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 먼지통 실종사건
작년 여름 8월 즈음이었다.
한여름이라 날이 무척 더웠지만 깔끔한 할머니는 여전히 집 청소를 자주 하셨다. 청소기가 불편하니 빗자루로 쓸고는 하셨는데, 넓은 거실부터 부엌까지만 청소해도 할머니는 쉽게 지치시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우리 집을 청소기로 한번 돌리고 나면 진이 다 빠진다. 할머니는 오죽하셨을까?
하지 마시라고 해도 소용이 없으니 그냥 두었다. 그 덕에 괜히 내가 청소기를 많이 돌려야 했는데, 퇴근 후에는 어림도 없고 주말에 해야 했다. 주말에는 나도 좀 쉬고 싶은데... 시무룩해지던 찰나 '그 물건'이 생각났다.
로봇 청소기를 하나 사면 되겠구나. 며칠을 검색하던 와중에 가성비 괜찮은 로봇청소기를 발견했고, 직구 사이트에서 쿠폰 사용으로 3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구매했다. 평도 많이 살펴봤는데, 그 많은 평을 요약하여 정리하자면 내 손으로 하는 것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였다. 밑져야 본전이다 라는 마음으로 할머니와 나를 청소에서 해방시켜 줄 청소기를 기다렸다. 대략 3주 후에 청소기가 도착했다.
당장 열어서 작동시켜 보고 싶었지만 며칠 바빠서 도착한 청소기를 열어보지 못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박스도 풀지 않고 내 방에 넣어놓은 그것이 내내 궁금해하셨다. 주말 아침, 드디어 개봉박두! 설명서를 열심히 보고 먼지통을 본체에 끼워 넣어 청소기를 작동시켰다. 각자 볼 일을 보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청소기 소리에 거실로 나오셔서는 두 분 다 소파에 앉으셔서 구경을 하시며 물으신다.
아니 시방 저게 뭐여? 뭔데 저렇게 온 집안을 돌아댕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두 분을 향해 나는 저건 로봇청소기라는 건데 라며 말문을 열었다.
할머니, 로봇청소기라는 건데 쟤는 혼자서 저렇게 돌아다니면서 청소해요. 벽이 있으면 알아서 멈추고 자기가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틈에는 들어가서 청소하고 나와요. 날도 더운데 할머니가 맨날 청소하시느라 힘들어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 샀어요.
할머니는 이내 함박웃음이시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면서도 돌아다니는 청소기에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 심지어 일어나서 그 아이를 따라다니며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치워주신다. 아이고, 친절한 할아버지.
처음에는 청소기를 따라다니시다, 나중에는 소파에 앉으셔서 눈으로 좇으신다.
근래 들어 건강이 많이 악화된 할아버지가 청소기 덕에 거실에 나와 바람을 쐬시는 거 같아 뿌듯하다.
청소기 앱을 깔고 똥글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동글이는 무언가에 부딪히면 알아서 잘 비껴가는 데, 거실에 놓은 빨래 건조대 다리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그곳에 걸려서 옴짝달싹을 못한다. 그러면 내 핸드폰 앱 알림이 울리며 자기를 구해달라고 한다. 이렇게 똑똑한 똥글이도 화장실로 들어가는 낮은 턱은 무시하고 자꾸 들어가서 청소 중에 화장실 문은 닫아놔야 하는구나 등 하나씩 깨달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여기저기 쏘다니던 청소기가 동생 방으로 들어가서는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먼지통을 열어보니 먼지통이 너무 꽉 차서 그랬던 것 같다. 동생은 침대 밑이 깨끗해졌다며 신나고 나는 동글이가 오자마자 저게 무슨 고생인가 싶고 그 안에서 너무 고생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랬다. 미안한 마음에 청소기를 뒤집어서 열심히 닦아주었다.
똥글이를 어디에 두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안방 한편 콘센트 가까이에 마련해주었다.
청소가 끝나고 나면 먼지통을 분리해서 먼지통을 비우고 필터를 세척한 후 잘 말려주어야 한다.
잘 말려놨다가 청소할 때 다시 끼워서 청소리를 작동시키는데, 당연히 먼지통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8월 마지막 주는 나의 여름휴가 주였고, 다낭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오후 비행기라서 아침에 청소기를 한번 더 돌리고 먼지통을 분리해서 세척한 후 말리려고 식탁에 올려놓고는 신나는 마음으로 공항
으로 향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몰랐다. 나의 이 행동으로 인해 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워질지...
조금은 피곤한 컨디션으로 출발한 다낭은 너무 더웠지만 때 되면 밥도 주고, 차도 주고, 과일도 주고, 커피도 주고(물론 돈을 줬을 때 이야기다. 나에겐 그저 천국이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에어컨 빵빵 나오는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와 수영장과 관광지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야속하게도 4박 5일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비행기는 우리의 아쉬움을 가득 싣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리무진 버스를 잡아타고 정류장에 내려 터벅터벅한 마음으로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작은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우르르 나오신다. 할아버지 건강이 많이 악화되셔서 병원에 가신단다.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해 드리고 집에 들어와 짐을 풀고 나서 좀 널브러져 있었다. 일상보다는 훨씬 더 많은 움직임이 있는 여행인지라 가 있을 때는 모르지만 집에 들어가니 몸이 노곤노곤 해진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나니 거실이 좀 더러운 것 같아서 똥글이를 찾아 작동시키는데 계속 "먼지통을 넣고 작동해주세요"라는 음성이 들린다. 커버를 열어보니 먼지통이 없어서 식탁 위를 살펴보니 없고, 거실장 위에도 없고, 부엌에도 없고, 내 방에도 없고, 안방에도 없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어디 갔지? 누가 다른 곳에 뒀나?
이따 동생 오면 물어볼까 싶다가 궁금해서 연락해서 먼지통 어디 있는지 모르냐고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이 불안하다. 얼마 뒤에 울리는 진동.. 카톡을 연 나는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임정희의 노래가 떠오른다.
아무리 찾아도 없는 먼지통에 분노 게이지가 올라간다. 그 전에도 이런저런 물건을 버리신 적은 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신상 로봇청소기는 말이 다를 수밖에.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모르겠다. 아무래도 분리수거하는 곳에 갔다 버리신 듯한데, 아파트에서는 분리수거 일이 끝났으니 업체에서 다 가져갔을 거다. 그저 망연자실 앉아있다가 인터넷을 켜고 먼지통만 파는지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다른 버전 먼지통들은 구매가 가능한데 내가 산 버전의 먼지통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 놓고 자기로 했다. 아, 이건 꿈일 거야. 꿈이야. 청소기를 겨우 서너 번 돌려봤는데? 먼지통이 없어서 청소기를 못 쓴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럼, 그렇고 말고. 자고 일어나면 먼지통이 다시 제 발로 찾아와 주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문득 눈을 떴는데 밖이 깜깜하다. 일어났는데 오전에 병원에 가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직도 돌 아오시 지를 않으셔서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러기를 잠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먼지통을 찾아온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먼지통은 찾지 못했다.
작은 아빠한테 언제 오시냐고 전화를 하니 할아버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서 입원을 하셨다고 했다. 온 식구들이 다 병원에 가서 할아버지 곁에 있단다. 조금만 더 있다가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오겠다고 하셨다.
그날이 2019년 8월 30일. 먼지통은 내 곁을 떠났고, 할아버지도 그 날 집을 떠나 끝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먼지통 하나쯤 없어진 건 어떻게 내 가슴이 받아들일 수 있다 치자,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돌아오시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한 치 앞도 모르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도대체 그걸 왜 버리셨을까? 어떻게 그걸 버릴 수 있지? 며칠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다. 로봇청소기만 봐도 화가 났었다.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언니에게도 하소연하고 푸념하며 그렇게 성질이 나있었다.
병마에 시달리던 할아버지는 추석 연휴에 겨우 외출을 허락받아 집에 오셔서 거실 소파에 앉으실 수 있었고, 온 식구들과 둘러앉아 진지도 잡수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셨다. 원래 누워서 주무시던 침대에 누워 설핏 낮잠도 주무셨다. 달콤한 반나절 후 할아버지는 다시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가시고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어린아이가 되셨고 나는 끝끝내 먼지통의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나한테 소중한 건 먼지통 따위가 아니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할아버지였고, 할아버지께 언성 높여 잔소리하시던 정정한 할머니였다.
몇 개월 뒤 언니네가 집에 왔는데 형부가 새 먼지통을 들고 왔다.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 없던 먼지통을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서 해외 직구로 구했다고 한다. 드디어 나는 다시 똥글이를 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똥글이를 따라다니며 구경하시던 할아버지는 우리 곁에 없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어찌나 가슴에 사무치던지. 언니네가 집으로 돌아가고 며칠 뒤 퇴근 후 똥글이를 돌려놓고는 눈물이 나서 혼자 울었다. 이제는 조금 덤덤해져서 똥글이를 봐도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똥글이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뭐든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없듯이 하필이면 그 날 먼지통이 사라졌던 건, 조금 더 할아버지 생각을 해 달라는, 그리고 홀로 남은 할머니를 잘 챙겨달라는 하늘의 뜻은 아니었을까?
할아버지가 가시던 날도 비가 내렸다. 오늘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니 할아버지 생각이 한가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