오던 짜증스러운 마음이 금세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바뀐다.
천천히 그리고 크게 다시 여쭤보고 들어 보니, 화장실에 가려고 방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에 마루 바닥에 넘어져서 한참을 못 일어나셨다고 한다. 어떻게 겨우 화장실 문턱까지 왔는데 오른쪽 손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어서 나를 불렀다 하셨다.
변기를 보며 계속 저기에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하신다. 어떻게든 일으켜 세워 보려고 하는데 오른쪽 팔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시니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다. 어쩔 수 없이 곤히 잠들어있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 엄마, 잠깐만 일어나 봐."
안방에 들어가 소곤 거리며 엄마를 부르자 앓는
소리와 함께 엄마가 일어나 나온다.
"할머니가 넘어지셔서 오른쪽 어깨랑 팔을 못 쓰신다는데 화장실에 가야 한대, 근데 나 혼자는 도저히 못 일으키겠어. 엄마가 좀 도와줘."
엄마는 피곤함과 노곤함에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놀란 표정이 역력하다.
엄마랑 같이 양쪽에서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자 드디어 일어나셔서 변기에 앉으셨다. 넘어져서 한참을 계셨다는데도 실수를 안 하신 게 대단하시다 싶었다.
걱정스러운 맘에 엄마랑 나는 거실에서 할머니가 나오시기를 기다린다.
거실에 딸린 화장실은 현관문과 바로 마주 보고 있는데, 그 사이 유리로 된 중문이 있어 비친 할머니 모습이 보인다. 거실에 서서 할머니 괜찮으신가 계속 할머니를 보고 서 있노라니 엄마가 서있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신다. 혹시라도 혼자 나오시다 넘어질까 걱정스러워 한참을 보고 서 있는데 한쪽 손으로만 휴지를 뜯으시려니 쉽지 않으신지 그것조차 힘겨워 보인다. 가만히 앉아서 할머니가 잘하고 나오시기를 기다리는데 휴지를 뜯고 정리를 하고 나오시는 시간만 해도 한참이었다.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편히 할 수가 없는 까닭이겠지. 나오시려고 해서 부축하러 들어가니 옷을 좀 추켜달라고 하신다.
바지를 올려드리고 부축해서 나오니 물을 좀 달라고 하시길래 혹시 몰라 더운물을 좀 섞었더니 놀랐을 때는 찬물이라며 찬물을 가져다 달라하신다.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엄마에게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말하고, 더운물을 떠서 할머니 방에 들어가니 침대에 거의 널브러져 계신다. 어깨가 많이 아프신지 얼굴이 울상이다. 물을 좀 드시게 하고 우황청심원을 따서 드렸다. 힘겹게 물과 우황청심원을 드신 할머니가 지금이 몇 시인지 물어보셔서 시간을 확인하니 5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너무 아프다 하셔서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 여쭤보니 모르겠다고 그냥 너무 아프다고 하신다. 이 새벽에 어떻게 해 드려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주물러달라고 하시는데 손목이 너무 시큰거려 몇 번을 주무르다 말았다. 옷을 들쳐보니 어깨에 외상은 하나도 없는데 팔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아프다고 하시니 팔을 드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아쉬운 대로 파스 세 개를 이어 붙여서 어깨 쪽에 붙여 드리고 날 밝으면 병원에 가게 좀 자두시라고 말하고 방에 돌아와서 누웠다.
다시 잠을 좀 더 청하려는데 잠이 싹 달아났는지 토끼눈이 되려 말똥말똥하다. 어제도 잠이 안 와 한참을 뒤척였는데 이렇게 나의 아침은 와버렸는가 생각하며 괜한 피로감에 뒤척이다가, 6시에도 못 일어나는 내가 할머니 덕분에 5시가 되기도 전에 일어났으니 미라클 모닝인가 싶어 피식 웃었다.
어느새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뜨니 밖이 밝다. 눈이 자꾸 감기고 몸이 무거워서 일어날 수가 없는데 엄마가 나가면서 할머니께 "어머니 다녀올게요. 이따 꼭 아범이랑 병원 가셔요" 한다. 잠에서 깨지 못하고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아빠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밖에서는 빗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조금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나와보니 할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너무 아프다 하신다. 온열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할머니 어깨에 얹어 드렸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겸 나갔다가 반찬 가게에 들려 한우 소고기 미역국과 우뭇가사리를 사서 돌아왔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할머니가 어디 가냐고 물어보신다. 회사에 간다고 하니 "가면 언제 와? 깜깜해져야 와?" 그렇다고 대답하니 "아이고, 큰일 났네, 큰일 났어." 하신다.
나가야 될 시간이 임박해서 마음이 급했지만 국을 데우고 상을 차려 거실에 있는 아빠와 할머니를 부르고 나는 거의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그릇까지 씻어 엎어 높고 나왔다. 온열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방법을 아빠한테 전하며 오후에 요양보호사분 이 오시면 아프다 하실 때 한 번씩 얹어드리라고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 저 갔다 올게요. 이따가 아빠랑 병원에 잘 다녀오시고 잘 계셔요"하며 나오는데 할머니가 네가 수고가 많다면서 미안한 듯 웃으신다. 웃으며 답했지만 나오는 발걸음도 마음도 무거웠다.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병마와 싸우시는 동안
6남매를 먹여 살리셨고 젊었을 적에는 힘 좀 쓴다는 장정들이 한다는 일도 거뜬히 하셨다고 한다. 여자인 할머니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나 놀라고 여자가 어깨가 망가지며 못쓰니 그만하라고 했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아오신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그렇듯 먹고살기 위해 안 하는 일 없이 치열하게 살아오셨구나 싶었다. 고단하고 쉽지 않은 길을 걸어오셨을 할머니가 유난히 억척스럽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이 있으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젊으셨던 할머니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 너무 강하고 우리와는 생각이 너무 달라서 대화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냥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뭐든 혼자서도 다 척척 해내시고, 아닌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할머니 마음대로 하시니 그냥 내버려 두었다. 점차 가까워 지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사이는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작년 11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는 어린아이가 되셨고 그때부터는 온 식구가 할머니께 많은 신경과 관심을 쏟아야 했다. 처음 하는 경험에 너무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픈 할머니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요즘 들어 할머니를 보면 내 몸 늙는 것도 서러운데, 내 몸이 내 몸같이 움직여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 싶다. 때가 되면 먹어야 하니 먹기는 하지만 소화력도 떨어지고, 미각도 떨어져서 아주 센 간을 해야 그나마 느껴지고 시력도, 청력도, 치아도 모든 게 마음 같지가 않다. 걷는 걸음걸음도 천근만근이고 늦은 밤과 아침에는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통증이 배가 된다. 할머니 말대로 하자면 참 치사스럽고 더럽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겹쳐 보이는 할머니 모습들에서 괴로워하던 할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는 하루하루가 다르시고, 좋아지셨다가도 나빠지고, 나빠진 후에는 회복이 더디다.
할머니가 원하시는 것을 최대한 다 해드리고자 마음먹었지만 사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온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하는 것, 해드릴 수 있는 한 마음을 다하는 것, 밖에는 없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할머니와 있는 시간과 대화를 늘려보자고 다짐하는 오늘의 마음을 글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