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그리며
“흠, 알겠슈, 그럼 내일도 물고기 3마리만 더 잡아준다고 하면 꼭 그렇게 할 것이구먼, 내가 또약속은 기가 맥히게 잘 지키제!! 명일도 이쯤에 이 개울가에서 기다리고 있을텡께 꼭 와야혀유! 아재들도, 오라비들도 꼭 명일에 또 봐요!!”
용준은 이 철없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연아가 빙긋 웃고는 나뭇잎에 싼 물고기들을 가슴 깊숙이 끌어안고 고개를 힘차게 저으며 처음에 나타났던 수풀 속으로 사라진다.
막내가 벗어두었던 상의를 걸치며 용준에게 묻는다.
“아니, 우리는 오늘 저녁이면 여기를 떠날껀데 또 오겠다는 약속을 덜컥 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 연아가 와서 하루 종일 기다릴지도 모르는데, 그러다가 그 인민군인지 뭔지 하는 그 새끼들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구요….."
용준이 바로 답한다.
“내게 생각이 있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어두고 물고기나 챙겨라.”
셋은 물고기 열 네마리를 나뭇잎에 고이 싸서 개선장군처럼 소대원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허기와 통증에 시달리는 동료들과 드디어 끼니 다운 끼니로 배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거의 다와가서 수풀로 들어가는데 그들을 향해 총구가 겨눠진다.
“누구냐!! 암호를 대라.”
“내 고향은 황해도 옹진.”
총구가 내려가며 남아 있는 이들이 그들을 반긴다. 물고기를 잡아오는지는 몰랐고, 연아의 수다를 듣느라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지체되었기에 걱정했을 것이다. 그 동안 식량을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들의 멀쩡한 외양으르 확인한 소대원들이 한껏 안도하다가 나뭇잎으로 쌓여있는 고기에 눈이 간다. 남아있던 이들이 그게 무엇이냐 묻기도 전에 막내가 나뭇잎들을 바닥에 내려두자 나뭇잎에 쌓여있던 물고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와아!!! 외치며 벌떡 일어나서는 몇 몇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땔감을 찾으러 가고 몇 몇은 흥분하여 막내 볼을 꼬집기도 하고 머리를 헝클어 뜨리기도 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그늘져 있던 소대장의 얼굴도 흐뭇한 미소가 번져가고 그 냉하디 냉한 부소대장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수가 없다. 얼마나 행동들이 잽싼지 어느 새 물고기가 꼬치에 끼워져 구워지고 있다. 고소한 냄새에 다들 정신이 아득하다. 가장 노릇하게 잘 구워진 놈으로 골라 마음 고생이 심했을 소대장에게 건네자, 소대장이 대가리 쪽을 크게 한 입 배어 물고는
“이제 너 다먹어라.. 고맙다 오용준 상병” 하며 용준에게 건넨다.
뭐에 홀린 듯이 한 입 베어 문 용준은 어떻게 조미도 하지 않은 생선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감탄한다. 고향이 옹진이 용준은 여태까지 살면서 그렇게 맛있는 생선구이는 처음이다. 나머지 인원들의 표정도 모두 베껴놓은 듯 똑같다. 어제만 해도 전우가 하나 가 죽었고, 여기까지 오며 살기 위해 여러 명의 적군을 죽였다. 허기와 통증으로 괴롭고, 죄책감으로 더 괴롭기만하나 나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생선구이 하나에 세상 다 가진듯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이구나 싶다. 아무 말도 없이 여기 저기 쩝쩝 거리는 소리들만 산과 하늘을 메우는데, 그 하늘에는 다시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다.
식사를 마친 용준이 소대장이 있는 곳으로 간다.
“소대장님, 아까 저 개울에 보니 물고기가 아주 많습니다. 정말 깊은 산중이기는 한지 사람 손을 하나도 타지 않았습니다.”
“어, 그래? 그랬군. 오늘은 정말 수고가 많았다. 덕분에 허기가 좀 가시고 정신이 좀 든다. 목숨걸고 물고기를 잡아온 자네들 공이 크네”
용준이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 뿐입니다.”
말을 마친 용준이 자리를 뜨지 않고 우물거리자, 소대장이 묻는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말해봐라.” 소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용준이 청한다.
“저를 포함한 소대원들이 많이 지쳐있고 부상자들도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배불리 먹은 것이 아니라, 겨우 허기만 채운 정도이니 오늘은 여기서 하루 더 머물고 내일 물고기를 더 잡아와서 배불리 먹은 후 내일 밤 다시 출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소대장은 일리 있는 용준의 말에도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무사했지만 내일도 무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전시에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뒤에 서 있던 부소대장도 용준의 말을 들었는지 그들쪽으로 다가와서는 용준을 거든다.
“소대장님, 오상병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좀 더 먹고 체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소대장 말에 고민을 멈춘 소대장은 소대원들은 소집하고 여기서 하룻밤을 묵고 출발할 테니 군장은 내려두고 경계 근무태세로 돌입하라고 명한다. 소대장 뒤에 서있는 용준을 보는 막내와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존경의 눈빛으로 변한다. 막 군장을 메려던 소대원들은 군장을 내려두고 자리에 털썩 앉는다. 자연스럽게 오늘 낮에 쪽잠을 청했던 이들이 오늘 밤 경계 근무를 선다. 오늘 낮 경계 근무를 서던 이들이 아 오늘은 좀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안심하는데, 또 다른 몇 몇은 생각한다.
' 아- 오늘은 걷지 않아도 되겠구나, 오늘은 누군가를 죽이지도 누군가가 죽지도 않겠구나.'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새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