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 #4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며칠이 흘렀는지, 얼마를 걸었는지 지금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식량은 이제 거의 바닥이 보인다. 소대원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도 정신만은 또렷하다. 잠깐 긴장을 늦추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정신이 또렷하지 않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보이던 얼굴들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남아 있는 부대원들도 몸이 성한 사람이 없고 몰골 또한 말이 아니다. 그들의 얼굴엔 표정이 없고, 체념과 독기만이 남았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무조건 걸음을 멈춘다. 근처에 있는 수풀이나 높은 덩굴들 안쪽으로 기어 들어가 돌아가며 쪽잠을 청하고, 잠을 청하지 않는 이들은 내내 경계태세를 취한다. 몇몇은 무장을 한 상태로 들짐승들을 사냥하거나 근처 개울가에서 물을 담아온다. 총을 쓸 수 없고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사냥 한 번에도 체력소모가 크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산짐승들이 씨가 말랐는지 그 흔한 토끼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며칠을 굶은 용준과 한 조를 이룬 서준과 막내는 돌이라도 씹어먹을 태세로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가 개울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물이 반가워 엎드려서는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얼굴과 몸에 물을 끼얹는다. 씻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물을 온몸에 뿌려댄다는 말이 맞겠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 울창한 숲이기는 하지만 십 여일 넘게 얼굴을 씻을 여유조차 없었으니 얼굴은 물론이거니와 몸은 말할 것도 없다. 물을 뜨려고 개울에 수통을 집어넣는데 민물고기 몇 마리가 보인다.


반가움을 금할 수 없던 이들은 고기를 몇 마리 잡아가기로 하는데 총을 메고 물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대 무장을 풀지 말라는 부소대장의 명령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여 잠시 갈등을 하지만 여태껏 개미 새끼 한 마리 못 보았는데 무슨 일이 있겠냐 싶다. 그래도 불안하여 용준은 총을 들고 경계를 하기로 하고 막내와 서준만 개울로 들어간다. 최대한 첨벙첨벙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는 첨벙 소리를 막을 재간이 없다.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막내가 갑자기 함박웃음을 지으며 발까지 동동 구른다. 자기 손바닥 만한 고기를 잡았다며 손에 쥐고 마구 흔든다. 미끄러운 물고기를 허공에서 저렇게 들어대니 당연히 놓칠 수밖에 없는 일인데, 역시나 물고기를 한참 흔들다 놓쳐버리고는 시무룩해 한다. 막내는 멀거니 쳐다보고 있던 서준이 피식 웃으며 막내를 툭 쳐서 넘어뜨리고는 둘이 함께 깔깔 대며 웃는다.


용준도 이게 얼마 만의 웃음인지 모르겠다 생각하며 따라 웃는데 어디선가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린다. 화들짝 놀란 용준이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부스럭 소리가 난 곳으로 총구를 겨눈다. 무언가 움직이는지 수풀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이내 나타난 것은 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다. 얼마나 굶은 건지 피골이 상접한 아이는 군인들은 발견하고는 갸우뚱하다가 이내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어어- 아재들은 누구여? 어쩌다 이 깊은 산중까지 들어왔소? 여기서 시방 물고기 잡는가?! 오오 지금은 메기가 철인께 고것을 먹어야 해. 근데 아재들 거기엔 물고기가 별로 없어. 날 따라오면 내가 물고기 열 마리는 거뜬히 잡을 수 있게 해 줄게!! 근디 잡아서 나도 두 마리만 주면 안되남??!! 헤헷 아재들은 어디서 왔남?”


방아쇠를 당기려던 용준부터 총을 가지러 향하던 다른 이들 모두 가만히 멈춰 서서 그 아이를 쳐다보는데 얼마만의 사람인지 반가움을 금할 길이 없어 요리조리 움직이는 그 아이를 따라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 어린네도 마찬가지인지 하늘에 떠 있는 해 마냥 해사한 얼굴인데 고놈의 입은 도통 쉬지를 앉는다. 막내가 도도도 달려가며 묻는다


“어린 네가 이 깊숙한 숲까지는 어쩐 일 이래? 어머니 아버지는 어디 계셔? 너 지금 밖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가? 어딜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니는가.”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 이 아재가 어디서 어린네 취급이여. 난 이래 봬도 열 해를 살았슈, 어린네는 무슨, 지나가는 똥개가 웃겠네!!” 라며 눈을 흘기고는 이어 말한다.


“그리고 나는 어무이 아부지 없소, 원래 있었다는데 나는 본 적이 없어. 나는 우리 할배, 할매랑 같이 저 위에 살아유. 아재들이야 말로 이 산골까지 무슨 일이래? 그리고 그 작대기 같은 것은 뭐예유? 요즘에는 그런 걸로 물고기를 잡는가?”


뭐라 설명할 길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자 ,


“우와아아! 이렇게 신기한 것도 있슈? 그럼 물고기 열 마리는 거뜬하게 잡겠네?!! 얼른 잡아서 나도 세 마리, 아니 아니 두 마리만 주슈!! 우리 할매 할배랑 같이 먹으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당께”


막내가 고향에 두고 온 막둥이가 생각나는지 꼬마 아가씨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래 이 오라비가 다 잡아주마, 열 마리는 무슨, 그 곱절을 잡아서 열 마리는 너를 줄 테니 걱정을 붙들어 메어놓고 기다려라. 알겠느냐?!”


눈이 동그랗게 커진 아이가 이내 깡충깡충 뛰며 말한다.


“아항 오라비였구먼, 나는 저기 있는 아재들처럼 아재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보니 아니구먼. 큼큼 보소 내 아무 데도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릴 테니 세 마리만이라도 주면 내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거구먼요”


막내가 빙긋 웃고는 용준을 쳐다보자 용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라는 무언의 허락이다. 아이는 옆에서 열심히 기합을 넣고 막내와 서준은 열심히 물고기를 잡는다. 벌써 열다섯 마리 째다. 바닥에 널브러진 물고기가 열여덟 마리가 되자 드디어 그 둘이 물속에서 나왔다. 군복 바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표정은 한껏 밝다. 용준이 미리 따두었던 넓적한 덩굴 나뭇잎에 네 마리를 고이 싸서 아이에게 건넨다.


“아재애!! 너무 고맙소, 실은 나흘 전부터 여태껏 풀 죽만 먹었더니 배때기가 등에 붙을 것 같았거든, 나도 나지만 우리 할매 할배는 오죽하겠소? 얼른 가서 삶아서 드려야 겠슈. 너무너무 고맙소, 내 이 은혜는 꼭 갚겠소!!.” 하며 고개가 땅에 닿을 때까지 절을 한다.


아이를 일으키며 우리는 괜찮으니 어서 가서 맛있게 먹으라 하고 돌려보내려는데, 아이가 묻는다


“아재들 내일도 여기 올꺼유? 그럼 내가 여기 와서 기다리고.”


뭐라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서준이 대답한다.


“아니, 우리는 오늘 밤에 여기를 떠날 거야. 지금 밖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는데, 우리랑 다른 군복을 입은 이들을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가야 혀, 오늘처럼 이렇게 말을 섞고 하며 진짜 큰일 나는 거야. 알겠어?!!”


아이는 또 고개를 갸웃한다.


“으응, 그게 뭔 소리여 왜 도망을 가야 혀? 그 아재들도 어른이니까 내가 못 잡는 고기를 잡아 줄지도 모르는데 왜 도망가라는 거야?”


용준이 묻는다.


“아가야, 너 이름이 뭐여?”


“아가라니, 나는 열 해를 살았다니까, 내 이름은 연아여.” 수줍게 대답하며 웃는다.


“그래 연아야, 이름도 곱구나. 지금 밖에는 난리가 났다. 여기는 아주 깊은 산속이라 나쁜 아재들이 아직 못 들어왔겠지만, 혹시라도 나쁜 아재들이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앞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일단은 도망치고 봐야 한다. 아까 이 은혜를 꼭 갚겠다고 했지? 그럼 그 은혜를 그렇게 갚아라. 알겠지??”


연아가 무언가 결심한 듯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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