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새해답게

나는 나답게

by 오난난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라고는 느낄 수 없었던 12월을 보냈다. 작년이라고 해봤자 고작 4일 전이지만 작년이라는 말이 붙으니 아주 먼 옛날같다. 11월 중순, 내 생일을 기점으로 남아있는 한달 반의 시간은 훌쩍 날아간다.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가는 느낌은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마음 속에서 별다른 저항이 일지 않더라. 저항이 일었다고 해도 바닥난 에너지가 그 저항대로 움직여줄리도 만무했다. 그래서 그냥 살았다.


작년의 반성과 회고는 진작 끝냈어야 했는데 새해에 들어서고 나서야 지난 날을 제대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희망과 절망이 가득했던 나의 한 해, 짧고도 길었던 365일. 희망으로 시작한 한 해의 중턱에서 나는 난생처음 '절망'을 만났고, 그렇게 나의 세상은 멈춰졌다.

mountains-139012_1280.jpg

몇 년간, 힘들게 험준한 산을 올랐다. 도중에 포기하고 하산한 적도 있었다. 헤매고 헤매이다 다시 그 험준한 산을 오르기로 마음 먹었다. 산을 오르다보니 여기 저기 생채기도 나고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호흡까지 가빠오니 계속 올라가야 하나 고민이 될 때도 있었으나 오르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걷다보니 골짜기를 만나기도 하고 바위로 뒤덮인 곳도 지나야 했다.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오르고 오르다 보니 어느덧 중턱에 이르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며 가며 참 오래도록 그 산을 올랐다. 어느덧 안개가 자욱해지는 걸 보니 정상 가까이 다다른 듯 했다. 드디어 정상인가 싶어 심장이 뛰었다. 안개가 걷히며 봉우리가 드러났다. 몇 발자국만 가면 드디어 정상이다. 이제 다왔다. 잘 움직이지도 않는 다리를 억지로 떼며 웃었다. 그 순간이었다.

sunset-2715084_1280.jpg

바로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추락했다. 내가 발을 헛디딘 것인지, 누군가 나를 밀었는지, 그도 아니라면 둘 다인지 모르겠다. 기대감이 가장 고조되었던 그 순간 나는 그대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앞두고 나는 부서졌다. 수없이 의심하고 고민했으나 결국엔 내가 오르기로 한 산이었다. 험준한 산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정상에 올라 내려올 때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가늠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인 뒤였다. 내가 한 결정이자 선택이었고, 그 길을 따라 걸을 뿐이었던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싶어 억울하고 억울했다. 결국엔 내 탓이었다. 왜 내 탓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탓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조차 할 수 없어서 그저 내 자신을 탓했다.


숨을 쉬었으나 나의 의지가 아니었고, 걷고, 먹고, 웃고 말했으나 그 모든 것은 내가 한 게 아니었다. 그냥 살았다. 그저 살았다. 감사하게도 죽을 용기가 나지 않아 매일 새로운 하루를 만났다. 그 하루 하루속에 나를 위한 시간이 있을리 없었다. 나는 그저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집착했을 뿐이었다. 일을 해야 하니 했고, 먹어야 하니 먹었다. 괴롭지만 내내 울 수 없으니 웃었고, 아무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뗏다. 그런 하루 하루가 계속되었다. 다행히 슬픈 날만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일 분노할 기운도 없었다. 그 와중에 보람을 느끼는 일들도 있었고 때로는 따듯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들 또한 나를 살게 해주었다.

wooden-figure-980784_1280.jpg

생생한 그 날의 기억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나는 나아가지 못한 채 무력하다. 내가 나에게 아무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니 그저 그렇게 살라고 말한다. 그러다 문득 원초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쩌고 싶은 걸까? 어떻게 살고 싶은걸까?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마음을 다독인다. 커다란 생채기에 밴드 하나 붙여놓고 물이 닿을 때마다 쓰려도 참아낸다. 상처가 나았는지 혹은 더 커졌는지 확인하기가 두려워 얼룩 투성이 밴드를 그대로 붙여놓는다. 그때의 나는 괜찮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괜찮아지기 위한 시간을 나에게 주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살았을 뿐이다.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 나를 짓눌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 뿐이다. 그 당시 내가 나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sylvester-6897648_1280.jpg

오래도록 웅크렸던 몸과 마음,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펴본다. 길 한복판에서 멈춰 서 있는 나에게 천천히 한 걸음이라도 떼보자고 말한다. 이 모든 과정들이 결국엔 나를 나답게 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바래 마지 않았던 나의 말대로 나답게 살아보자. 새로운 해, 새로운 날이니 다시 피어나보자. 사랑을 담아 귀한 나의 삶을 응원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