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용준의 이야기#6

할아버지를 그리며

by 오난난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너무 평화로운 나머지 경계 근무를 서던 이들이 꾸벅꾸벅 졸며 밤을 지새웠고 꾸벅꾸벅 졸며 , 쪽잠을 청하던 이들도 정말 오랜만에 다른 생각 없이 단잠을 잤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개울가는 정찰조가 미리 확인했기에 안전하다 여겨졌으므로 그동안 씻지 못한 꼬질꼬질한 몸을 씻고 오기로 했다. 주변이 밝아짐과 동시에 세 명씩 짝을 이루어 개울가로 향했다.


연아와의 약속을 잊지 못한 세 사람은 자기들은 가장 나중에 가겠노라며 다른 이들에게 순번을 양보했다. 혹시라도 자기들 대신 물고기를 잡아 오겠다고 할까 봐 미리 우리가 물고기가 많은 곳을 잘 아니, 우리가 마지막에 가서 물고기를 잡은 후에 씻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씻으러 갔던 4번째 조의 귀가가 늦어지자 유난히 초조해지는 세 사람. 혹시라도 연아를 다른 이들이 마주칠까 걱정이 되는 까닭이다. 그 어린것이 또 철 모르고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가는 민간인을 보고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고, 더러 섞여있는 정신없는 대원들이 그 집에 가서 신세 지자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맘으로 하염없이 개울 쪽을 바라보는데 드디어 마지막 조가 모습을 드러냈다.


막내는 쏜살같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채 느긋한 척 말한다.

“ 오상병 님, 이제 우리 차롑니다. 빨리 가서 씻고, 물고기도 어제보다 더 많이 잡아옵시다”


오상병이 답한다.

“그래, 어서 출발하자, 오늘은 어디 한번 배 터지게 먹어보자고!!” 셋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그런 그들을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삼총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개울가로 향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뛰는 듯 나는 듯 개울가에 도착해서 연아를 찾는다. 그런데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연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인 것 왔다가 돌아간 것인지, 혹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용준과 두 사람이다. 오늘 끝끝내 나타나지 않아도 좋으니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


심통난 목소리로 막내가 말한다.


“에잇 땅콩만 한 꼬맹이가 오겠다고 그렇게 난리를 쳐놓고는 나타나지도 않고, 어젯밤부터 내내 맘 졸인 우리는 뭐가 되네? 우리 오병장님이 오늘 꼭 여기 다시 오려고 얼마나 애써서 다시 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고!! 못된 에미나이!!”


괜한 걱정을 지우려 괜히 퉁퉁 거리는 모양새다.


세 사람이 연아가 이야기했던 물고기가 많은 쪽으로 움직이려는 찰나 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번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가 도도도도 부산스럽게 뛰어오는 소리다.


세 사람 모두 긴장하며 총구를 겨누는데,


“아재들!!” 쩌렁쩌렁 소리치며 나타난 꼬맹이는 다름 아닌 연아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요? 분명히 내가 어제 왔던 이때쯤 오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눈썰미가 좋아서 그렇지 아니면 아까 다른 아재들 올 때 뛰어나갈 뻔했지 뭐요?”


반가움도 잠시 마지막 말에 다들 놀라서 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니??!! 너 언제부터 여기 와 있었어? 다른 사람들한테도 막 뛰어나와서 아는 척하고 그런 거냐? 너 어제 우리 오병장님이 뭐라고 했어, 어?? 우리가 뭐라고 했는데….ㄱ그럽…”


연아가 한 손으로 막내 입을 막으며 남은 한 손 검지로 자기 입술에 가져다 댄다.


“아휴, 이 오라비가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아니 내가 무슨 천치인 줄 아시오?!! 어제 저 잘생긴 아재가 하라는 대로 했으니, 걱정 마시오! 나는 오늘날이 밝기가 무섭게 여기에 와서 수풀 뒤에 숨어 있었소. 집에 가서 고기를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자꾸 아재들 생각이 나서 가만히 잠을 잘 수가 없더라고.”


셋의 마음이 뭉클하다.


“근데 나는 군복이 똑같고, 또 서이가 왔다 갔다 하니까 당연히 아재들인 줄 알고 나가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자세히 봤더니 아재들이 아닌 거야, 조금 전에 온 아재들은 그나마 훤칠하긴 해도 아재들만 못하더라고.”


푸흡. 걱정했던 마음이 눈 녹는 듯 사라지며 나오는 웃음을 막을 길이 없다.


연아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헝클어 트리며 아주 잘했다고 아주 아주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연아가 아이답게 배시시 웃으며 몸을 베베 꼬며 답한다.


“아이 참, 아재도, 나는 아가 아닌데, 왜 이렇게 아처럼 대하시오?” 내 이래 봬도 열 해를 살았다고 하지 않았소!!”


용준 대신 서준이 웃으며 답한다.


“그래 그래, 우리 연아는 열 해를 살았으니 어엿한 숙녀다, 그렇지?”


“흠흠, 맞소, 나는 열 해하고도 서너 달을 살아온 어엿한 여인네란 말이요!!”

발그레진 얼굴로 말하는 연아를 보며 세 사람은 억지로 웃음을 참는다.


이제 고기를 잡으러 가려는데 연아가 수풀로 다시 돌아가더니 짚으로 만든 어망을 내민다.


“이거 우리 장독대 위에 덮어두었던 건데, 어차피 항아리가 다 비어서 이제는 쓸모가 없거든, 그래서 내가 밤새 만들어봤지. 어떠시오? 이거면 물고기 열 마리가 아니라 스무 마리도 거뜬히 잡겠지??”


뿌듯한 표정으로 연아가 건네주는 어망을 막내가 받아서 요리조리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 연아 너 진짜 솜씨가 좋구나, 역시 여인네 솜씨라서 훌륭하구나 야.”


네 사람은 몇 년은 봐온 사람들처럼 정겹다. 물고기를 잡는 중간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속에 서로에 대한 정이 듬뿍 묻어난다. 지금이 전시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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