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만의 답은 내 마음안에 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중국집에 갈 때 마다 늘상 하게 되는 고민이다. 짬뽕을 시키면 짜장면도 먹고 싶고,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도 먹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짬짜면은 먹고 싶지 않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하, 식당 메뉴 고르는 것 하나조차도 쉽지 않구나. 중식당으로 걸어가는 내내 마음이 수도 없이 바뀐다. 어찌저찌 '오늘 나는 짜장면을 먹겠어.'라며 어렵게 결정하지만 음식점에 도착해 메뉴판을 펼치면 볶음밥도 먹고 싶고, 고추잡채밥도 먹고 싶어진다. 애써 고른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 '아, 나도 저거 먹을껄.', '엇, 저것도 맛있겠다.''하며 아쉬워 한다.
식당 메뉴 고르는 것 조차 쉽지 않았던 나는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어렵게 결심하고 결정을 내린 일이지만, 주변 이야기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인다. 좋게 말해 남의 말을 듣는 것이지, 이리 저리 휘둘리는 모양새다. 충동적이거나 즉흥적으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 공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해 고민하고 결정한 일에도 그렇다는 게 문제다.
여지껏 연애 중 가장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나에 비해 항상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이 좋았다. 그는 생각이 많다 못해 넘쳐흐르는 나에게 팩트를 집어주며 심플하게 정리를 해주곤 했다. 내가 신이 나서 방방 뜰때는 너무 가지 않도록 잡아 주었고, 우울에 빠져 땅을 파 내려갈때면 묵묵히 기다려주며 '나 여기 있으니 천천히 올라와.'라는 조용한 위로를 건네 주었다. 그 덕에 오랜 시간 만나면서도 크게 싸운 적이 없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기, 오기복씨가 되어 감정이 널을 뛸 때도, 괜히 틱틱거리고 이유 없는 짜증을 내어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곁에 있어줬다. 워낙 예민한 성격이라 살이 찔 새가 없었던 내가 남자친구를 만나며 살이 찌기 시작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단점들도 있었지만, 나를 나보다 더 아껴주는 그 마음과 그와 있을 때 내가 가장 편안하다고 느낀다는 것이 중요했다. 딱히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관계에 있어서 의심이 많은 내가 표현을 많이 하지 않는 그에게 확신이 생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확신이라 생각했던 내 감정이 푸스스 힘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빨랐다. 주위의 염려와 걱정들을 들으며 여러 번 흔들렸지만 어렵게 내린 결정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들어왔던 모든 이야기들이 내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애써 무시했던 염려와 걱정들이 나의 것으로 자리잡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자신있게 결정하는 것이 답이 맞는가?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걱정을 그저 그런 걱정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인가? 내가 좋자고 한 결정인데 결국 그들이 말한 대로의 결론이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다던데, 저렇다던데.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유경험자들의 말들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중요한 건 나이고, 나의 마음이었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나의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확신에 찼던 마음은 쪼그라들다 사라져버렸고 우리는 그렇게 헤어졌다. 골인 지점까지 힘들게 와서는 공 한번 차보지 못하고 이별을 맞았다. 그는 아마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다. 주변의 영향도 있었지만 나의 선택으로 결론을 내린 나는 속이 다 시원했다. 수없이 고민하며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우며 낸 결론이니 그저 홀가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내린 결론이 나에게 좋은 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택한 것이니 옳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지냈다. 나는 괜찮아야만 했다. 잘 살아야만 했다. 그 친구가 힘들게 지낸다는 것을 들었을 때도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려 했다. 잠시 잠깐, 다른 사람들도 만나 보았지만 그럴수록 그 친구가 더 생각이 났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밥을 넘기기가 힘들어졌을 무렵엔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선택도 내가, 결정도 내가 해놓고 그 때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 주변이라고 여겼다. 나는 그 때서야 내가 생각보다 이 친구를 정말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엉엉 울었다. 그래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 그저 꾹 참고 지내는 것을 택했다.
연락을 하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헤어진 후 5개월이 흐른 시점이었다. 둘 다 홀쭉해진 얼굴로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여전히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느림보인 내가 다시 확신을 가지는 것도, 내가 결정한 일을 번복하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이 친구가 여전히 좋았다. 그러나 다시 만나 결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은 여전히 서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만남과 연락은 유지하면서도 다시 만나자는 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다시 만나는 것이 맞는가? 이미 깨졌던 관계를 돌이키는 것이 맞을까?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설 수 있는가? 그 후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나 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해보는데까지 서로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헤어져 있던 시간 동안 우리는 이전보다 성숙해졌고, 서로의 존재 자체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었고 나의 생각이었다. 그 때의 나에게는 그와 헤어져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고 지금의 나에게는 그와 다시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 뿐이다. 주변에 휘둘렸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이 문제가 아니라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이 문제였다.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 때문에, 그래서 뒤따라 나오는 나의 말들 때문에, 주변에서도 나와 같은 불안한 마음을 가졌으리라. 그 모든 것을 그떄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락가락 하는 내 마음 때문에 내가 그와 헤어졌지만, 나와 그를 다시 이어준 것도 오락가락 하는 내 마음이었다.
결국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내 생각이다. 그 마음과 생각이 오락가락 할지라도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마음속의 답은 나 스스로가 자신을 찾아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중요한 결정이든, 사소한 결정이든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자세히 보고, 보고 또 봐야 한다. 오락가락 하는 마음도 결국 내 마음이기 때문이고, 나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내린 결정에는 이유불문하고 반드시 책임을 질 것. 내 인생을 찬란하고 아름답게 가꿔나가야 할 막중한 임무 또한 나에게 있기 떄문이다.
세상 사가 어디 모두에게 딱 맞는 답만 있을쏘냐? 나에게는 나에게만 맞는 나의 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