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2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소 대장이 일반 사병들을 물리고 간부급의 병사들만 남겨서 운을 띄운다.


“상황을 보아하니 우리도 남쪽으로 내려가서 본대와 만나야 한다. 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여기에 있다가는 다 같이 죽는 거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으름장 놓으려고 거짓을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소대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모두들 이러한 상황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던 사실이 진실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경직된 부대원들의 표정을 말없이 바라보던 소대장이 말을 잇는다.


“ 오늘 자정에 바로 출발한다. 지금부터 모든 군장 및 총기류 확인하여 이동 시 문제없도록 조치하도록.”


부대원들이 비장하게 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소대장이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연다


“아, 그리고 저 무장군인들은 처리하고 출발한다.”


대략 스무 개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서로 마주친다. 짐작했다는 듯 소대장이 한번 더 힘주어 말한다.


“저들을 살려두면 우리가 전멸한다. 다들 나가서 해야 할 일들을 먼저 하도록. 이상.”


막사 밖으로 나오는 이들의 얼굴이 흙빛이다. 혼자 남은 소대장의 얼굴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황해도에 있을 당시에 아무리 잦은 내전을 했다고 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눈 전투였을 뿐, 무장하지 않은 상대를 죽여야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 무장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소대장이 막사 밖으로 나와보니 다들 자신의 군장을 싸느라 정신이 없다. 저렇게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닌데 왜 저렇게 늦장을 부리나 호통을 치려다가 흘깃 포박된 군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막사로 들어가며 전 소대원을 소집한다.


“니들이 누구냐? 니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냐?"

소대장이 묻는데도 부대원들은 답이 없다.


“우리는 군인이다.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 지금 인민군인지 뭔지가 남쪽 저 끝까지 내려갔다는데, 우리가 빨리 본대를 만나서 그 새끼들을 물리쳐야 되지 않겠냐?? 그래야 우리 막내 맨날 보고 싶다는 어무니도 보러 갈 수 있는 거 아니겠냐? 처리하라는데 처리를 안 하고 왜 이렇게들 꾸물거려”


처리를 하라고 명하는데 주어가 없다.


아무리 소대장이라고 한들 아직 채 서른 해를 살아보지 않았다. 막내는 자꾸 눈물이 차 올라서 팽팽 코를 푸는 시늉을 하며 눈물을 닦아낸다. 잠시 동안의 침묵 후 막내가 어렵게 입을 뗀다.


“소대장님, 그럼 저이들은 어떻게 죽여야 하는 겁니까? 총소리가 나면 안 되고 탄창은 아껴야 하니 칼로 찔러 죽여야 하는 겁니까?? 무장도 안 하고 묶여있는 저 사람들을 어떻게 칼로 찔러 죽일 수 있습니까?! 그냥 여기에 묶어두고 가면 안 되는 겁니까?? 어차피 묶여있어서 도망가지도 못하지 않습니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대장이 매섭게 눈을 뜨며 막내에게 묻는다.


“그럼 저들이 포박을 풀고 도망가는 경우는?? 풀려나는 순간 우리의 뒤를 쫓을 테고, 뒤에서 총을 쏴댈 테니 우리 부대원들은 다 죽을 테고, 우리를 끝까지 따라와 본대마저 습격하면 네가 책임질 수 있겠냐??”


막내는 기어코 눈물을 쏟는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도 어무니 아부지가 있을 거고, 처 자식이 있을 건데 그리고 무장한 상태도 아닌데, 어떻게 칼로 찔러 죽이냔 말입니까. 누가, 어떻게 찔러 죽이냔 말입..그..ㅇ..니까..”


말끝에 울음이 잔뜩 섞여있다. 그렇게 말할 거면 소대장님이 찔러 죽여 보십시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끝내 그 말은 내뱉지 못하였다. 지나가는 떠돌이 개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 좋은 소대장의 눈가가,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밤이 깊어오고 있었다. 묶여 있음에도 지치지 않고 악다구니를 써대던 군인도 지쳤는지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누군가가 계속 떠드는 이의 대가리를 개머리판으로 후려친 덕이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판단한 소대장은 출발하기 전 남아 있는 식량을 모두 꺼내오라 명한다. 아침에 잡아 놓은 토끼 서너 마리와 살구 몇 알, 산딸기 서너 움큼을 가운데 놓고 전 소대원이 둘러앉았다. 그 인원이 배불리 먹기에는 부족한 양이지만 다들 입맛이 없는지 토끼 고기는 거의 그대로다.


소대장이 막내에게 네가 가서 토끼고기 몇 점이라도 먹여주고 와라, 한다. 막내는 힘없이 대답하며 일어서자 부소대장이 본인이 가겠다며 넓적한 나뭇잎에 토끼고기 몇 점을 올려 포박된 군인들에게 향한다. 오들오들 떨던 군인은 반색을 하며 입을 한껏 벌리고 쩝쩝 거리며 고기를 먹더니 물도 좀 줄 수 없겠냐고 한다. 부소대장이 말없이 수통을 열어 물을 먹여준다.


호의를 베푸는 것을 보고 안심했는지 그 군인이 “아, 이제 살 것 같네. 여기는 워낙 깊은 산중에 있어서 우리가 전혀 신경 쓰는 곳이 아니니 안심해도 되오. 여기에 한 소대가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소. 이렇게 지금처럼만 쥐 죽은 듯이 있으면 당신들은 안전하니 걱정일랑 하지 마시오.”


옆에 있는 다른 군인이 기가 차다는 듯 혀를 차며 말한다. “이거 아주 나사 빠진 새끼구먼, 너 그 괴기 지금 맛있다고 먹는 거네? 그거 지금 마지막 만찬이다 이 새끼야. 이 종 갓나 새끼들이 우리 죽이기 전에 위선 떨며 베푸는 거라고!! 멍청한 새끼가 저걸 또 좋다고 받아 처먹고 있네. 야 이 새끼들아, 니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야. 합쳐 봐야 30명도 안 되는 새끼들이 용감도 하다. 너네들은 여기에서 나가는 순간 다 뒈지는 거야. 아까도 말했지만 니들이 나를 죽여도 안 죽여도 니들은 결국 다 죽어. 에잇 퉤.” 그가 뱉는 침이 부 소대장 손에 가서 닿는다.


물끄러미 손을 바라보던 부 소대장이 갑자기 일어나며 총구를 그 군인에게 겨눈다.


“이 미친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인민군인가 뭔가가 이 주변에 깔려있다고?? 그럼 소리라도 크게 질러봐라. 너네 편이 구하러 오나 보자 새끼야.”


총구가 관자놀이 닿자 그 시끄럽던 입이 꾹 닫혔다.


“그래, 어차피 너를 죽여도 안 죽여도 내가 죽는다면 내가 너를 살려둘 이유가 없지? 죽이기 전에 배때기 좀 데우고 죽이려고 했더니 싫으면 말아라. 퉤”


얼굴에 침을 뱉고 손을 탁탁 털고 자리를 뜬다. 옆에 묶여 있던 군인 아래로 물이 흥건하다. 자리로 돌아온 부소대장이 소대장에게 말한다.


“소대장님 금방 어두워질 텐데 저 새끼들 그냥 묻고 갑시다. 지들이 살 운명이면 어떻게든 살고 아니면 뒈지겠지 뭐.”


철렁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소대장이 답한다.


“그러는 게 좋겠군, 다들 막사 옆쪽으로 크게 구덩이를 판다. 곧 해가 완전히 지니 서둘러라.”


어떤 이는 침통한 표정으로 어떤 이는 조금 홀가분한 표정으로 삽을 들고 막사 옆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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