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1살, 우리 영순씨

인생은 60부터

by 오난난

아침부터 온 집안이 들썩들썩했다. 나를 포함해 아빠, 엄마, 동생까지 부산스럽고 시끌시끌한 아침이었다. 1월 초부터 엄마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호텔 식당을 미리 예약해 놓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어제저녁 미리 써놓은 편지와 고깔모자, 다음 주 첫 돌을 맞는 조카가 쓸 왕관도 챙겼다. 잘 안 입던 원피스를 꺼내서 다리고 평소에는 쓰지 않던 파운데이션까지 잘 펴 발랐다. 엄마의 패션을 점검하기 위해 짧은 패션쇼를 하는 사이 이모와 삼촌이 도착하셨다. 엄마가 두 분의 차를 챙겨드리는 동안 아빠와 나는 서둘러 준비를 끝마쳤다. 출발시간이 되어 내려가니 이모의 아들인 친척오빠가 와이프와 딸이 인사를 드리러 들렀다. 함께 가면 좋았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최대한 적은 인원만 가기로 결정한 터였는데 바쁜 와중에서 환갑 축하 인사는 드려야 한다며 온 식구가 찾아와 주었다. 다음 주 돌인 조카에게 전해주라며 금반지까지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가지고 있는 카드로 호텔 무료발렛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카드사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호텔 입구로 들어설 무렵, 케이크를 찾기 위해 언니네와 함께 먼저 출발한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착해서 주차까지 마쳤다는 동생에게 우리도 이제 도착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생각보다 붐비지 않아서 주차도 잘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로비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서 언니네 식구와 동생을 만났다. 반갑게 서로 인사를 나누며 로비로 올라가 식당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친절한 직원분들의 안내를 받아 예약해두었던 룸으로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과 남산이 보이는 큰 창, 귀여운 레터링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조카의 돌잔치 겸 엄마의 환갑을 함께 축하하는 자리라 1st라는 글씨가 붙었는데 엄마도 조카도 이제 1살이 된 것을 축하하는 자리이니 안성맞춤이었다.

직원분들께 겉옷을 건네고 가져온 가방과 짐, 엄마의 선물을 룸 한편에 마련된 자리에 잘 내려두었다. 멋진 경관을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한참 찍은 뒤 직원분에게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나둘씩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았다. 음식을 먹는 중에도 나와 동생은 순간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프레임에 들어오는 창을 등지고 앉은 조카를 포함한 언니네 식구가 나의 손가락을 멈출 수 없게 했다. 옆으로 나란히 앉은 아빠와 엄마의 활짝 핀 얼굴과 정다운 모습도 놓칠 수 없어 열심히 버튼을 눌렀다. 엄마의 옆에 앉은 이모와 삼촌, 사이좋은 형제자매의 모습도 놓칠 수 없어 사진첩이 터져나갈 판이었다. 그래도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 소중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눈에만 담아두기에는 아까웠기 때문이다.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맡겨두었던 케이크를 부탁드리니 초를 켜서 엄마 앞자리에 놓아주셨다. 생일 축하노래를 힘차게 부르며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엄마는 어느 때보다 기쁜 얼굴로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셨다. 준비해두었던 꽃다발과 선물을 건넸고, 선물을 뜯어본 엄마는 얼굴이 환해지며 "너무 행복해요, 고마워"라고 말하셨다. 이어서 세 딸의 편지 낭독회가 열렸는데 본의 아니게 눈물바다가 되었다. 제일 먼저 언니가 써온 편지를 읽었는데 몇 글자 읽지도 못하고 울먹거렸다. 나는 괜히 멋쩍어서 "아니, 왜 저래"라고 말했는데 나는 접어둔 편지를 펼치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동생은 이미 자기 차례가 오기 전부터 훌쩍이고 있었으니 세 딸 모두 편지를 읽는 내내 염소가 따로 없었다. 그동안 고생하고 애쓰시며 살아온 엄마에게 보내는 딸들의 편지가 딸들도, 엄마도, 이모도 울게 만들었다. 눈물을 닦으며 입을 뗀 이모가 엄마가 고생한 것을 딸들이 알아주니 너무 고맙다며, 이래서 딸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모도 그동안 한 번도 하지 않으셨던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며 허심탄회하게 전하셨다.

졸려서 칭얼거리는 조카를 형부에게 안아 들어 토닥토닥하며 재우기 시작했다. 이모의 뒤를 이어 아빠도 엄마와 이모에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고, 형부도 축하 인사와 장모님 사랑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엄마의 소감을 듣는데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며 지난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딸들이 이렇게 애쓰고 준비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서 서둘러서 계산을 마치고 곤히 잠들어 눕혀놓은 조카를 챙겨 식당을 나왔다. 언니네의 배웅을 받으며 이모, 삼촌과 함께 차에 타 출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벽 3시가 넘어 잔 탓인지 잠이 마구 쏟아졌는데 운전하는 아빠가 얼마나 졸리실까 싶어 눈을 부릅떴다. 다행히 옆에서 이모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통에 졸지 않을 수 있었다.


이모와 삼촌을 가까운 역에 내려드리고 집에 도착했다.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오니 엄마 아빠는 벌써 옷을 다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치셨다. 식사를 위해 오전 시간은 빼두었지만 오후에는 일을 하러 가셔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을 끓여 각자 취향에 맞게 커피를 한 잔씩 하고 서둘러 나가시는 엄마와 아빠를 배웅했다. 이런 날은 좀 쉬시면 좋으련만 하는 마음에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먹고사는 일에 어디 휴일이 있으랴.


열심히 찍었던 사진들을 가족 채팅방에 올리고 컴퓨터에도 옮겨 담아 압축 파일로 저장해두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세 자매만 있는 채팅방에서 오늘 지출한 내역을 언니가 정리해서 올려주었고 모두 고생했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미리 세 자매가 함께 들어두었던 적금 덕분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 모아둔 돈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어 좋았고 셋이라서 든든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하루,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활짝 핀 엄마의 얼굴과 훈훈했던 오늘의 그 분위기와 맛있는 식사는 내 뇌리에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기억하기 위해 생생하게 기록해둔다.

더 잘 살아야겠다. 더 열심히 살아서 가족들과 이런 시간을 더 자주 보내려고 한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 가족의 앞날이 오늘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새롭게 시작되는 우리 엄마의 인생도 더 반짝반짝 빛나기를 소망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엄마, 글로도, 말도로 다 전해지지 않는 우리들의 마음이 엄마에게 10분의 1이라도 가서 온전히 닿았기를 바라요. 인생은 60부터! 새롭게 피어날 영순 씨의 삶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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