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그리며
어느덧 두어 시간이 흘렀다. 세 사람은 어느새 완전히 마음을 놓았는지 얼굴에 말갛게 웃음이 피었다.
신나게 물장구치며 물고기들을 여기로 모으고, 저기로 모아 신나게 고기를 잡아대니 연아가 만들어온 어망에는 물고기가 가득 차서 터질 지경이다.
" 이제 이만큼 잡으면 되었소, 도대체 아재 친구들이 몇 명이길래 이렇게 많이 잡는 거요? 내 아무리 어망을 튼튼하게 만들었다지만 이러다 내 어망이 찢어지지 않아?? 이제 잡을 만큼 잡았으니 그만 하시오, 아주 이 산의 물고기 씨가 다 마르겠네."
용준 옆에 앉아있던 연아가 크게 웃으며 말한다.
용준이 쿡쿡 웃으며 물고기로 가득 찬 어망을 바라본다. 오늘은 살아있는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소대원들이 얼마나 좋아하려나 생각하다가 연아를 한번 쳐다보고는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그래, 이제 그만 되었다. 그만 들하고 나와서 니들 총 챙겨라.”
용준은 말끝에 양 어깨에 메고 있는 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게 웃으며 물고기를 잡던 서준과 막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물에서 나온다.
연아가 갸웃하며 “으응? 물고기를 산더미처럼 잡아놓고 왜 이렇게 기운이 없는 게요? 저 멀리 장에 나가서 팔아도 될 만한 양이오. 이 많은 고기를 달랑 아재 둘이 잡았다는 걸 누가 믿겠어? 응?!! 나는 보고도 안 믿기는구먼.”
연아의 신나는 칭찬에도 세 사람은 아무 대꾸가 없다.
잠깐의 침묵 끝에 용준이 연아를 자기 쪽으로 돌려세우며 말한다.
“연아야, 오늘 얼굴 모르는 아재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했다. 연아는 참말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구나. 아재들이랑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아재들이 입은 군복 말고 다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거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문 꼭 걸어 잠그고 쥐 죽은 듯이 있어야 한다. 이제 아재들은 저기 멀리로 가야 해서 내일부터는 이제 여기에 못 오니까 그렇게 알고 할머니 할아버지 잘 챙겨가며 살아야 한다.”
용준을 바라보던 연아가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아재 그게 무슨 말이오. 아재들 어디로 가는데? 여기서 두 밤 밖에 더 있었소? 아, 잘 곳이 없어서 그러나?....
말 끝을 흐리며 용준의 반응을 살피던 연아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말을 잇는다.
" 울 집 근처에 가면 옛날에 우리 할배가 키우던 소 외양간이 있는데, 우리 할배가 욕심이 워낙 많아서 소 서너 마리를 키웠었거든. 그래서 그 외양간이 꽤 크다니까. 거기를 조금만 손보면 아재들이랑 아재 친구들 잘 수 있을 정도의 크기는 될 텐데 한번 같이 가서 보겠소?"
여전히 세 사람은 답이 없다. 잠시 숨을 고른 연아가 다시 입을 연다.
"어디로 가야 하는데? 며칠만 더 있다 가면 안되오? 아재들 가면 나는 또 누구랑 이야기하고 물고기는 누가 잡아준담?. 응? 그러면 안되나?”
연아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이 무겁고 괜스레 저릿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서준이 나서서 말한다.
“응, 연아야 아재들은 지금 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서 이제 그만 가야 한다. 원래는 어젯밤에 갔어야 하는데 연아 한번 더 보고 가려고 하루를 늦춘 거야. 더 이상은 늦출 수가 없어서 오늘 밤에는 가야 해. 그 대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를 테니까 잘 지내고 있어야 한다.”
연아는 벌써 눈물을 주렁주렁 달고는
“아니, 아재요, 오라비 말 좀 해보소, 이렇게 말하고 가서 언제 또다시 온단 말이오? 무슨 일이 그렇게 급하다고 그리 급하게 가는 거요? 그럼 오늘 좀 일찍이라도 나타나든지, 어제부터 내 마음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아는가 몰라. 첩첩산중에 아픈 할매, 할배랑만 살다가 훤칠한 아재랑 오라비들이 나타나서 월매나 좋았는지 아시오? 또 그치들이 말은 얼마나 다정하게 하는지, 말동무도 해주고, 물고기도 잡아주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내 평생 살면서 이렇게 좋았던 적이 없었다고. 그런데 이렇게 꼴랑 이틀만 있다가, 응? 다 합쳐도 반나절도 안되는데, 정만 듬뿍 들게 해 놓고 그냥 다시 가버린단 말이오?? 안되오, 안되오, 나는 못 보내오, 지금도 이렇게 눈물 콧물이 다 나는데, 이런 나를 두고 진정 가겠다는 거요? 흐으윽.. 그럼 나는 또 외롭고 슬퍼서 어쩌나, 흑흑.. 서러워서 어쩌냔 말이오?”
연아의 절절한 말에 어느덧 용준의 눈이 시큰해져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서준과 막내의 눈가도 눈물을 참느라 이미 빨갛게 된 지 오래다.
그렇게 세 사람의 연아의 절절한 말과 그로 인해 올라오는 감정에 취해있다. 자신들의 감정에 너무 취해서일까? 물소리 조차 멈춰버린 듯 고요한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들 근처로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에도 아무 반응이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