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3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얼마쯤 땅을 파내려 갔을까, 소대장이 입술을 꾹 누르며 말한다.


“동작 그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 가서 포로들을 끌고 와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쭈뼛거리는 병사들 사이로 태연하게 흙을 툭툭 털며 구덩이를 나가는 부소대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용준 상병, 박서준 일병 따라오도록.”


흠칫 놀라며 두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주먹을 꽉 쥐고는 부소대장을 따른다. 스무 걸음도 걷지 않았건만 막사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기둥에 묶인 군인 두 명이 보인다. 그들은 아침보다 훨씬 수척해진 모습이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도 하고 무기력해 보이기도 한다.


“거기 두 사람 눈가리개 씌우고 일으켜 세워.”


부소대장의 말을 따라서 눈가리개를 먼저 씌우고 무릎 꿇린 채 포박한 줄을 끊어내어 그들을 일으킨다. 토끼 고기를 넙죽 받아먹었던 이는 앞쪽으로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아, 드디어 풀어주는 거요? 정말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그냥 숲 속에서 길을 잃어 헤매고 헤매다가 복귀했다고 둘러대면 되니까 보안은 걱정 마시오. 내 하늘에 맹세컨대 이 곳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을 것이오.”


해맑은 목소리에 죄책감을 느끼며 용준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다가 다른 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 희번뜩하던 눈에 희망이라고는 없다. 실성한 사람처럼 텅 빈 눈으로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저 정신 나간 인간은 끝까지 사태 파악도 못하는구먼, 처음부터 저런 천치 같은 인간이랑은 같이 다니는 게 아니었는데….. 지지리도 복도 없지.. 저 남쪽으로 내려가서 잃어버린 어머니나 찾아볼까 했건만..”


해맑은 이는 그 중얼거림도 듣지 못하였는지 여전히 밝은 얼굴이다. 다른 한 명에게도 눈가리개를 씌우고

어깨를 잡아 구덩이 쪽으로 데려간다. 부소대장이 앞장서고 부대원 둘과 군인 두 명이 그 뒤를 따르는데, 구덩이까지는 지척이라 금세 도착했다. 도착한 부소대장이 그들의 멱살을 잡아 구덩이 바로 앞에 꿇어앉혔다.

그들 바로 뒤는 구덩이고 한 걸음만 뒷걸음쳐도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거리이다. 앞에는 전 소대원들이 총을 겨누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눈가리개를 풀자 깜깜한 밤이라 천지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둠이 익숙해지고 나니 자기들 앞에 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이 보인다. 그 둘은 참담한 표정이다. 얼굴은 삽시간에 흙빛으로 변했고 두 눈 가득 핏발이 섰다. 눈물을 참는 것인지 분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니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대원들의 마음이 가라앉는다.


“머…멍청한 새..ㄲ.. 끼들… 이렇게 조용한 밤에 총을 쏘면 니들 위치가 발각될 텐데도 이렇게 생각 없이 구는 게냐??.. 어디 다 같이 죽어보자는 심산이라면 나는 환영이다. 어서 한번 쏴보라지, 어디 다 같이 뒈져보자 어서 쏴라!!”


소대장이 차가운 음성으로 답한다.


“미안하게 되었소만, 우리로서도 방법이 없소. 우리가 운이 좋아 여태껏 살아남았다면 우리는 그 운을 이용해 끝까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당신들에게 억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니니, 그저 운이 나빴다 생각하시오.”


대답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지 그이는 그저 혀를 차고 눈을 감아버린다. 옆에 있는 이의 바지는 이미 흠뻑 젖었고 온 몸을 사시나무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다. 용준도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린다.


소대장이 “전 대원 조준, 사격 실시”라고 말하자 수십 개의 총구가 그들을 향한다.

저들을 향한 쇠붙이가 달빛에 반짝거리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두 사람은 뒤쪽에 미리 파두었던 구덩이로 떨어지는데 많이 놀랐는지 소리조차 못 내지른다. 소대장이 삽을 들고 구덩이 쪽으로 향하자, 다른 대원들도 모두 삽을 들고 소대장을 따른다.


막내가 용준에게 말한다.

“상병님, 어차피 저 구덩이는 깊어서 누가 꺼내 주지 않으면 올라올 수 없지 않습니까? 그냥 내버려 둬도 굶어 죽을 텐데 우리가 꼭 파묻어야만 합니까?? 나는 못하겠습니다. 나는 정말로 못하겠어요.. 이런 짓을 하면 나중에 천벌 받습니다.”


용준이 위로 차 말없이 막내의 손을 잡으려는 찰나 부소대장이 나타나 막내 뒤통수를 후려치며 말한다.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냐? 지금은 전시고 적군과 아군이 명백히 있는 상황이다. 적군을 우리와 동등한 사람으로 착각하지 마라, 원치 않았으나 전쟁이 시작되었고 먼저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너의 본분은 막내가 아니라 군인이다. 더 이상의 어리광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라.”


막내 눈물에 맺혔던 눈물이 도로 쏙 들어간다. 용준이 부소대장 모르게 막내의 어깨를 툭툭 치며 삽을 잡는다. 전 부대원들 얼굴과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다. 얼마나 삽질을 했는지, 성인 남자 두 배 높이의 구덩이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에는 평평한 땅과 넓적한 나뭇잎, 그리고 그 위 군번줄 두 개가 애처롭게 반짝인다. 땅속으로 사라진 그이들의 것이다. 쉴 새도 없이 막사를 철거하고, 본인들이 머물던 흔적을 지워낸다. 전원 군장을 메고 필요한 다른 짐들을 나눠서 챙겨 더 깊은 숲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빠르게 걷는 중간중간 파놓았던 구덩이를 메꾸며 들었던 비명소리와 또 비명소리 같은 것들과 울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려온다.


애써 고개를 젓는 용준이 남모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용준은 알지 못했지만 그 시각 전 소대원들은 용준과 같은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 떼고 있었다. 그렇게 용준의 소대는 점점 더 어두운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