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남편

여보, 휴식 한 판 쌔리라!

남편 15

by 오달빛

야구에 꽂힌 아이들. 나에게 공을 던져달라 한다.


아이들이 야구에 꽂히게 한 장본인(!)은 바로 남편.


남편을 처음 만난 2009년, 그는 오른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직장인 야구단에서 투수를 하다 다친 거라 했었다. 들어보니 꽤 열정적으로 활동했고 인정도 받았던 듯했다. 홈런을 날린 적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나 신나!'가 온몸으로 뿜어져 나왔다.

결혼 후에도 야구 시즌이면 내내 경기를 지켜보고, 야구 하이라이트를 보고, 응원하지 않는 팀의 끝나지 않은 경기를 보고는 했다. 요즘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과 그 모든 것을 하는데 거기에 응원가를 가르치는 것을 더 포함시켰다.


"'쌔리라, 쌔리라'카는 건 방망이로 공을 때리라는 거야."

해 가면서...


남편 퇴근이 워낙 늦다 보니 남자 셋이 그러느라 12시가 훌쩍 넘을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애들에게 대체 뭘 가르치는 거야?', '내일 어떻게 애들 깨우라고?' 하는 판단도 올라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얼른 자야지!'하고 남편 들으라고 자칼 방식으로 표현하거나, 장난식으로 남편 궁둥이를 치며 눈치를 주거나, 어떤 때는 그냥 내 감정을 누르고 지나치고 그래 왔다.


하루는 아이들 재우기 직전에 집에 들어온 남편이 밥을 먹으면서 아이패드로 야구 하이라이트를 켰다. 밥 먹으며 영상에 빠진 모습이 너무 싫었다. 자려던 아이들까지 아빠 옆에 다닥다닥 붙었다. 남편은 큰 인심이라도 쓰듯 "아빠 밥 먹는 동안만 같이 보는 거다!" 했다.

나는 입이 터져버렸다. 남편에게 말고 준이에게. 3S까지 언급해가며 스포츠에 열광하다 보면 자신을 돌볼 수 없을까 우려된다는 이야기를 애꿎은 8세 아이에게 열심히 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어떻고 우민화가 어떻고 해 가면서.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 내 마음 자체가 불편했는데… 조금 지나 생각해 보니 나에게 꽤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을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잘 휴식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 연결이 필요하다. 외부 자극에서 멀어져 스스로와 만나고 돌보는 시간. 특히 잠드는 시간에는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하루를 돌아보면서 축하하고 애도하고 편안하게 다음날을 기대하고 싶다. 그러니 남편과 아이들이 시끌시끌한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홈런~ 역전 역전!’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힘들었던 것이다. 이 시간에 내 안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남편과 아이들과 조용히 이 시간을 휴식으로 맞이하고 싶은데… 하는 마음. 남편과 협력해서 아이들에게 휴식할 줄 아는 삶을 선물하고 싶어서 남편도 본보기를 좀 보여주었으면 바라는 마음도 컸다.

좀 더 생각해보니 남편도 스스로를 돌보기를 원했던 나의 욕구와도 만났다. 내가 편안함을 얻은 만큼 남편도 눈과 귀를 쉬면서 자기를 돌보았으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편안함을 얻어 우리 가정이 서로 연결되면서 따뜻하게 굴러가기를 바라는 욕구.

거기에 나는 앞서 나가 아이들이 미래에 티브이 앞에서 뭘 먹는지도 모른 채 입에 무언가 집어넣는 모습까지 상상하고 있기까지 해서 불안하고 조급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싶었기 때문에 비폭력대화 연습모임에서 이 사례로 연습하려고 내놓았다. 상대(남편)는 내 감정에 책임이 없다는 믿음 아래. 워크숍 동기끼리 ‘미라클’이라는 말을 가끔 하는데 마음이 쑥 내려가면서 상대가 안쓰러워 보이는 등 나의 시선이 확 달라지는 경험을 자주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남편과 협력해서 아이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삶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남편도 (내가 생각하는) 본보기를 좀 보여주었으면 바랐었고. 좀 더 생각해보니 남편도 스스로를 (내 방식대로) 돌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는 이렇게 휴식해야지.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이렇게 생겼어." 했던 것.






남편에게는 그 시간이 아이들과 연결하는 시간, 하루 중 편히 휴식할 수 있는 시간, 재미와 편안함을 맛보는 시간일 것이다. 나와 남편은 ‘휴식’이라는 같은 욕구가 있었고, 나에게 휴식이 중요한 만큼 남편에게도 그 휴식은 중요하고 달콤할 것이다. 그리고 그 휴식 방법이 달라도 (내가 그러하듯) 남편도 그대로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누구 눈치 안 보고 마음대로 쉬면서 그 안에서 자유롭고 편안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게...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 무엇을 해도 괜찮은. 휴식하기 위해서는 그런 공간이 몹시 필요할 것이다. 그게 집이면 좋겠고.




그래서 이제

"여보! 이렇게 휴식하는 게 좋아! 내가 해보니까 이게 제일이야!"

하면서 답을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여보, 여보에게 휴식은 어떤 거야?”

하면서 궁금해하고 싶다. 도움을 원한다면 그때 옆에서 도울 수 있는 걸 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떤 방식으로 휴식하든 그 자체로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나의 이 마음이 남편에게도 있을 것임을 이제는... 느낌 아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 아침에도 나는 입히고 남편은 벗긴다.