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사람이 왜 이리 많아

우린 그저 다른 색일 뿐.

by 오난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같은 배속에서 나온 형제들 조차 제각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고, 살아가는 모습 또한 다르다. 심지어 1, 2분 차이로 세상에 나온 쌍둥이들조차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나 또한 각양각색의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그 속에 섞여 살아가고 있기에 삶의 모양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나날이 체감하고 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 하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와의 심리적인 거리가 먼 사람에게만 관대하다. 나와 같은 집에서 살을 맞대며 살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가게 될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 ‘다름’을 버리고 나와 결이 같아지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말은 거창하게 “우리가 앞으로 함께 잘 살려면,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옳으니 네가 나에게 맞춰.”와 다를 바가 없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내가 옳음을 계속해서 증명하

는 꼴이다.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름 또한 인정해야 한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남의 삶을 살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그 태도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별다른 노력 없이 누군가의 삶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 더 나아가 내 삶을 별 볼일 없다 치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가 나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나는 자주 남과 나를 비교했고, 내 기준에 나보다 더 나은 삶이라 여겨지면 무조건적으로 부러워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인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우고 자라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그 감정들이 ‘아 부럽다. 좋겠다’에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뒤이어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초라한’ 내 모습이었다.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로 시작한 자기비판은 ‘왜 내 얼굴은 눈에 띄게 예쁘지 않지? 왜 나에게는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결단력과 단호함이 없지? 왜 내 몸은 자주 아프지? 왜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지? 왜 나는 차분하지 못하지? 등등으로 이어지며 신랄한 자기비판이 계속되었다.

내가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니 자존감이 땅으로 떨어지다 못해 땅굴을 파고 들어갈 기세였다. 그렇게 내가 나를 더욱더 작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잘난 사람은 너무 많으니 부러워할 사람도 넘쳐났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노력해서 더 잘 살아야지’ 하는 의욕보다는 ‘아, 나는 안되나 보다’ 라는 자괴감이 들곤 했다. 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나는 저 사람과 상황도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내 인생은 그렇게 오래도록 제자리에 멈춰 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마음 가짐을 고쳐먹고 나도 더 잘 살고 싶다는 각오를 다졌다. 생각한 것들을 행동에 옮기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다 보니 어쩌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물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냥 하고 있는 내가, 그래서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하면 다른 사람도 다 할 수 있을걸?’이라는 생각이 어느덧 ‘남이 하면 나도 다 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태도이지만 그 기준으로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내가 나를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목적은 더불어 잘살기 위함이고, 나쁜 점은 덜어내고 좋은 점은 배워가며 더 성장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부러워하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잘난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만 하던 내가 움직여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내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되었다는 신호탄이다. 잘난 사람이 부러우면 까짓것 내가 생각하는 '잘난 사람'이 되면 되지!


때마침 이효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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