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그리며
“니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네??”
쯧쯧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예기치 못한 사람 목소리에 깜짝 놀란 세 사람은 소리가 난 쪽으로 총을 겨눈다. 연아는 더 화들짝 놀라 가장 가까이 있던 서준 뒤로 숨는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낸 막내의 시야가 뿌옇다. 어깨춤으로 눈을 비벼 닦아내니 그제야 앞이 좀 보이는데,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하니 부소대장이다.
서준과 막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총을 내려놓는데, 용준은 총을 내려놓은 채 잔뜩 경직된 모습니다.
“오용준 상병, 니 대답해봐라. 저 아는 누구지? 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오늘 처음 본 사이 같지는 않고 어제 급작스레 만난 사이인가 보지? 아까 와서 개울가에 씻을 때도 저 아가 수풀 속에 숨어 있더구먼, 니들 기다린 거 맞지?? 그래서 되지도 않게 소대원들 핑계 대며 하루 더 머물자고 한 거네? 나 참, 기가 막히는구나 야.”
용준은 말이 없다.
“왜 아무 말도 없지? 대답해봐라.”
용준이 대답한다.
“그것이… 소대원들 핑계를 댄 것이 아니고 그건 참말 진심이었습니다. 저 아이는 어제 만난 것이 맞지만 꼭 저 아이 때문에 하루를 더 머물자고 말씀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준의 뒤에 숨어있던 연아의 눈이 빼꼼 용준을 향한다.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보고는 왜 안 한 거지? 전시 중에 민간인을 발견했다면 당연히 보고가 먼저 아닌가? 그리고 저 아가 진짜 민간인인지 아니면 인민군들 쁘락지인지 어떻게 확신하지?”
이럴 줄 알았다. 용준이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사태가 벌어질까 봐 염려하여 따로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편찮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연아의 집이 군홧발로 더럽혀지는 것이 싫었다. 전시 중에는 당연히 부소대장의 말대로 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군복을 입은 이들에게 전혀 경계심이 없이 다가왔던 연아의 행동을 미루어보아 이곳까지 들어온 군인은 자신들이 처음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부소대장에게 그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히 군인답지 못하다며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아침부터 꿀을 쳐 먹었나, 왜 눈알만 도르륵 굴려대고 대답을 못해?!! 어?? 니 귀가 먹었네?!!” 하며 정강이를 걷어차는데 그와 동시에 연아가 저 뒤에서 빽 소리를 지르며 말한다.
“으익, 아재요, 여기 좀 보소 아재가 뭔데 갑자기 나타나서는 사람 다리를 뻥뻥 차대고 난리요??!! 대답할 시간도 안 주고 촉새같이 쏘아대면서 왜 아재 다리를 차는 거요??!! 별 희한한 아재를 다 보겠네!! 왜 그러는거헙.. 읍… 업…”
서준이 황급히 연아의 입을 막아보지만 이미 늦었다. 숲에는 적막이 흐르고 연아가 버둥거리며 발로 수풀을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부소대장이 매서운 눈으로 연아를 쳐다보면 말한다.
“니 이 아재들 말고 다른 아재들도 본 적 있더냐? 솔직하게 말해봐라. 만약 네가 거짓부렁을 하면 나는 또 이 아재 다리를 걷어찰 거이니.”
연아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리더니, 서준의 손을 밀어내고 답한다.
“ 아뇨! 못 봤소. 할배까지 아프기 전에는 한 달 내 캐낸 약초들을 이고 지고 하루를 걸어서 장에 가야 사람을 볼 수 있었고, 이제는 장에도 갈 수 없게 된 지 오래라 사람 구경해본 지 오래라고. 이 근처에서는 우리 셋 말고는 본 적이 없소. 사람이 그리워 내 이 아재들 보고 뛰어나가 알은체를 한 것이지 이 아재들은 잘못이 없다고. 그러니 소리도 지르지 마시고, 막 발로 차고 그러지 마시오.”
부소대장은 잠시 말이 없다. 소대 사람 중 제일 꼬이고 삐딱한 그 심성을 모르지 않는 세 사람은 내내 초조하기만 하다. 부 소대장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세 사람 쪽을 쳐다보며 말한다.
“일단 두 사람은 가서 잡은 고기를 놓고 다시 여기로 와라. 소대장님한테는 혹시 사냥감이 있나 조금 더 깊은 쪽에 들어갔다 온다고 하고.”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 두 사람이 용준을 쳐다보자 용준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오상병과 나는 저 아네 집으로 먼저 가면서 나무에 표식을 해 둘 테니, 니들도 일단 거기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우렁차게 대답을 마찬 둘은 어망 채로 물고기들을 어깨에 둘러메고 나는 듯이 달려간다.
“거기 꼬맹아, 너희 집이 어딘지 앞장서라. 아재들이 가서 확인할 게 있으니 어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연아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부소대장과 용준은 당황하는데, 부소대장이 용준의 어깨를 툭 치며 앞으로 내세운다. 용준이 연아에게 다가가 말한다.
“ 연아야, 울지 마라. 다른 게 아니고 아재들이 연아네 집에 가서 혹시 나쁜 사람들이 주변에 없는지 보고만 오면 된다. 잠깐이면 되니까 울지 말고 같이 집으로 가자.”
“아니 아니, 안돼요. 안돼 우리 할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오?!! 내가 여기서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 알아도 병석에서 벌떡 일어날 사람인데, 아재들까지 달고 가면 나는 진짜 할매한테 종아리를 열 번도 더 맞을 거요. 그리고 나를 또 저 깊은 산중에 버리고 올 거란 말이오. 흐어엉, 아재요 내가 잘못했소. 그래도 끄으윽 엉엉 집에는 못 가오. 아재, 내가 다시는 여기까지 안 내려올 테니 그냥 나를 보내주면 안 되오?... 흑흑”
부소대장이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보다가
“그럼 우리는 니 뒤를 몰래 따라가서 느이 할매 할배 모르게 집 주변만 둘러보고 오겠다. 두 분이 모르게 조용히 움직이면서 방 안에 계시는 그분들은 모르실 게다. 금방 한 바퀴를 돌고 올 거라서 잠깐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
아까와는 다르게 연아에게 부드럽게 말하는 부소대장을 보며 용준이 ‘저 사람이 저렇게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생각한다.
“정말 그럴 수 있소?!! 그럼 약속하시오!! 쥐도 새도 모르게 움직인다고 약속!!”
용준과 부소대장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내 안심이 되었는지 눈물을 닦고 명량함을 찾은 연아를 보며 ‘참 연아답다. 연아가 더는 울지 않아 다행이다.’ 생각한다. 용준과 부소대장에게 연거푸 다짐을 받아내며 앞서가는 연아를 따라간다. 뒤따라올 두 사람을 위해 그리고 돌아올 길을 표시하기 위해 나무에 표식을 남기며 걷는다. 얼마 걷지 않아, 아담한 초가집이 보이고, 연아가 말했던 텅 비어있는 외양간도 보인다. 마루에는 할아버지로 보이는 어르신이 누워있고, 문이 열린 방 안에는 할머니 한 분이 누워있다.
연아가 검지 손가락을 일자로 입에 가져다 대며
“쉬이, 아재들 내 말이 맞제? 우리 할매랑 할배밖에 없당께요. 얼른 살금살금 둘러보고 가시오.”
부소대장과 용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정말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하긴 소대원들이 있는 곳도 정말 깊은 숲 쪽에 속하는데 더 깊은 숲 속이니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