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할아버지를 그리며
용준은 감았던 눈을 떴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짐작은 되지 않지만 밖이 어둑한 것으로 보아, 초저녁이나 새벽 무렵이겠구나. 이제는 익숙해질 법한 병원 천장임에도 한 번씩 ‘여기가 어디지?’라며 화들짝 놀란다. 도무지 병원은 익숙해지지가 않지만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쉴 때마다 가슴을 조여 오는 통증이 없어서 좀 살 것 같다. 이렇게 괴롭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조금 더 빨리 병원에 왔어도 좋겠다는 마음 반, 과연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 내년의 가을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반이다. 자식들에게도 죄스럽고, 집에서 나를 걱정하고 있을 안사람에게도 미안하다. 워낙 걱정이 많은 사람인데 또 얼마나 속이 들끓고 있으려나. 마음이 괜히 심란해져서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는다. 병원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간호사들 발자국 소리만 타닥타닥 울린다. 사방이 고요한 걸 보아하니 새벽이구나. 동이 터오기 전이라 그런 것인지 하릴없이 내 마음이 그런 것인지 괜스레 마음이 시려온다.
용준은 황해도 옹진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과 누나들,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군에 입대하여 6.25가 발발하기 전에는 무사 무탈한 삶이었다. 군 입대 후에는 쭉 황해도 쪽에서 근무를 하다가 파견 나가 있었던 소대가 복귀하면서 그 소대와 교대하여 강원도 산골로 파견을 나가게 된다. 예기치 않았던 파병으로 용준은 처음 가족과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그 때의 나이, 스무살쯤이었다. 파견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갈 무렵 전부터 본대로 보급품을 받으러 간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들이 쌍으로 탈영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전쟁이라도 난 것인지 벌써 복귀하지 않는 인원이 5명이 넘어간다. 보급품은 점점 떨어져 가고 워낙 깊은 산골이라 주변에 민가도 없는데 본 부대에 연락을 취할 길이 없어서 답답하다. 복귀하지 않는 병사가 8명이 넘어가던 날부터는 부대원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 하나 짐작하는 그 상황에 대해서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또 여러 날이 흘러간다. 이쯤 되니 소대원 모두 함께 본대로 복귀를 해야 하나 아니면 연락이 올 때까지 더 기다려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 날도 여느 날과 같았다. 산에서 잡아온 들짐승들로 주린 배를 채우고 낮잠을 좀 자볼까 하는데 숲에서 두런두런 말소리와 인기척이 들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들 쥐 죽은 듯이 경계태세로 돌입하여 전방을 주시한다. 국군의 군복과 다른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총을 메고 이야기를 나누며 소대원들 막사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총은 메고 있지만 이런 곳에 막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한 것인지 무방비 상태였다. 순식간에 부대원들이 달려 들어 총을 빼앗고 포박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겁을 먹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고 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눈을 희번뜩이며 “니들은 다 죽었어! 우리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니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야 이 새끼들아!! 우리 인민군이 이미 저 남쪽 중앙까지 다 훑고 내려갔어.” 한다. 부대원들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그들을 내버려 두고 막사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래도 우려하고 짐작하던 일들이 터진 게구나 싶다. 뭔가 사단이 나긴 났구나. 다들 소대장을 바라보며 묻는다. “소대장님 우리는 이제 우짜면 좋소? 지금 저 새끼들 말하는 본새를 보니, 이미 이 주변에는 저 인민군인가 뭔가 하는 새끼들로 드글드글한 것 같은데, 우린 그저 총 한 자루씩과 몇 개의 탄창이 전부 아니오?” 어린 부대원들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우리 소대는 황해도에 있을 때부터도 잦은 내전이 있어서 소규모의 전투 경험이 꽤 있는 소대지만 이번에 같이 파견 나온 몇 몇은 입대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햇병아리 같은 소년들이다. 나도 이렇게 겁이 나는데 저들은 어떠할까? 용준은 갑자기 고향에 두고 온 동생 생각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